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진실은 가슴속에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함부로 스크롤바 내리지 마십시오. 뒤늦게 후회하셔도 별 수 없습니다.
(…사실 영화 1/3 정도에 '반전'을 다 짐작해 버린 나로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감독: 박찬욱 (2003) 주연: 최민식 (오대수) 유지태 (이우진) 강혜정 (미도) 윤진서 (수아) 15년을 기다린 복수가 단숨에 폭발하려 한다. 그러나 정작 폭탄의 진짜 뇌관을 쥐고 있는 사람은 다른 곳에 있었다. 비틀린 운명, 갈 곳을 잃은 분노, 땅으로 꺼질 것만 같이 짓누르는 절망과 슬픔. 그런 남자를 갈구하며 울며 쓰다듬는 여자와 그녀 앞에서 밝게 미소지을 수 있는 단 한 순간의 안식도 허락 받지 못한 채 앞으로의 시간을 살아가야 할 남자. 그가 지은 죄는 별 생각 없이 친구에게 흘린 한 마디, 그게 전부다. 그러나 그 한 마디가 또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파괴하고 한 명을 죽음으로 몰아갔으며, 남은 사람은 추억과 고통과 쓰라림 속에서 때를 기다렸다. 그 한 마디를 그대로 돌려주기 위해, 아니 똑같은 고통을 맛보게 하기 위해. 상식적인 선에서 그들의 사랑을 규정하기란 불가능하다. 그 말은 '상식'과 세상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관념'으로 이 영화를 대하려 하다가는 진실이 아닌 '가식적인' 반전에 얻어맞는다는 뜻이다. 매스컴에서 그토록이나 호들갑스럽게 '충격적 결말', '짐작도 못할 반전' 운운하고는 있지만 영화에, 오대수에게, 이우진에게 몰입해서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그 '반전'이라는 것을 예상보다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고? '충격'이라는 말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오대수가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감정을 영화를 보는 사람이 마치 자신이 느낀 것처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오대수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부짖는 그 한 장면 한 장면에 같이 몸을 떨며 눈물을 떨구어야 진짜 충격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일반상식과 어긋나는 진실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는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건 진짜 '충격'은 아니다. 지독하게 건조하고 지독하게 외로워서 온몸을 떨며 겨우 겨우 2시간 여를 버틸 수 있었던 [복수는 나의 것]과는 달리, [올드보이]는 관객을 한층 배려해주는 영화다. 15년을 갇혀 살며 온몸을 좀먹어드는 절망과 고독 속에서도 오대수는 군데군데 위트가 넘치는 대사를 중얼거리며 관객의 움츠러드는 어깨와 사지를 잠시나마 이완시켜준다. 하지만 웃음 뒤에 곧 이어지는 절망과 슬픔은 [복수는 나의 것] 못지 않게 깊고 어둡다. 오대수가 처음에는 달리며, 나중에는 비틀거리며 십 수명의 사내들과 맞붙던 그 기나긴 복도. 오대수의 손에 들린 것은 장도리 하나 뿐이지만 나중에는 그마저도 어딘가에 떨어뜨리고 맨몸으로 싸워나간다. 그의 편은 아무도 없다. 15년의 세월이 그의 편을 잡아먹었고 그의 마음을 잡아먹었으며 이제는 그의 사랑을 잡아먹으려 한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콘크리트 벽을 두들기느라 못이 박인 그의 맨손. 작대기 15개로 간단히 표시되는 그의 15년. 들끓는 분노와 의문이 한데 뒤섞이며 온몸을 휘감지만 그는 여전히 외롭다. 그는 이제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누구냐', '왜냐'…. 하지만 그것을 알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비밀을 공유하게 된 이우진은 자신의 복수를 끝낸 후 방아쇠를 당기고 안식을 얻었지만 오대수는 이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복수'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에게 쓰라린 변을 겪게 한 대상에게 그와 같은 고통을 경험하게 갚음하는 일'이다. 같은 고통을 경험하게 한다―이 말은 곧 '나를 이해해 달라,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진심이었다.'라는 절망적인 외침을 전달하는 행위와도 같다.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이해를 구하고 싶었던 거다. '자, 너도 한 번 겪어봐. 멈출 수 있을 것 같아?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그만 둘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그간의 감정을 모두 없었던 것처럼 덮어둘 수 있을 것 같아? 네 감정이, 그녀의 감정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우진의 생각은 옳았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싶어도 미도를 남겨두고서는 오대수는 죽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기억을 봉인하고서라도 미도와의 사랑을 지켜가는 것이 오대수에게 있어서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쉽게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사랑을 얻었지만 사랑을 잃었고, 15년간의 고독에서는 벗어났지만 이제 그보다 더한 슬픔의 늪에서 혼자서 몸부림쳐야만 한다. 그의 손에 박인 굳은살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풀리겠지만 그보다도 더한 앙금은 그의 마음을 짓누를 것이다. 텅 빈 펜트하우스 안에 울려 퍼지던 미도와 오대수의 신음소리. 그 소리가 아직까지도 귓속을 파고들고 손과 무릎이 덜덜 떨리며 목구멍 깊은 저 안쪽에서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나는 차라리 영화였다고, 나는 오대수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수십 번 자위(自慰)하면 그만이지만―오대수는? 아, 이 얼마나 처절한 복수인가. 2003.11.22. 2005/11/2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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