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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쿠(大奧)-고정관념에의 도전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
지은이: 요시나가 후미(よしながふみ)
출판사: 백천사/서울문화사
권수: 1권~(2005~)


먼저 고백 하나. ‘요시나가 후미’라는 이름을 우리나라 독자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시켰던 『서양골동양과자점』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 작가가 표면적인 현상 아래 숨겨진 몇 겹의 내면을 들춰낼 수는 있지만 굳이 무리수를 두려고는 하지 않는 안정지향적인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작품 속에서 언급할 수는 있겠지만 독자들에게 강력히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애쓰는 것은 아닌 느낌. 그렇기에 ‘남녀역전시대극’이라는 『오오쿠』를 읽을 때에도 특별한 의미를 두기보다 ‘오오 내밀한 오오쿠 안에서 벌어지는 (찌인한) 베드신을 볼 수 있겠구나 얼쑤!’라는 기대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책장을 펼쳐본 이 작품은 요시나가 후미라는 작가가 자신의 생각과 하고 싶은 얘기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으며, 일반 독자들의 상식적인 선에서 접근해서 풀어내 방법까지 이미 알고 있는 깊은 통찰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처음 시작은 쉽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이 돌아 성인 남성들의 태반이 죽어 나가고 결국은 여성들이 사회를 지탱해야 하는 임무를 지게 되었다는 설정. 그러나 그 설정 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련의 현상들은 막상 누군가가 ‘이런 일들이 일어날 거야’라고 눈앞에 펼쳐 보여주지 않는 이상은 쉬이 상상하기 어렵다. 특히 태어나기 전부터 뱃속 아이의 성별을 두고서 ‘파란색 옷을 준비하세요(혹은 분홍색 옷을 준비하세요).’라고 단정지으며 얘기하고, 남자아이에게는 프라모델을, 여자아이에게는 공주 인형을 사다주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대한민국 같은 사회에서는 더더욱. 남녀역전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바로 유곽에 있는 남자들과 그런 남자들을 사서 아이를 갖고자 하는 여자들을 그리는 부분이다. 남자들의 성욕을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현실은 『오오쿠』 안에서는 아이를 낳아 대를 이으려는, 사회가 존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치환된다. 한쪽 성의 비율이 급감하여 균형이 깨어질 때 일어날 수 있는 재앙을 그리면서도 그 재앙이 현실화될 때의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 또한 지극히 냉정한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오오쿠』가, 그리고 작가 요시나가 후미가 갖고 있는 저력을 짐작케 한다.

『오오쿠』의 미덕은 지금껏 입밖에 내어 말하지 않았던, 아니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부조리함에 정면으로 의문을 던진다는 데 있다. 남성이 담당하고 있던 역할 대부분을 여성이 맡게 된 『오오쿠』의 세계에서 ‘이국인과 만나기 위해서는 남자 복장을 해야 한다(『오오쿠』 1권 162쪽)’에서부터 시작되는 요시무네의 의문은 기실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선입견에 근거를 둔 것이다.

오미츠와 히사미치. 양쪽 모두 네 이름이 맞지?
그렇지요. 가문의 대를 이을 때는 반드시 남자이름으로 당국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역시 「카노토토미노카미 오미츠」라 하면 뭔가 얼빠진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요?
아니. 어쩌면 그것이 정답일지도 몰라. 「히사미치」라 하면 시원스레 납득이 가지만, 「오미츠」라 하면 그렇지가 않지. 그 시원스레 납득이 가고 안 가고 하는 우리의 감각 자체에 문제의 본질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구.

-요시나가 후미, 『오오쿠』 1권, 167쪽, 서울문화사

언뜻 보면 담담해보이지만 따져보면 이 얼마나 신랄한 지적인가. ‘시원스레 납득이 가고 안 가고’란다! 어설픈 변화구가 아니라 한가운데 던지는 스트라이크 직구다. 납득이 가고 안 가고에 이르기까지 무조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받아들여져 온 것부터가 실은 옳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 요시무네와 히사미치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남녀역전시대극’ 『오오쿠』는 단순히 남자와 여자의 성역할만을 바꾼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하기도 전에 이미 당연시되어 버린 것들. 그 ‘당연해 보이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조차 때로는 매장당하기 일쑤인 지금의 현실은 가상의 『오오쿠』의 세계와 겹쳐지며 요시무네가 품고 있는 고민은 한층 더한 무게를 지니게 된다.

요시나가 후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그것도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방법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를 알고 있는 작가이며 『오오쿠』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작가 스스로 ‘남자들간의 애널섹스 등등을 그려 생계를 잇고 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해도 그간의 작품들에서 간간이 보여주었던 내면―사람, 사회, 이상과 현실 그 모두를 아우르는―에의 비판적인 시야와 통찰력은 『오오쿠』에서 한층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서 요시무네의, 요시나가 후미의 (바르지 못한) 고정관념에의 도전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이 부푼 기대감! 비단 『오오쿠』 2권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요시나가 후미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기대감을 계속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꼭 그럴 수 있으리라 믿는다.


꼬리>비록 만화와 영화, 장르는 다르지만 성별의 균형이 깨어질 때 일어나는 재앙을 그리고 있는 또 다른 작품인 [마트루부미]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참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더더욱 입이 쓴 것은 [마트루부미]가 그저 가상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 또한 남성성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이야!!’라고 누군가 외친다 한들, 글쎄. 왜냐하면 인류의 역사 속에서 되풀이되어 왔던 일이기에.

요시나가 후미에 관해서 꼭 읽어보아야 할 글: 요시나가 후미라는 "현상phenomenon": BL/야오이의 또다른 전략-유유遊裕 님


2007. 1. 14.




2007/01/14 11:47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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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비 R X
아이고, 좋은 글 참 잘 읽었어요. 저도 요시나가 후미 참 좋아해요. 미국 오기 전에 요시나가 후미라는 이름만 보고도, 신나서 오오쿠를 1권 보고 왔던 기억이 나는군요. 앞으로가 참 점점 더 기억되는 작품이에요. 저는 이거 보면서 이미라의 남성해방대작전과, 이갈리아의 딸들도 생각나더군요. 완결된 후에는, 각자가 그리는 남여역전사회를 한번 비교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으아. 만화보고 싶다 ㅠ_ㅠ

그나저나 바뀐 스킨 참 이쁘네요. 깔끔하고 답글 쓰는 데 밑줄도 이뻐요. 마음에 드는 스킨 스스로 만들고 싶은데 솜씨가 없어서 ㅠ_ㅠ 부러워요!
2007/01/15 10:36

misha X
요시나가 후미, 은근히 저력있는 작가죠. 데굴거리면서 웃다가도 마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게 만들더라고요.

스킨은 제가 직접 만든 게 아니라 다른 분이 만들어놓으신 걸 받은 거랍니다. 옆에 메뉴 제일 아래쪽에 보시면 Designed by Ritz라고 되어 있어요. ^^;; 저 역시 만들 능력이 안 되어서 예쁜 스킨 만드시는 분들 보면 그저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ㅠ_ㅜ
2007/01/19 23:16

R X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007/01/15 11:14

misha X
아, 저도 들어봤어요. 무지 좋드만요. :-)
2007/01/19 22:44

유 리 R X
저도 이 작가 참 좋아합니다. 은근히 치밀한 부분이 있어요.

이미라 씨의 남성해방대작전이나 이갈리아의 딸들 같은 경우는 그저 남녀의 성별만을 바꿔놓은 것 뿐이라 "대체 달라진 게 뭐야?!"란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심지어 불쾌하기까지한 작품들이었는데, 오오쿠는 달랐어요. 남자는 남성성을, 여자는 여성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지금까지의 서로의 역할을 맞바꾼 것이 인상적이더군요. 첫 에피소드에서 한 가족이 식사를 하는 모습은 특히 더 눈에 띄었어요. 어머니가 가장의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할 미미한 부분에 신경을 쓰다니, 하고 조금 감탄했지요. 전 오오쿠를 보고 이 작가가 더 좋아졌어요 >_<///
2007/02/09 06:42

misha X
그야말로 세심한 통찰력의 소유자란 느낌입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더 많은 힘을 갖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 작가의 좀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요.
2007/02/0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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