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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OZ)-그들을 구원하는 것, 사랑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
지은이: 이츠키 나츠미(樹なつき)
출판사: 백천사(白泉社)/대원씨아이
권수: 전 4권 (1990~1991)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 한계라는 것을 모르고 끝없이 오만해지는 것도 인간이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마치 신처럼 행동하는 것도 인간이며, 감정에 휩쓸려 답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 역시 인간이다. 그렇다면 기계는? 인간이 창조한 과학문명의 산물이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계, 이를테면 사이보그의 사고능력과 지적능력 역시 인간이 부여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계에게 허용되는 사고와 감정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사이보그에게 있어서 자아각성이나 자아성찰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인가?

'우선은 레슨1이다. 키스할 땐 눈을 뜬 채로 있어서는 안 된다.' '왜죠?' '서로의 거짓이 탄로나니까.'…등의 관점에서 『OZ』를 이해하려 한다면 큰 실수이다. 『OZ』에서는 사이보그와 인간의 구별 따위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OZ』가 중점을 두는 것은 점점 기계처럼 변해 가는 인간과 그럴수록 점점 인간화되어 가는 사이보그를 묘사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사라져 가는 '인간성', '인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요구한다. SF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명확한 기준이 서 있지 않은 지금에선 이 작품을 과연 SF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자신이 없다. 미래를 다룬다고 해서, 사이보그가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SF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 작품이?

나이는 어리지만 영재교육의 산물인 천재소녀, 그녀를 보호하는 탈영한 군인, 그리고 그들을 환상과 꿈의 도시 'OZ'로 인도하는 금발의 사이보그. 제3차대전의 결과로 피폐해져 버린 미 대륙의 한 구석에서 그들은 새로운 꿈과 낭만, 삶을 'OZ'에서 찾기 위해 희망에 차서 길을 떠난다. 『OZ의 마법사』에서 나왔던 양철 나무꾼과 겁쟁이 사자 대신 그들이 만나는 것은 국가간의 분쟁 속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군인과 게릴라들. 그래도 그들은 아직까지 'OZ'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 권력과 과학에 대한 집착의 결과가 제3차 대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과학도시 'OZ'만이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희망에 들떠 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미치광이 과학자, 발광해버린 사이보그들이 벌이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 바닥으로 치달아버린 과학과 인간의 이기심이고, 푸른 평야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이상의 과학도시 'OZ'가 신병기 개발 연구소를 겸한 군사기지였다는 사실이다.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또 한번 의심스러워지는 순간. 명장면 중 명장면이다. >_< 사실 인간이니 기계니 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을 인도한 1019는 기계에선 있을 수 없는 '감정의 폭주'로 인해 완전히 미쳐 버린다. 게다가 OZ 안에는 창조주 리온의 명령만을 듣는 사이버노이드들이 득실거리고, 천재 과학자라던 리온은 사실 자기가 모든 것을 차지하고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유아적 발상에 사로잡혀서 이죽거린다. 게다가 이 콤플렉스 덩어리인 천재님은 무병장수라는 독재자들의 공통된 망상에까지 사로잡혀 있다. 계속되는 사막화로 경작 가능한 땅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전쟁을 유발시켜, 철저한 경제논리로 세계를 한번 주물러 보겠다는 리온의 논리 앞에서는 인간의 윤리나 도덕심 따위는 이미 구세계의 유물에 불과하다. 과학의 오용으로 인한 킬러 위성의 개발로 제 3차 대전이 발생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과학으로 그 위기를 벗어 나기는커녕 오히려 그 칼날을 계속 인간에게 들이대는 리온같은 인물이 과연 OZ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리온은 권력자의 대표일 뿐, 또 다른 리온 에프스타인이 언제 어디서 다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기계에게까지 키스해 줄 마음은 없어'라는 말에 미쳐버리는 기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신이 기계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살고 싶다고 울부짖는 1019앞에서 기계니 인간이니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무토에게 인간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1019. 필리시아와 비앙카가 무토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어린 시절의 성장과정에서 계속 이어지는 질투와 갈등. 한번 총을 겨눈 상대는 놓치지 않는 '냉혈' 네이트가 사랑해버린 사이보그 1024. 꿈의 도시 OZ로 오면 그 모든 혼란함과 갈등이 다 해결될 거라고 믿었지만 다모클레스의 검인 이 도시는 결국 '인간'에 의해 땅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인간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그들이 만들어 낸 '인간'이 그 모든 고통을 등에 지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1019 자신을 인간으로 대해준 유일한 사람인 무토에 대한 1019의 최대한의 사랑의 표현이고, '꿈의 도시 OZ'가 인류에게 남겨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리온이, 인간이 멋대로 제어해 버린 기계의 감정은 갈 곳 없이 표류하다가 미쳐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지만, 결국은 그들의 감정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희망, 그리고 마음의 '굴절'. 결국 이 만화는 과학 이전에 '사랑'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과학도시 OZ를 묘사하면서 눈에 띄는 메카닉의 비주얼이 없다는 것은 한계일 수 있지만, 『OZ』의 가치는 그것을 무마하고도 남음이 있다. 1019가 무토에게서 키스를 받고, 마지막으로 눈물 흘리면서 '기쁩니다'라고 말하는 감정표현은 이 작품에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이고 무토에 대한 1019의 사랑을 확인케 하는 것이었다. 비록 1019는 OZ와 함께 묻혀져야 할 과학의 산물이었지만, 무토와 필리시아의 아이들은 과학의 또 다른 산물인 보리밭에서 뛰놀며 사랑을 꿈꾸게 될 것이다. 1019의 머리빛깔과 같은 황금빛 보리밭에서.


200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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