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부녀(座敷女)-당신의 집 대문 앞에는 그녀가 없나요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지은이: 모치즈키 미네타로
출판사: 세주문화 권수: 전1권(2004) 좋게 표현하자면 조심성이 많은,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겁이 무척이나 많은 내 어머니는 자그마한 소리 하나에도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신다. 둘이 같이 나갔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몇 번은 뒤돌아보며 확인을 한다던가 하는 식. 집안에 있을 때도 그 조심성은 지나칠 정도여서 앞집 벨이 연거푸 울린다 치면 우리 집 벨이 울린 것도 아닌데 살금살금 현관으로 다가가 조그만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며 누가 벨을 누르고 있는지를 확인하곤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 ‘쉿,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니까 조용히 하고 있어.’ 동생과 내가 뭐하려고 남의 집 벨 울리는 것까지 신경을 쓰냐고 투덜대면 어머니는 이렇게 얘기하곤 하신다. ‘모르는 소리.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거야.’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 소위 귀신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에 얽힌 이야기들은 사람에 따라 그 반응이 천차만별이다. 두 귀를 쫑긋 세우고서 한 마디를 놓칠세라 새겨듣는 사람. 무서운 이야기는 질색이라며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서 빼꼼 얼굴을 내밀며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라고 묻는 사람. 시답잖은 얘기를 한다며 책이나 TV로 바로 시선을 돌려버리는 사람. 그러나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듣고서 며칠을 공포에 시달리며 잠 못 이루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실제로 체험해보지 않았으니까, 왠지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으니까, 감각이 특별히 발달한 사람이 아닌 이상 이야기만으로 어떤 기운을 느끼는 것은 아니니까.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 진정으로 무서운 이야기는 신문에 나는 살인 사건이나, 지인의 집에 도둑이 들어 집안이 난장판이 되었다는 소식이며, 단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표적이 되는 현실이야말로 절로 두 눈을 꼭 감고 입을 틀어막게 되는 두려움이다. 여주인공 사치코가 누구이며, 그녀가 왜 스토킹을 하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언제나 같은 트렌치코트 차림에 두 손 가득 든 종이가방. 가늘게 찢어진 두 눈과 기묘한 입술, 성인 남성의 평균치를 훌쩍 넘어서는 큰 키. 그런 사람이 곁을 스쳐지나간다면 그 큰 키 때문에라도, 묘한 얼굴 생김새 때문에라도 한 번쯤은 뒤돌아볼지도 모른다(그때 눈이 마주친다면 그 또한 낭패). 그러나 사치코가 행하는 일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그 행동에는 이유가 없고 설득할 여지도 전혀 남아있지 않다. 이유없는 스토킹과 폭력은 늘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대화를 나누다 전혀 쌍방 소통이 되지 않는 답답한 경험에 가슴을 치는 경우도 극히 잦은 일이다. 이 모든 것이 한데 모인다면? 어느덧 사치코의 이야기는 사건에서 전설이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고 마지막에는 사치코가 과연 실존하는 인간인지도 불분명하게 묘사되지만, 그녀의 행위는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본, 그래서 누구라도 쉬이 짐작할 수 있는 육체적·심리적인 위협과 두려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한밤중에 옆집의 벨이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울린다면 궁금증은 덮어두고서라도 단잠을 깨운 짜증과 함께 한 마디 하려고 무심코 현관문을 열어 볼 것이다.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여느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일상. 그 평범한 행동이 한 사람의 일상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것, 그리고 누구에게나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라는 것. 『좌부녀』의 공포는 바로 이런 공포이다. 나만 해도 한여름밤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계속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소리에 ‘대체 누구야.’라고 투덜대며 베란다 창문을 열고 두리번거리지 않았던가. 여자를 대신해 벨을 눌러주고 전화를 빌려주는 잠깐의 친절은 이유없는 스토킹을 부르고 주인공을 파멸로 몰아간다.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되는 누군가의 일상, 그 일상에 끼어드는 한 여자, 그렇게 계속 되풀이되어 전설로 굳혀져가는 이야기, 이야기들. ‘그 얘기 알아?’라며 함께 장을 보러 다니는 아줌마들의 수다 속에, 이불을 함께 뒤집어쓰고 과자를 집어먹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는 여학생들의 얘기 속에, 술잔이 오고 가는 탁자 위에 안주거리 삼아 쏟아지는 무서운 이야기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 어귀에서 재밌는 만화 추천해준답시고 『좌부녀』 이야기를 꺼내는 섣부른 짓은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다. 또 다른 사치코가 지저분한 트렌치코트 자락을 여미며 양손에 종이가방을 잔뜩 들고 뒤에서 따라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2004. 11. 3. 2005/11/26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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