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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미르와 파라미르 [창고/사랑해마지 않는 그들]
주의: 이 글에서는 영화에서의 보로미르와 파라미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게나 환하게 웃고 있는 정의로운 형제이건만T_T[두개의 탑]이 개봉하기 전 『LotR』 팬들 사이에서 무수히 떠돌았던 소문 중 하나는, ‘파라미르가 숨넘어갈 정도로 멋있다더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 속에서 올리폰트를 향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며 그 모습을 처음 드러낸 위대한 곤도르의 섭정의 차남께서는, 그간 한껏 부풀어 있던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요.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원작과는 사뭇 다르게 묘사되는 파라미르에 실망하신 분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섭정 데네소르에 대해 얘기해 보지요. 그의 광기는 과연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간달프의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데네소르는 여느 현자 못지 않은 현명함과 통찰력과 위엄을 지녔고, 대대로 곤도르의 섭정을 지내온 고귀한 가문의 자손입니다. 그리고 왕이 없는 곤도르를 대신 통치하며 왕이 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대신 그 어깨에 지고, 사우론에 대항하며 백성들을―인간들의 생명을 수호해야만 했고 또 그렇게 해온 인물이죠. 이제 신화와 전설 속에 묻혀서 옛 문헌에서나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이실두르의 후예, 자신의 백성들이 죽음과 파멸의 위협에 처해 있는데도 나타날 생각도 않는 왕에 대한 분노는 곧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과 독점욕으로 이어집니다. 왕 못지 않은 통치력과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고 그런 능력도, 권한을 행할 충분한 의사도 있지만 자신의 자리는 높은 단 위의 왕좌가 아닌 바닥에 놓여진 섭정의 의자. 뒤늦게야 나타나 왕권을 주장하는 아라곤에게 ‘어서 오십시오, 기다렸나이다.’라고 말하며 순순히 그 앞에 허리를 굽힐 리는 없지요. 오히려 그에 맞서 오랜 기간 곤도르를 통치해 온 섭정 가문의 권리를 내세우며 스스로 왕권을 주장하고도 남을 사람입니다.

그럼 보로미르와 파라미르는 어떨까요? 두 형제는 아주 닮았으면서도 아주 다른 형제입니다. 용맹함과 무용, 곤도르를 사랑하는 마음에 있어서는 둘 다 같습니다. 하지만 호전적이고 호쾌하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는 추진력의 소유자인 보로미르에 비해 파라미르는 온화하고 보다 지혜로우며, 말을 아끼고 다른 이를 배려할 줄 아는 인물입니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보로미르는 그 카리스마와 지략에 있어서 왕의 자리에 적합하고, 세심하고 주의깊은 파라미르는 섭정의 자리가 더 어울릴 만한 사람이죠. 데네소르가 그렇게나 장남 보로미르를 끔찍하게 아낀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가문의 후손들이 앉아야 할 곤도르의 왕좌, 그 기틀을 닦아놓고 또 오를 수 있는 것은 보로미르라고 생각한 거죠. 리븐델에서 엘론드의 주관으로 열린 회의에서의 보로미르의 태도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곤도르에는 왕은 필요없다.’ 자신의 눈앞에 무릎꿇고 충성을 맹세해야 할 왕이 서 있는데도 보로미르는 그 한 마디를 쓰게 내뱉습니다. 사우론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기고 오랜 세월 방랑해야만 했던 아라곤의 고뇌만큼이나, 왕 대신 곤도르를 지켜온 섭정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또 그 고통을 이어받아야 할 보로미르. 아라곤과 보로미르의 관계는 처음 시작부터 결코 순조롭게 풀어갈 수만은 없는 관계입니다.

아아 이렇게나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다니...편히 잠드소서 곤도르의 아들이여한순간은 반지를 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곧 절대반지는 소유할 수 없고 소유해서도 안 되는 것임을 깨달은 보로미르는 반지의 유혹 앞에 굴복해버린 스스로의 나약함과 프로도에 대한 미안함, 그에게 구할 용서를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 갚습니다. 수십 명의 오크에 둘러싸여, 십여 대의 화살에 몸이 꿰뚫린 채로 메리와 피핀을 끝까지 감싸는 보로미르. 비록 아버지 데네소르는 호빗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보로미르의 최후에 분노를 느꼈겠지만, 보로미르의 죽음은 『LotR』 전편에 있어서 가장 정의롭고 숭고한 죽음입니다. 누구나 반지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라도 반지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곤도르를, 곤도르의 백성들을 위해서’라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는 보로미르였기에 그는 절대반지를 더더욱 갈구할 수밖에 없었지요. 보로미르는 절대반지의 힘과 그것이 불러오는 마음의 어둠을 맛보았지만,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고 결국 죽음으로 그 죄값을 치릅니다.

한편 파라미르는 형 보로미르를 무척이나 따르고 보로미르 역시 동생을 지극히 아낍니다. 보로미르에게 있어 파라미르는 전장에서 안심하고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전우이자 둘도 없는 혈육이지요. 파라미르에게 있어서도 보로미르는 늘 믿음직한 선봉장이자 언젠가 곤도르를 구원할, 자신이 평생 받들 섭정이 될 인물입니다. 굳은 신뢰와 사랑으로 맺어진 두 사람이 영화에서 그토록 닮아보이는 것은 단지 분장 덕분만은 아닐 겁니다. 파라미르에게 모진 소리를 하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 보로미르와 그런 두 사람을 애달프게 바라보는 파라미르의 눈빛은 같은 슬픔을 담고 있지요. 위태롭기만 한 곤도르의 앞날, 막다른 곳으로 치달아만 가는 아버지에 대한 염려와 연민, 아낌없이 베푸는 것이 아니라 기대와 독점욕으로 가득 찬 부성애에 대한 반발과 그런 어긋난 사랑이라 해도 단 한순간이나마 인정받고 싶은 바람과 아쉬움. 그래서일까요. 오스길리아스에 휘날리는 곤도르의 성수깃발을 바라보는 보로미르의 눈빛, 그런 형을 말없이 바라보며 떠나보내는 파라미르의 눈빛은 한없이 젖어 있습니다. 늘 함께 있었지만 결국은 영원한 헤어짐을 예감하는 것처럼요.

형처럼 반지를 탐하기 이전에 형의 과오를 먼저 깨닫고 프로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원작에서의 파라미르와는 달리 영화 속의 파라미르는 보로미르가 반지를 바라보았던 그 눈길로 프로도와 반지를 바라봅니다. 게다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라는 말까지 하지요. 아마 이 장면에서 파라미르를 총애하는 많은 분들이 순간 뒷골이 따끈해지셨을 겁니다. 하지만 전 그 장면이 원작의 팬들과 영화가 타협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사실 원작의 파라미르는 어떻게 보면 아라곤보다도 더 훌륭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거든요. 간달프가 팔란티르를 아직은 사용할 때가 아니라고 충고하자 ‘그만큼 인내해 온 내가 아직도 부족합니까.’라고 반문하던 아라곤을 떠올려 보세요. 원작의 아라곤은 자신의 혈통과 권위에 대한 확신, 왕좌로 돌아가야 한다는 굳은 의지로 그 긴 세월을 버텨오지만 영화에서의 아라곤은 끊임없는 회의와 속죄에 시달리면서도 인간을 외면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위대한 두네다인임에는 틀림없지만 책에서처럼 신성성이 강조되지는 않지요. ‘격하되었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21세기의 우리들이 보는 영화에서는 신화와 전설의 무게로 관객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파라미르 역시 같은 이치입니다. 원작의 파라미르는 영화의 아라곤과 상통하는 면이 무척이나 많거든요. 신중하고 사려깊고 책임감 강하고 두네다인의 혈통 못지 않은 고귀한 인간. 한 영화에 비슷한 캐릭터가 비슷한 성격으로 다루어진다면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겠지요. 아버지에게 그토록 홀대받으면서 죽을지도 모르는 전장으로 내몰린 파라미르가 절대반지를 본 순간 곤도르로 갖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고 해서 그를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절대반지만 있다면 그간 자신을 아들이 아닌 한낱 부하로 냉정하게만 바라보던 아버지에게서 한 번쯤은 따스한 말을 들을지도 모르고, ‘아들아’라고 불러주며 보듬어 안아 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저 아버지에게 남이 아닌 ‘아들’로 인정받고 싶은 소박하고도 절박한 바람에서 비롯된 욕망입니다.

T_T그러나 파라미르는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프로도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접습니다. 잠깐 동안의 실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보로미르의 전철을 밟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며 믿음과 격려로 미안함을 대신합니다. 잘못과 뉘우침, 그리고 속죄. 우리가 늘 반복하는 일들이죠. 아라곤이 원작보다 영화에서 더욱 인간적으로 그려지는 것만큼 파라미르 역시 세속적인 감정이 부여된 새로운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성인군자 뺨칠 정도로 훌륭한 인격자인 원작의 파라미르는 아니라 해도, 남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것을 그토록 갈망하는 영화에서의 파라미르를 보고 있자면 그의 슬픔과 아픔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섭정과 신하의 대화를 나누는 데네소르와 파라미르. 아들은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 말을 달리고, 아버지는 피핀의 구슬픈 노래를 들으며 앞에 놓인 요리를 우적우적 씹습니다. 비록 러닝타임 때문에 영화에서 얄팍하게 묘사된 데네소르에 많이 실망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참 많이 슬펐습니다. 결코 좁혀지지 않는 그들의 거리, 그들이 결코 공유하지 못한 그 어떤 것, 더 이상은 아무것도 기대할 여지가 남아있지 않은 절망…. 파라미르의 말발굽 소리가 들릴 때마다 땅에 패일 그 자국이 마치 가슴에 찍히는 것 같아서, 피핀의 가냘픈 목소리에 실린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피핀과 같이 울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때. 파라미르가 감내해야만 했던만큼은 아니라 해도, 처연한 그의 얼굴은 두고두고 무거운 돌처럼 가슴안에 자리잡을 것만 같습니다.

극장에서 상영하기 위한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시간에 구애받는 것은 제작진과 관객 모두 어느 정도 선에 이르면 스스로 물러설 수밖에 없습니다. 덕분에 캐릭터의 성격과 그 비중에 다소 변화가 있었고 그 때문에 분노하는 이들도, 오히려 환호하는 이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영화의 보로미르와 파라미르는(출연시간과 영화 전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떠나서) 정말로 실존했던 인물처럼 되살아났습니다. 울고 웃고 화내고 슬퍼하고…. 확장판에서나마 두 형제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요. 죽을 때까지 서로의 곁을 지키며 맥주잔을 부딪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영혼은 되살아난 성수가 심어진 백색탑에 늘 함께 머물 것입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나 바랬던 평화로운 Middle-Earth, 그토록이나 기다렸던 그들의 진정한 왕이 다스리는 곤도르에 말입니다.


2004.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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