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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역사(A History of Violence)-혹은 폭력의 일상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
*주의: 스포일러 가득입니다. 영화가 정식 개봉하면 이 감상문은 수정될 수 있습니다.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 (2005)
주연: 비고 몰텐센Viggo Mortensen (톰 스톨Tom Stall)
        마리아 벨로Maria Bello (이디 스톨Edie Stall)
        에드 해리스Ed Harris (칼 포가티Carl Fogarty)
        윌리엄 허트William Hurt (리치 쿠색Richie Cusack)
        애쉬튼 홈즈Ashton Holmes (잭 스톨Jack Stall)
        피터 맥닐Peter MacNeill (보안관 샘Sheriff Sam Carney)


Tom Stall had the perfect life...until he became a hero.



[폭력의 역사] 포스터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위의 포스터가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다. 자신에게 들이댈지도 모르는 총구 앞에서, 불안한 표정의 아내를 뒤로 하고 선량한 시민 톰 스톨은 아무런 동요없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살짝 떠올리고 있다. 이 한 장면으로, 톰 스톨이라는 인간이 폭력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폭력을 어떻게 제어하며 자신의 폭력성을 어떻게 감추어 왔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밥먹듯이 살인을 일삼는 이들에게 있어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레 표현된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보고 울먹거리는 어린아이를 달래고 도닥이며 등 뒤에서 권총을 꺼내드는 남자와, 삐뚤어진 의자를 바로 하고 더운 날씨를 불평하며 여행 가방을 챙기는 남자는 분명 동일인물이지만, 그는 잘잘못을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는 폭력이 생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톰 스톨은 어떠한가? 마치 그림으로 그려낸 듯한 지극히 평범한 미국의 한 소시민이다. 한밤중 악몽을 꾸고 울어대는 딸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고, 아침식탁에 앉아서는 아들의 학교생활을 세심히 챙기며 물어봐주고, 출근하는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잊지 않고 건네는 남자. 비록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자기 가게를 갖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밤이 되면 사랑하는 아내를 품에 안고 충만한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살인같은 끔찍한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늦은밤 가게에 들어온 2인조 강도를 물리친 톰 스톨은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자기 가게에서, 그것도 아직 손님들이 테이블에 앉아 있고 함께 일하는 종업원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는 강도 앞에서 내재되어 있던 정의감과 용기를 십분 발휘하여 그야말로 완벽하게, 순식간에 강도 두 명을 사살한다.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저토록 침착하게 강도를 무찌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느끼는 것도 잠시, 병원에서 채널마다 자신이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 것에 질린 채 그만 TV를 꺼버리는 톰 스톨을 보면서 그의 아내는(그리고 관객도), 그가 예상치 못한 살인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자신과 같이, 혹은 더 나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며 이제 그만 가족과 평온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토로하는 그는 여전히 따뜻하며 선량한 시민이고 이웃이고 남편이며 아버지이다.

자신을 다룬 뉴스가 미국 전역으로 방송된 직후, 칼 포가티라는 갱단의 보스가 톰을 찾아온다. 그는 톰 스톨은 자신이 알고 있는 조이 쿠색이 확실하며, 예전의 생활을 버리고 평범한 시민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어떻게 ‘톰 스톨’이 잔인한 갱단의 킬러 ‘조이 쿠색’과 동일 인물일 수 있겠는가? 그저 가족과, 이웃과, 일터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것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인데 말이다. 그렇기에 자기를 ‘조이’라 부르며 매일같이 찾아오는 갱단을 두려워하고, 혹여 가족들이 다칠세라 다친 발을 절뚝거리며 집까지 정신없이 뛰어오는 이가 바로 톰 스톨이다. 자신을 위협하는 동급생을 때려눕힌 아들을 야단치다 저도 모르게 따귀를 날리고서는 안타까워 하는 이가 바로 톰이다. 그러나 아들을 인질로 잡고 있던 갱단을 태연히 때려눕히고 권총을 갈겨대는 이도 바로 톰 스톨이다.

욕설과 구타와 같은 폭력은 일상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을 괴롭히는 바비를 두들겨 팬 잭은 이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아버지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하더라도 잭은 결국 살인자가 되버리고 만다. 폭력이란 그런 것이다. 애써 멀리하다가도 한번 발을 들이고 나면 목을 죄어오는 빠져나갈 수 없는 올가미와도 같은, 모두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그런 것. 폭력은 ‘휘두르는’ 데서 시작되지만 결국은 ‘휘둘리는’ 것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톰의 경우는? 그는 자신의 폭력성을 감출 줄 안다. 스스로 통제할 줄 안다. 순간적으로 폭발시킬 줄도 안다. 그리고 다시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올 줄도 안다. 딸아이를 감싸안던 손으로 갱의 목을 후려갈기고, 아내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손에 차가운 권총을 들고서 망설임없이 눈앞의 상대를 겨냥한다. 톰 스톨과 조이 쿠색, 둘의 인격을 가진 것도 아니다. 둘은 처음부터 한 사람이었고, 상황에 따라 자신의 성향을 철저히 조절했을 뿐이다. 아마 그 2인조 강도가 아니었다면 톰은 죽을 때까지 가족과 함께 폭력성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완벽한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아니, 아마 앞으로도 그는 하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미소지으며 살아갈 것이다. 톰은 먼저 폭력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언제라도 자신을 자극하는 것을 물리치고 없애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게 가능한 것이 바로 조이 쿠색, 톰 스톨이니까.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어떠한가. 남편이 한때 갱단의 킬러였고 그의 과거 역시 모두 거짓투성이였음을 알면서도, 그 모든 것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한 사람임을 알게 된 이디는 분노하고, 톰은 아내의 분노에 역시 폭력으로 응답한다. 따스한 온기와 애정으로 가득 차 있던 영화 초반의 베드신과 달리, 서로의 뺨을 갈기다 결국 몸안에서 차오르는 욕망만으로 계단에서 엉키는 둘의 섹스, 그로 인해 이디의 등에 길게 남은 상처 자국은 그들의 생활이 앞으로는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등의 상처는 언젠가는 낫겠지만, 이디는 이제 남편 톰을 볼 때마다 조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하고자 한다면, 여전히 완벽한 남편이자 아버지인 톰 스톨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 역시 이디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형의 저택에 있던 이들을 몰살하고는 강물에 피묻은 몸을 씻는 그의 목에는 여전히 은빛 십자가가 걸려 있다. 톰은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고 구원을 바라지도 않는다. 평온한 생활을 위협하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는 망설임없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를 것이다. 그게 바로 아들 잭을 비롯한 평범한 이들과 톰의 차이점이다. 분명 그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을 게다. 톰, 아니 조이에게도 잭처럼 폭력 앞에서 공포에 떨었을 때가 있었을 것이고 살인을 저지른 후 온몸에 묻은 피비린내에 괴로워했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익숙해지다가, 무뎌지다가, 어느새 자기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영화의 타이틀인 ‘폭력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친형과 그의 부하들을 죄다 죽이고 돌아와 저녁식탁에 앉는 톰의 얼굴은 괴로움에 조금씩 일그러져 가지만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이디도,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던 나도 진정 그가 괴로워하고 있는 것인지, 어쩌면 그 모든 게 역시 그가 제어하는 폭력과도 같은 것인지 혼란에 빠지고 만다.

조이를 버리고 톰 스톨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3년이 걸렸다며, 이디를 만나고 나서야 진정한 톰 스톨이 되었다고 눈자위를 적시며 말하는 톰과, 자신을 조이 쿠색으로 부르는 칼 포가티 앞에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톰과, 친형의 정수리를 날려버리는 톰…. 이 모든 인물을 한꺼번에 담아내는 비고 몰텐센의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따스하게 미소짓던 눈빛은 눈 한번 깜박이는 것만으로 냉혈무도한 킬러의 눈으로 돌변한다. 과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그의 연기는 마치 톰 스톨이 그랬던 것처럼 적정 수위를 유지하며 ‘폭력의 역사’라는 원색적인 제목의 영화를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내게 한다. 톰으로 인해 빚어지는 불안과 의혹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마리아 벨로와, 저마다의 존재감으로 제 위치를 지키고 있는 에드 해리스와 윌리엄 허트도 정식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요즈음 개봉 영화의 러닝타임에 비하면 다소 짧은 90여분 남짓한 시간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영화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부디 삭제없이 무사히 큰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꼬리>제일 중요한 것. 비고 씨의 미모는 숙성된 오크통의 양주마냥 너무나도 고혹적이어서 보는 사람을 단번에 KO시킨다. ㅠ_ㅜ


2006. 3. 12.




2006/03/12 21:40 | 관련글(트랙백) 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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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Cinema Blues 2007/08/15 20:56 x
제목: 데이빗 크로넨버그 | 폭력의 역사 History of Violence
전 사실 한국포스터가 더 마음에 듭니다만.작고 구석진 시골마을, 성실하고 사람 좋고 따뜻한 가장네 가게에 강도가 들고, 이들을 물리친 톰(비고 모텐슨)은 졸지에 영웅이 되어 매스컴에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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