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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프리카(パプリカ) [창고/애니, 쉼없는 동경]
감독: 콘 사토시(2006)
제작: 매드하우스
제11회 PIFF 상영작/2006. 10. 14. 프리머스 2관


N.EX.T에 열광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어느 날, 내가 잡지사 기자가 되어 N.EX.T 멤버들을 인터뷰하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꿈을 꾸는 그 순간, ‘아, 이건 꿈이다. 하지만 절대 깨고 싶지 않아.’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고 꿈에서 깨고 난 후에도 한번만 더 같은 꿈을 꾸게 해달라고 무척이나 빌었었다. 그 덕분인지 사흘 연속 멤버들을 인터뷰하는 꿈을 꾸는 데 성공. 그 이후로도 종종 나는 꿈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나 캐릭터(그것이 만화든, 영화든, 애니든)들을 만나는 꿈을 꾸곤 했다. 꿈이란 그런 것이다. 현실이 아닌 것, 그렇기에 그 안에서라면 무엇이든 바랄 수 있는 것, 바라기 때문에 언젠가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주는 것. 비록 깨고 나면 잊혀질 허망함이라 해도.

현실에 그 기반을 두고 있지만 결코 현실은 아닌 것. 그렇기에 꿈을 시청각적 이미지로 옮긴다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파프리카]는 분명 근미래의 과학적 기술과 이를 이용한 인간의 파괴적 욕망을 그 소재로 삼고 있지만 꿈과 현실의 모호함을 어떻게 스크린으로 옮기느냐에 더욱 주력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누가 보더라도 ‘이건 꿈이야!’를 외칠 수밖에 없는 화려한 이미지의 향연. 그래, 이것이야말로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하고 애니메이션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겠지.

꿈이기에 우리는 현실에서는 감히 입밖에 내어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말하고 행할 수 있다. 그러나 꿈속에서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 또한 허다하다. 무의식중에 그 꿈의 끝에 어쩌면 현실이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까. 정신의학연구소 연구원인 아츠코의 또 다른 자아인 18세 소녀 파프리카는 사람들의 꿈속을 드나들며 마음속에 품고 있는 두려움을 치료해주지만 정작 아츠코 자신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꿈속에서도 말해보지 못한다. 그 와중에 아츠코가 속한 팀에서 개발한 DC미니가 팀원 중 한명에 의해 탈취당하면서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꿈이 비밀스러운 이유는 그 누군가와도 공유하지 않는 것인 동시에 한 사람의 내밀한 욕망이 물씬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꿈과 꿈이 서로 뒤섞이며 급기야 현실과 충돌하기 시작하자 세상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한다. 이제껏 감히 생각해보지 못했던 다채로운 이미지들이 연이어 화면을 가득 메우며 관객들의 시선을 연신 붙들어 매고, 29세의 성숙한 여성과 18세의 발랄한 소녀의 간극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하야시바라 메구미를 비롯한 쟁쟁한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는 현실과 꿈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멋지게 해내는 콘 사토시 감독의 뛰어난 연출과 맞물려 관객들이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깨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꿈에 우리가 그토록 매이는 것은, 꿈이 언젠가는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발휘했던 용기를 깨고 나서도 다시 낼 수만 있다면, 영원히 깨지 않는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마지막 순간에 용기를 내어 결국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자 하는 희망. 꿈이 단지 꿈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얼마든지 달콤한 현실로 되살려낼 수 있다는 진실을. 그래, 마치 아츠코처럼. 그러니 쉬지 말고 꿈을 꾸자. 그리고 용기를 내자. 언젠가는 꿈보다 더 멋진 현실을 맞을 날을 위해서.


2006. 10. 16.


2006/10/16 15:39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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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nybunny R X
정말로 능수능란하게 오가시던 그 연기가 멋졌습니다. 끝으로 가서 좀 솔직해진 아츠코와 몇 몇 장면이 참 좋더라구요^^ 그런데 역시 꿈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사회는 무섭습니다. 비밀에서 죽은 자의 뇌로 기억을 들여보는 것도 무서웠는데..
2006/10/16 19:41

misha X
네,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역시 하야시바라 메구미 씨의 1인 2역이더라고요(평소 성우분들 목소리에 그리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1인 2역이란 걸 눈치채기까지 좀 시간이 걸렸어요;). 워낙 실력이 뛰어난 분이긴 하지만 어쩜 그렇게 분위기가 확확 다를까요. 새삼 감탄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야마테라 코우이치의 끈적한 대사도 무척 좋았어요(퍽퍽퍽).
2006/10/17 19:13
funnybunny X
꺄앗. 저도요. 별로 그런 캐릭터가 없어서 신선하기도 하면서 정말로 서비스 받은 기분이었다니까요♡

역시 좀 처럼 없는 캐릭터..였던 것이 축복이려나요. 흐흐.
2006/10/18 22:34

동굴곰 R X
파프리카는 소설로 굉장히 재미있게 봐서, 꼭 애니를 보고 싶습니다. 살 때는 관심없던 PIFF가 꼭 이렇게 타향살이할 때 염장을 지르는군요. 국내 개봉, 아니 DVD라도 발매해 주려나 (흑흑)
2006/10/16 21:08

misha X
[파프리카]는 콘 사토시 감독의 이름값도 있으니까 개봉은 꼭 할 거 같아요. 아직 일본에서도 내년 초에 개봉예정이라 들었으니 내년쯤 되면 국내상영 여부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영화를 보고 나니 원작소설도 무척 궁금해졌는데, 국내에 나와 있는지요? 조만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 +_+
2006/10/17 19:14
동굴곰 X
저한테 있는 건 94년 영림카디널에서 나온 책입니다. 이미 손에 쥔 게 있어서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웃음) 다른 데서 나온 번역판은 본적이 없네요. 우리나라 출판 관행을 보건데 10년 넘은 소설책을 구하기가...음; 만화책이 아니니까 가능할지도요 (긁적)
2006/10/17 21:14
misha X
안 그래도 여기저기 뒤져봤는데 결국 실패했어요. 이렇게 되면 국내 개봉과 맞춰서 책이 나와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 하네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2006/10/1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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