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센(おせん)-맛과 멋, 마음이 어우러진 만화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지은이: 키쿠치 쇼타(きくち正太)
출판사: 강담사/세주문화 권수: 7권~ 관련글: 요리와 만화-맛과 멋과 마음이 머무는 세계 MT를 가서 밥을 지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 밥 한끼 짓는 것도 때와 장소, 쌀의 종류, 도구에 따라 물의 양과 방법을 달리한다. 이처럼 요리는 아주 간단한 음식조차도 숙련된 '경험'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때로는 많은 변수 속에서 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타고난 '감각'까지 요구한다. 그뿐인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워 절로 젓가락을 갖다 대고 싶은 유혹을 만들어내는 '미의식'과 그 와중에도 자기가 만든 음식을 맛보고 평가해야 하는 '냉정함'을 갖춤과 동시에 먹는 사람의 '감정'을 자아내게 하는 능력까지. 그러나 요리에 관한 거의 모든 만화는 결국 요리를 만드는 사람과 그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되돌아간다.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느끼는 온갖 감정의 굴곡을 어떻게 요리에 함께 담아낼 것인가―. 이것은 모든 요리인들의 숙제인 동시에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론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요리 한 접시를 통해 맛과 인생을 함께 배울 수 있는, 요리와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맛깔스런 만화. 그런 만화가 바로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키쿠치 쇼타의『오센』이다. 카사기 지방에서 몇 백년째 대를 이어오며 전통 에도 요리를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요릿집 <일승암(一升庵)>의 여주인 오센과 개성 넘치는 요릿집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진 이 만화는 요리의 도(道), 술의 도(道), 물건의 도(道), 나아가 사람의 도리를 설파한다. 고향의 여관을 이어받기 위해 '이왕 배우려면 "'진짜'를 배워야 한다"는 지인의 소개 덕분에 <일승암>에 오게 된 에자키. 그가 일하게 된 <일승암>의 여주인 오센은 '진짜'를 알아보는 '눈'과 그 앞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뻐할 수 있는 열정을 지닌 사람이다. 갓 들어온 싱싱한 생선을 만난 기쁨에 겨워 술 한 병을 따면서 어떻게 다듬을까를 즐겁게 궁리하는 오센. 향신료에 의지해서 쉽게 맛을 낼 수도 있으련만, 오센은 다소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치더라도 그 재료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장점을 120% 살려내는 '고행'을 기꺼이 선택한다. 계속 간직하고 발전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라져 가는 옛것에 대한, 작품 곳곳에 깊게 배어있는 작가의 안타까움과 분노. 작가는 때로는 호된 꾸지람으로, 때로는 깨어진 조각을 다시 거칠게 이어붙인 골동품 그릇 안에서 더욱 빛나는 요리로, 때로는 골동품 시장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사들인 장식을 통해 빠르고 자극적인 서구 문화와 그에 물들어 가는 일회성의 사고방식을 갈파(喝破)한다. 그러나 『오센』의 매력은 단지 잊혀져 가는 옛 것을 되살리고자 하는 열정에만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간소한 토란찜 하나라도 토란의 '힘'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수고스러운 요리법을 택함을 물론이요, 그 요리를 먹을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때'와 '장소', 그리고 요리에 파묻히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면서도 함께 조화를 이루는 그릇의 묘사까지, 『오센』은 이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완벽을 추구하는 요리사의 장인정신도 중요하지만 재료 하나, 그릇 하나를 향한 따스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요리를 먹을 사람에 대한 정성으로 가득 차 있는 <일승암>의 사람들과 <일승암>의 간판 여주인 오센. 이들이 내놓는 요리를 단 한번이라도 먹어보고 싶다는 바람은 단지 나 혼자만의 희망사항은 아닐 것이다. '요리라는 건 그 글자 그대로 재료의 이치(理)를 헤아리는(料) 것이지. 요컨대 얼마만큼 사물의 도리를 알고 있느냐는 것' ―『오센』에 등장하는 서예가 카자미 고슈우의 말이다. 사물의 도리를 아는 것, 또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사람', 그리고 요리를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사람. 요리를 향한, 그리고 사람을 향한 진솔한 마음과 정성, 기쁨, 즐거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가르침까지…. 때로는 격렬하고 때로는 온유한, 이 모든 것이 '요리'에, 그리고 『오센』에 담겨 있다. 맛있는 요리와 멋진 만화, 이 두 가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만화 『오센』. 오늘 하루만큼은, 오센과 <일승암> 식구들이 대접하는 <일승암>의 요리를 먹는 꿈을 꾸고 싶다. +++ 작년 리브로(http://libro.co.kr)의 리뷰 공모전 때 쓴 글이라 이곳에 옮길까 말까 망설였습니다만, 세주문화 책들이 떨이로 팔리고 어느새 품절 딱지가 붙은 걸 보니 참, 슬프더군요. 꽤나 좋아하는 작품입니다만...아쉬운 마음에 뒤늦게 글을 올립니다. 2005/11/26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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