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나라-무휼]-15일의 단상 [창고/무대 위의 향연]어제 빨간그림자 님, 데굴 님과 문자로 이야기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는 세 사람이 보았던 15일 19:30 공연의 그 기억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세 사람 중 두 사람만이 강한 왕을 받아들이고 나머지 한 사람이 아주 약간의 의구심을 표명했다면 모르되, 분명 우리 셋은 감히 어느 누가 재현해낼 수 있을까, 하며 공연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두려워했던 강인하고 고독한 무휼을 보았다. 비록 공연 끝나고 ‘해명태자=킹메이커’ 발언은 내가 제일 먼저 하긴 했지만; 해명태자의 의지가 그렇게 강하게 표현될 수 있었고 그만한 존재감으로 무대 뒤를 관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극의 중심에 무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명이 그렇게 몰아칠수록 무휼이 지고 있는 운명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지고 그의 고독은 더욱 깊어진다. 어느 한쪽이 숨을 죽이면 단박에 그 균형은 깨어지고 만다. 하지만 15일의 해명태자와 무휼은 바로 그걸 해냈었다. 인정한다. 확실히 원작에 대한, 그리고 주인공에 대한 어떤 부분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가에 따라서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 역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배우들이 연기하는 그 각각의 면모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아마도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더 깊게 무휼의 고독에 끌리고 있었나 보다. 누구도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심연. 내가 보길 원한 것은 그런 것이었고,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보았었다. 무대 위의 모든 이들이 그의 앞에서 몸을 굽힐 때, 나도 마음속으로 그에게 머리를 숙였다. 원작의 대한 애정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아니, 원작에 대한 애정 때문에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을 받아들이기란 더욱 어렵기 마련이다(제작진이 제일 먼저 뛰어넘어야 할 벽도 바로 이거였을 거다. 원작의 팬들을 어떻게 하면 납득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 2001년의 공연을 보고 나와서 못내 마음 한 구석이 허허로웠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15일의 기억을 의심하지 않는다. 분명 이 공연은 원작의 힘을 아주 많이 빌고 있으며, 원작의 팬들이 그로 인해 더욱 환호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연 자체의 힘으로 서 있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휼의 존재감, 그가 그렇게 연기하는 이유의 당위성이 원작의 팬이 아닌 일반 관객들에게도 전해져야만 한다. 그것은 아마 제작진에 있어서도, 배우에게 있어서도 꽤 풀기 힘든 숙제일 거다. 그러나 나는 내가 보았던 그 가능성을 믿는다. 아버지로서의 잔상을 누른 채 왕의 모습으로 돌아서던 그 뒷모습을 보았으므로. 꼬리1>무대 위의 존재감은 그 현장에서밖에 느낄 수 없다. 너무나 짧은 공연기간 동안 채 시도해보지 못하고 남겨둔 것들을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 판단은 그때 다시 내려도 늦지 않을 거다(그런데 생각해보니 김법래 씨랑 신영숙 씨는 [이] 공연 들어가지, 조정석 씨도 [헤드윅] 뛸 텐데;; 우와아아아앙OTL). 꼬리2>어쩌면 무휼의 어떤 부분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캐릭터 해석도, 관객들의 반응도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아버지로서의 무휼, 그리고 왕으로서의 무휼. 1~6권까지의 내용에선 아버지 무휼의 느낌이 더 강하다(아마 각종 기사에서도 1~6권 분량을 다루고 있다고 했었지). 연아 걱정마라. 아무도 손 못 댄다. (기억 안 남;) 제 애비가 가진 신기 따위 없어도 아이는 얼마든 잘 큰다. 그런 것 없어 귀신과 놀지 못해도 아이는 너를 닮아 예쁘고 착하지. 그러면 되는 거야. 4권 맨 마지막 뒤에서 두 번째 페이지(생각나는대로 쳐서 정확하지 않다. 집에 가서 다시 확인해봐야지)에 나오는 무휼의 독백. 놀라운가? 글쎄 그도 한때는 이런 대사를 한 적이 있다니까. 그런데 가면 갈수록 그는 그토록 닮지 않으리라 맹세하던 아버지 유리를 닮아간다. 세류가 그에게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몸서리치는 것처럼. 호동이 제 신수를 떠나보냈음을 추발소가 고하자 무휼의 첫 마디가 바로 이거다. ‘왕자가 더 필요하다.’ 그러고는 대비전에서 술 마시다가 밖으로 나간다. 대비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어디로 갈 것 같습니까.’라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내전에 가서 이지를 취한다(이 ‘취한다’는 표현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장면에서는 그 말 말고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동안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자신의 원비를. 남편으로서 아내를 안는 것이 아니라, 왕이 후계자를 얻기 위해서 왕비를 취하는 것. 해색주와 얘기할 때도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선왕께 꼭 한 가지 동의하는 것이 있다. 때가 오면 태자는 죽여야 하는 법이다.’ 마지막의 ‘가야할 곳은, 부도다.’라는 대사에 힘이 실리기 위해서는―10권 이후의 무휼에 대한 이해도 더 필요하다고 본다. 아버지인 자신을 억누르면서까지 왕으로서의 자리를 굳혀야만 했던 그를. (문제는, 이런 그의 마음 속에도 아직까지 아버지의 느낌이 깔려 있다는 거다. OTL 그러니 사람 애간장이 다 녹는게지;;;) 꼬리3>이러니저러니 해도, (원작과는 또 다른 의미로) 나는 이 공연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2006/07/2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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