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이]-2006. 10. 15. 18:00 부산 시민회관 [창고/무대 위의 향연]원작/연출: 김태웅
음악감독: 박칼린 주연: 김법래(연산) 공길(최성원) 장생(조유신) 녹수(백민정) *주의: 그다지 호의적인 감상은 아닙니다. 뮤지컬 [이]. 영화 [왕의 남자]만을 접한 분이라면 이 작품이 또 다른 풍성한 즐거움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연극 [이]를 접한 분들이라면 그 느낌이 상당히 여러 갈래로 갈릴 것만 같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두 시간을 훌쩍 넘기는 공연 내내 ‘이 공연을 왜 굳이 뮤지컬이라고 한정지었을까?’라는 의문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가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굳이 ‘뮤지컬’이라는 장르 명칭을 붙이지 않은 것은 (무대예술로서) 내가 관람한 10월 15일의 [이]는 그 수준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우인들의 화려한 한판 놀음은 그야말로 그 시대의 전문 광대들이 바로 저러했겠지 싶을 정도로 기교가 넘치고 활기찼다. 물론 작대기를 주고받다 떨어뜨린다든가 하는 등의 자잘한 실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실수들을 무마하고도 남을 정도로 우인을 맡은 배우들의 아크로바틱 연기는 실로 놀라웠다(15시 낮공연을 마치자마자 바로 18시 저녁공연을 강행한 상황에서의 막공 연기가 그 정도면 정말 상당하지 않은가. 세상에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아닌가; 대체 왜 그렇게 시간표를 짰담?). 주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나쁘지 않았고. 그런데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 이 찜찜함은 대체 뭐란 말인가. 김법래의 연산은 기대한 그대로 광폭한 연산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연산 사이를 자유로이 왕래했고 백민정의 녹수 또한 한없이 교태가 넘치다가도 바락바락 앙칼진 소리로 보는 이들의 정신을 확 들게 만들었다(다만 고음부분에서 다소 흔들린 점은 아쉽다). 조유신의 장생은 기대 이상으로 광대놀음이나 장님놀이에서 한층 빛을 발했고 초반에는 조금 불안한 감이 없지 않던 최성원의 공길 역시 2막의 장님놀이에서 그동안 모아둔 에너지를 쏟아 부은 듯한 느낌. 게다가 막강 실력의 우인들이 공연의 시작과 마무리를 꽉 잡아주지 않던가. 이만하면 상당히 좋은 작품이라 할 텐데, 왜 이 모든 요소들이 각각의 장점만 반짝일 뿐 한데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하는 것일까. 굳이 그 이유를 꼽아보자면, 뮤지컬 [이]는 연극 [이]에서 완전히 독립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종속되지도 않은 상태였다는 데 있다. 사전에 연극이나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뮤지컬 [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서로 꿰맞출 수 있는 실마리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우인들의 놀이판을 제외한 극의 주요부분은 연극의 그 부분을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마저 연극을 답습하고 있다. 뮤지컬만이 전달할 수 있는 최대의 강점인 노래는 뮤지컬 [이]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연극에서 요구하는 연기와 뮤지컬에서 요구하는 연기는 그 방향이나 방법에서 차이가 상당할 터인데, 뮤지컬 [이]의 배우들은 그 사이에서 마치 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마저 준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연기를 잘 한다’라고 느끼고 있는데도 그 미묘한 혼란스러움이 전혀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체 이유가 뭐길래? 1막을 보고 난 후 아연한 마음에 다시 프로그램을 펼쳐보니 아니나다를까 연출이 원작의 김태웅 씨다. 아, 그래서 그랬던가. 연극의 장점을 그대로 뮤지컬로 갖고 와서 재현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장점을 일정 부분 접으면서까지, (그것도 연극의 대사를 대부분 그대로 갖고 오면서까지) 연극이 주었던 감흥을 전달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회한을 담는 연산과 공길의 앙상블은 뭔가 조화를 되는가 싶다가 끝나버린다든가, 두 시간을 훌쩍 넘기는 내내 ‘이거다’하고 귀에 들어오는 노래가 한 곡도 없었다는 것은 좀 심각하지 않은가(물론, 내 귀에만 그랬기를 바라지만;). 즉, 난 뮤지컬 [이]를 기대하고 갔는데 연극 [이]의 리바이벌을 보고 왔다는 얘기다. 이번 뮤지컬의 연출의도가 바로 연극의 충실한 재현에 있었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쟁쟁한 주연배우들과 실력있는 단원들이 공연하는 작품이라면 누구나 연극과는 또 다른 차별화, 뮤지컬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그 점은 좀 고려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뮤지컬의 도입, 특히 마무리를 책임진 이들이 바로 우인들이었다는 것이다. 뮤지컬이기에 가능한 배우들의 현란한 몸놀림과 힘찬 합창. ‘웃는 자가 바로 왕’이라 노래하던 그들 덕분에 나를 비롯한 관객들은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왕이 되어 웃으며 무대를 바라볼 수가 있었다. 어쩌면 뮤지컬 [이]가 관객들에게 선사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을까. 공길이 연산에게 웃음을 주었듯이, 관객들 또한 우인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마음껏 웃으며 박수를 치게 만들기 위한 흥겨운 한판 놀이. 내가 보고 온 뮤지컬 [이]의 진정한 주인공들은 실은 우인들이었다. 한껏 부푼 기대감을 안겨주었던 [이]의 부산 초연은 비록 이틀로 끝이 났지만, 부디 이번 공연에서 나타난 아쉬운 점들을 충분히 보완하여 이어질 울산, 그리고 서울 공연에서는 뮤지컬만의 특성을 십분 살린 보다 완성도 높은 뮤지컬 [이]를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주연배우들의 절절한 노래와 이를 뒷받침하는 연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우인들까지. 원작의 명성에 묻히지 않고 늘 새로이 거듭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꼬리1> 그래도 열악한 환경에서 이만한 공연을 보여주었다는 데 대해서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참으로 감사한다. 사실 시민회관이 음향이나 기타 등등에서 좀 많이 @(&_#%하지 않은가. 더욱 기막힌 건 부산에서 올라가는 굵직한 공연의 절반이 시민회관에서 올라간다는 것이고. -_- 꼬리2> 나열 맨 앞줄에서 공연을 보았는데 우인을 연기하던 이채경 씨(가희)/김은혜(새타니) 씨가 어찌나 눈에 쏙쏙 들어오던지; 꼬리3> 그외 가장 강력한 희망사항, 제발 프로그램 새로 만들어주세요. 날림인 게 너무 티나잖아(콜록). -_-+++ 다른 분들의 감상: 뮤지컬 이-funnybunny 님 2006. 10. 17. 2006/10/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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