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2005)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감독: 이준익(2005) ![]() 연극 [이爾]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왕의 남자]. 참으로 알기 쉬운 제목이지만 왜 [이爾]라는 원작 제목을 두고서 굳이 [왕의 남자]라는, 다소 원색적인 제목을 택했는지 궁금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연극의 공길은 왕의 것도, 장생의 것도 아닌 공길 자신이었지만 영화의 공길은 그렇지 않다. 이름만 같다 뿐이지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즉, 영화의 공길은 왕의 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데 사실 이 ‘왕’이라는 것도 좀 묘한 것이, 영화의 연산은 한번도 왕인 적이 없다. 눈앞의 신하들은 자나깨나 ‘선왕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라며 가르치려 드는데다 연산 자신은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애정과, 사랑하던 여인을 잔인하게 죽음으로 몰아간 부왕에 대한 증오, 그리고 왕의 아들인 덕에 절로 왕이 된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스스로 제 발을 묶어버린 어린애다. 후궁인 녹수도 연산의 연인, 혹은 죽고 없는 그의 어미 노릇을 하며 감싸는 역할이지 연산을 왕으로 받들지는 않는다. 그는 왕이었으되 왕으로 인정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연산이 왕이라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하는 인물은 그의 앞에서 부들부들 떨며 머리를 조아리는 천하디 천한 광대 공길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공길은, ‘이爾(너)’가 아니라 ‘왕의 남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극의 중심에 있는 공길의 성격이 완전히 바뀜에 따라 그를 둘러싼 연산과 장생의 성격 역시 대폭 바뀔 수밖에 없다. 원작에서 그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권력과 세상을 비웃던 자유를 추구하던 장생과, 억지웃음을 지으며 몸과 마음을 내맡기면서까지 권력의 정점에 서고자 했던 공길이 대등한 입장인 가운데 갈등이 빚어졌다면, [왕의 남자]의 공길은 장생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장생 역시 그런 공길을 아낌없이 보살핀다. 공길에게 있어 장생은 놀이판에서든 어디서든 믿고 함께 할 수 있는 든든한 짝이자 형이며 가족과도 같은 사람이며 장생에게 있어서도 공길은 안주하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아다녀야만 하는 삶 속에서 유일하게 정붙이고 마음을 주는, 어디를 가더라도 자신의 곁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존재이다. 굳이 입밖에 내어 감정을 전달하지 않아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관계. 피를 나눈 가족보다 긴밀하고, 육체로 이어진 것 그 이상으로 마음과 마음이 몇 겹씩 한데 엮인 관계. 이 두 사람 사이에 연산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새로운 방향으로 물꼬를 트기 시작한다. 2005년도 [이]의 연산을 보면서 상당히 얄팍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영화의 연산은 말 그대로 ‘애’다. 제대로 된 성장기를 겪지 못하고 그저 숨죽이며 공포에 질린 채 하루하루를 견뎌내다가 어느새 왕위에 오른 아이. 이제야 가슴을 펴고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선왕의 유지와 공신들이며 비명에 죽어간 어머니가 남긴 그림자는 계속 연산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다. 그는 사랑을 알기 전에 공포를 맛보았고, 그로 인해 증오를 품고 복수의 칼을 쥐게 된 사람이다. 비록 녹수 앞에서 마음 편하게 어리광을 부릴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말 그대로 ‘같이 놀’ 동무가 필요했다. 겹겹의 장지문 너머, 주안상을 발치 멀찍이 치워두고 함께 방바닥에 엎드려 그림자놀이를 하며 웃고 놀 수 있는 동무가. 성숙한 어른이 될 기회를 아예 잡지도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연산은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공길을 앞에 두고 영문도 모른 채 어미를 잃고 아비 앞에서 떨어야만 했던 그 옛날의 어린 연산으로 되돌아간다. 녹수는 연산에게 쾌락과 애정을 주었지만 연산은 또 다른 것을 필요로 했다. 자신의 슬픔을 가공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다시 온전히 되돌려줄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바로 공길이었다. 연산의 눈물을 못 보았더라면 공길은 미련없이 장생과 궁을 떠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건만, 그는 지금까지 꾸역꾸역 목 안으로 울음을 눌러 넣을 수밖에 없었던 왕의 슬픔을 느끼게 된다. 출연비중으로 보면 연극보다 영화의 장생이 훨씬 무게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극의 표면적인 흐름을 공길이, 내면적인 흐름을 장생이 이끌어간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왕의 남자]에서 장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다고만은 할 수 없다. 오히려 영화 [왕의 남자]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연산이다.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도 온전히 자신만의 것은 갖고 있지 못한 슬픈 왕. 장생은 오히려 연산이 극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추임새를 넣는 역할에 가깝다. 그렇기에 ‘어느 잡놈이 그놈의 마음을 훔쳐가는 것도 모른 채’ 연산과 공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그 비중이 줄어 아쉬운 점이 적잖았던 공길과는 달리 녹수의 경우 영화이기에 가능한 장점 덕분에 더욱 돋보였던 것 같다. 무대에서와는 달리 영화는 배우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스크린 가득히 치마폭을 파고드는 연산을 앞에 두고 ‘미친놈’이라고 뇌까리는 강성연의 연기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 두고두고 기억날 명장면 중 하나다. 그때의 그 미묘한 표정, 목을 울리며 살짝 떨리던 그 목소리는 녹수의 연산에 대한 감정을 절절히 표현하는데 전혀 모자람이 없다. 애증, 연민, 연인이되 어머니로서의 역할까지 떠맡아야 했음에도 정작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자신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여인의 자조(自嘲)섞인 그 한 마디 덕분에 영화 속 녹수는 연극의 녹수와는 또 다른 자신만의 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다. 연극의 내용이 영화로 옮겨지면서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다소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상영시간이 엇비슷한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영화는 연극의 등장인물들이 지니고 있던 다채로운 면들 중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꼭 필요한 부분만 취해 강조하는 방법을 택했다.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닐 것이요 자칫 잘못하면 원작의 장점을 깡그리 없애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시도였지만 영화 [왕의 남자]는 연극과는 사뭇 다른, 그러나 연극 못지않은 흡입력을 발휘한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공길 앞에서 그리도 환하게 웃었던 연산의 웃음, 왕의 슬픔에 동조하는 공길을 바라보던 장생의 서글픈 눈길이 도포자락을 벗어던지며 그간의 한을 토해내던 연극 속 공길만큼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 속 연산과 장생과 공길과 녹수가 그들만의 삶을 살다 죽어갔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비록 카메라의 클로즈업에 힘입은 바가 없지 않다 해도.
2008/03/0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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