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겨우 힘겹게 눈을 떴다. 눅눅하게 내려앉은 공기 때문인지 온몸이 무겁다. 창틀에서 타닥타닥 빗방울이 돋는 소리가 들렸다. 엊저녁에 잠시 그쳤던 장맛비가 다시 내리는 모양이다. 침대 밖으로 한 발을 내딛자마자 순간 아찔하는 바람에 다음 발을 헛딛고 주저앉고 말았다. 왜 이렇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제대로 된 밥을 먹은 지 50시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진한 블랙커피 네다섯 잔, 아마드의 레몬&라임 티백을 우려낸 홍차 역시 네다섯 잔, 냉장고에 남아있던 버드와이저 캔맥주 네 개, 그리고 텅 빈 채 나뒹굴고 있는 1리터짜리 생수병 두 통…. 뭔가 씹는 것을 먹어야 한다는 건 알고는 있지만 몸에서 받아주지 않으니 별 도리가 없다. 다시 입맛이 당길 때까지는 이대로 있는 수밖에.
굳이 거실까지 나가 베란다 창을 열어보지 않아도 아마 바깥은 잔뜩 내려앉은 어두운 비구름에 짓눌려 있을 게다. 그 묵직함만큼이나 텅 빈 집안에도 침침한 어둠이 낮게 깔려 있다. 두어 달이 넘도록 치우지 않아 책상이며 바닥에 어지러이 널린 책과 문제집과 자료, 자료들. 내 몸 안 챙기는 거야 그렇다 쳐도 내 몸이 머물고 있다는 이유로 이 이상 방마저 엉망진창으로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한없이 늘어지는 팔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이려면 다시 물이라도 마셔야 한다. 비틀거리며 냉장고로 향했다. 유통기한이 이틀 남은 흰 우유 한통. 우유를 따를 컵을 찾아 식탁 위를 두리번거리니 웬 제과점 봉투 안에 카스테라, 단팥빵, 크림빵 등 종류별로 쌓여있는 빵과 함께 쪽지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제발 좀 먹어라!! 잔뜩 화가 난 상태에서 휘갈긴 듯 엉망으로 날려 쓴 글씨는 작은 오빠의 글씨다. 미안한 마음에 제일 위에 놓인 카스테라 봉지를 뜯다가 그만 도로 넣어버렸다. 마음이 동할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다는 걸 그도 알고 있기에 그대로 있는 빵 봉투를 보더라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하지 못한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우유 한 컵을 세 번에 나누어 마시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일단 문제집은 문제집대로 한데 모아두고, 따로 출력한 자료는 자료대로 A4 파일 케이스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각종 참고서며 연구자료도 일단 차례대로 벽에 기대 쌓아두고 특활반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프랑스 혁명자료도 따로 클립으로 묶어 4호 규격 행정봉투 안에 넣어두었다. 혹시 모를 오류나 오탈자가 있을까 싶어 출력해놓은 기말고사 문제를 들추어보았다. 첫 번째는 파란색 펜으로, 두 번째엔 빨간색, 마지막으로 노란 형광펜으로 체크, 체크, 체크. 이상없음을 다시 확인하고 시험지는 갈기갈기 찢어 휴지통으로, 시험문제 파일을 저장한 USB는 가방으로. 이것저것 메모해놓은 이면지와 읽다가 팽개쳐둔, 어림잡아 족히 열흘 치는 될 듯한 조간신문 더미는 한데 모아 거실 쪽으로 밀어놓았다. 얼기설기 쌓여있는 택배상자 안에 들어있는 책들을 끄집어내고 완충용 비닐팩은 볼펜 끝으로 찔러 공기를 빼낸 후 다시 휴지통에 집어넣었다. 바닥에 널린 것들을 대충이나마 쌓아두고 고개를 들자 눈에 들어온 것은 빨래건조대에서 걷긴 걷었지만 제때 옷장 서랍에 넣어두지 않아 빨아야 할 옷들과 죄다 섞여버린 티셔츠며 속옷, 양말들, 제자리에 있지 않고 그저 되는대로 쌓여있는 책상 위의 온갖 잡동사니들. 30분 동안 정말 계속 치우기만 했는데도 별반 달라진 기색이 없는 방안이었다. …꼭, 나 같구나. 기껏 치웠다고 생각했는데도 정리는 전혀 되지 않는. 그래도 한숨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다시 몸을 움직였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다시 이중 삼중으로 겹쳐 꽂아 바닥에 쌓아둔 이런저런 책들을 빽빽하게 끼워 넣었다. 아마 두어 달 후엔 지금보다 더 늘어나 있을 책 때문에 몽땅 뽑아내어 이런저런 방법으로 겹치고 겹쳐서 다시 꽂아두어야 할 테지만 일단 이 상태로 당분간이나마 견딜 수 있을 터였다. 바닥에 널브러진 옷들은 애써 빤 옷 빨아야 할 옷 가릴 것 없이 몽땅 세탁기 안으로. 이제 어떤 기준이나 규칙없이 그저 빈 공간 내지는 쌓아둘 수 있는 평면 위에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는 온갖 물건들에 점령당한 책상을 치워야 할 차례다. 50개 들이 공CD 케이스 여러 통, 그것과는 별개로 나뒹굴고 있는 CD들, 탁상달력, 아이디어 메모용 수첩, 읽다말고 책갈피만 끼워둔 잡지며 책, 손목시계, 어디로 갔는지 한 짝씩 달아나버린 귀고리들, 아까 내놓지 않은 나머지 신문들, 온갖 필기구, DVD…. 자주 손이 가지 않는 물건들은 어디 서랍 속에 넣어둬야 할 텐데. 책꽂이에 여유가 있다면 한켠을 비워 그쪽에 쌓아두기라도 하련만 더 이상은 자리가 없었다. 이제 남은 수납공간이라고는 책상에 딸린 세 칸짜리 서랍. 저 서랍들을 비워서 그 안에 다시 정리해두는 수밖에는 없었다.
서랍에는 열쇠가 없다. 그냥 있는 대로 차곡차곡 집어넣고 닫아두었을 뿐이다. 그저 닫아두기만 한 지가 4년. 4년 동안 한 번도 열지 않았지만 그 안에 어떤 물건들이 들어있는지는 모조리 다 기억한다. 깊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조심스레 손잡이를 향해 뻗는 손끝이 살짝 떨렸다. 4년 만에 열어본 서랍은 마치 그러기를 기다렸다는 양 너무나도 부드럽게, 소리없이 스르륵 열렸다.
제일 위쪽 서랍 맨 안쪽에는 그와 함께 보았던 영화며 공연 티켓을 담아둔 상자가 있다. 공연은 아마도 중학교 시절부터, 영화 티켓은 고등학교 무렵부터. 세숫비누 세 개가 들어가는 빈 상자 4통 안에 빼곡히 들어찬 티켓들. 10년은 족히 지난 티켓들은 이미 노랗게 색이 바래있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첫 번째 서랍은 가득 차버린다. 두 번째 서랍 제일 밑바닥에는 들어있는 하늘색 대봉투 안에는 그가 준 편지들이 들어있다. 둘이 함께 보았던 영화 이야기, 연극 이야기, 책 이야기, 사춘기 시절의 치졸한 감성을 주체할 길 없어 외견상으로만 그럴 듯하게 꾸민 흔적들에 간결하게, 담백하게 답해주었던 쪽지며 편지들. 군대에 있을 때 보내준 편지들. 제대한 후에도 두 달에 한 번씩은 꼭 써서 전해주었던 편지들. 조곤조곤 진지했던 그의 성격만큼이나 글씨도 더없이 단정하다. 꼭꼭 눌러쓴 편지지 뒷면에 새겨진 미세한 요철을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편지 내용보다도 정작 손끝에 와 닿는 그 느낌이 좋아서, 마음까지 함께 눌러쓴 듯한 그 느낌이 너무도 좋아서 하냥 쓸어보기만 했던 적도 있었다. 봉투 위 자그마한 포켓앨범에는 그와 함께 찍었던 사진들이 꽂혀 있다. 처음으로 같이 찍은 사진은 큰오빠의 중학교 졸업식. 마치 친동생인 것처럼 그의 손을 꼭 붙잡고 매달리는 나를 보고 어이없이 웃던 큰오빠와 내 어깨를 살갑게 감싸 안아주던 그가 찍혀있다. 그토록 오래 함께 했었건만 사진 50여장을 꽂을 수 있는 포켓 앨범 하나를 간신히 채우는 것은 사진 찍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그 덕분이다. 서운한 적도 없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와서 생각하니 참으로 다행이라면 다행스러운 일. 제일 크고 바닥이 깊은 세 번째 서랍에는 그가 선물해주었던 책이며 CD며 테이프가 가득이다. 장르도 종류도 딱히 정해지지 않은, 기준이라 하면 오직 ‘그가 좋아했던 것’들. 그리고 그 언젠가부터 ‘나도 좋아하게 된’ 것들. 누군가가 나더러 ‘어떤 곡을 좋아해요.’ 내지는 ‘어떤 작가를 좋아해요.’라고 묻는다면 이 세 번째 서랍을 열어 보여주면 되리라. 과연 그와 나를 모르는 그 누군가 앞에서 이 서랍을 열어 보일 수 있다면 말이지만.
1년 이상 열어보지 않았으면 앞으로도 영영 열어볼 일은 없다며 작은 오빠는 늘 신경질적으로 서랍을 정리해버리라고 몰아붙였고 큰오빠는 자기가 먼저 비워버리겠다며 다짜고짜 쓰레기봉투를 들고 방안에 버티고 서긴 했지만 두 사람은 결국 손을 대지 못했다. 나와는 또 다른 의미로 친구 이상 형제와도 같은 느낌으로 함께 했던 그들이니만큼 이 서랍은 오빠들에게 있어서도 쉬이 손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랍 속 편지들은 정말 꽁꽁 숨겨놓은 것을 제외하고는 짓궂은 오빠들 손에 한 번씩은 까발려졌었고, 사진들의 절반은 오빠들과 함께 찍었던 것들이고, 테이프며 책들은 몰래 내 서랍에서 한두 개씩 꺼내가서는 줄창 보고 듣다가 내 성화에 못 이겨 도로 갖다놓은 것들이므로. 나를 알고, 그를 알고, 우리 둘과 가장 가까웠던 그들에게 있어서도 이 서랍은 늘 마음속에서도 열리지 못한 채 남아있었을 게다. 이런 식으로 그를 잡아놓은 것도 나, 이제 조금씩 놓아야 하는 것도 나.
―그렇게 변해갈 나를, 그 사람을 조금씩 잊어갈 나를, 내가, 용납할 수가 없어요.
우습다. 그 사람 앞에서는 그리도 당연한 듯 자신있게 내뱉었으면서, 이 순간 세 칸짜리 서랍을 모두 열어둔 채 망설이고 있다. 아니, 지금 막 열었다 뿐이지 사실은 매일 저 서랍을 보면서 망설였더랬다. 언제까지 담아두기만 해야 할까. 언젠가는 비워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될까. 이렇게 그의 흔적들을 없애도 될까.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들을 두서없이 쓰레기봉투에 쓸어 담아버려도 되는 걸까. 그렇게 나 자신을 내버려도 되는 걸까. 정말 모든 걸 없애버리면 과연 어떻게 될까. 20년 가까이 내 마음을 채워왔던 것을 몽땅 비워버리면, 그때의 나는 대체.
“인수 오빠. 그래도 돼?”
만 하루 만에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대답해줄 사람도, 물음에 대한 답도 없는 질문을 뱉어내고는 혼자 쓰게 웃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방안이 마치 동굴 속이라도 되는 것처럼 살짝 소리가 울렸다. 그러고 보니 그날 이후 그의 이름을 말해본 것도 처음이다. 내친 김에 더 불러보았다. 인수 오빠, 인수 오빠, 인수 오빠. 생각보다 쉬웠다. 내 입으로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나 쉬워서 순간 웃음마저 나왔다.
“인수 오빠. 방이 너무 복잡하다. 정리하려면 어디든 물건들을 넣어버려야 하는데 넣을 데가 없어.”
역시, 답은 없다. 그러나 내가 아는 그라면 피식 웃으며 말할 것이다. 왜 진작 버리지 않았냐고. 언제까지 지나간 이를 품고만 있을 작정이었냐고. 그냥 차라리 마구 화를 내주었으면. 늘 기억해달라고 매달려주었으면. 이젠 정말 나를 잊을 작정이냐고 말해주었으면. 아니…그렇게 말해주기를 바라는 건 그저 내 욕심일 뿐이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그를 보내기가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러니까, 치울게. 이젠 더 이상 치우지 않음 안 될 거 같다.”
일단 말로 하고 하니 마음은 절로 따라왔다. 아무 망설임없이 베란다 안쪽 창고 문을 열어젖혔다. 습하고 퀴퀴한 내음이 확 몰려나왔다. 구석에 잘 접혀있는 라면 상자를 두 개 꺼냈다. 창고 안에 고이 들어있던 것이라 먼지도 별로 없었다. 대충 두어 번 털고 상자 바닥을 청테이프로 고정한 후 제일 아래쪽 서랍에 있는 것들부터 하나씩 끄집어냈다. 포 플레이, 램시 루이스, 파코 데 루치아…. 이것까지 넣는다면 작은 오빠는 아까운 걸 버렸다며 화내려나.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상자 안에 차곡차곡 넣기 시작했다. 한번 속도가 붙으니 손은 쉼없이 움직였다. 눈 깜짝할 새에 서랍 두 개를 비워냈다. 종이상자도 한 개를 다 채우고 남은 하나에도 1/3 정도 차 있었다. 가득 찬 상자 하나를 끌어당겨 뚜껑의 이를 잘 맞춰서는 꼼꼼하게 청테이프를 발랐다. 한 번, 두 번, 모서리에도 또 한 번. 마지막 남은 서랍 하나를 열어 티켓이 가득 담긴 상자들을 꺼내어 담았다. 마지막 남은 한 개를 꺼내려는데 무언가가 툭 딸려 나와 발치에 데구르르 굴러왔다. 그날, 그가 끼워주었던 반지였다.
며칠 동안, 그는 내 손을 한참 매만지며 자기 손과 맞대어 손가락 길이를 재보기도 하고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다. 왜 그러냐고 묻자 ‘그냥, 손이 생각보다 많이 작아서. 여자 손은 다 이런가봐?’라며 어물쩍 넘어가곤 했다. 그러다 바로 그날, 내 손에 끼워준 반지 하나. 그리 예쁜 디자인은 아니지만, 라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심스레 건넨 백금 반지. 그와 관계된 것들 중 가장 잊기 쉬우면서도 가장 잊기 어려운 것. 그 반지를 끼고서 행복에 겨워했던 건 채 3시간도 안 되었지만 그때 내 귀맡에 속삭이던 그 말은―너무나 흔하디흔한 그 한 마디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가장 특별한 한 마디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이미 반지는 내 손에 없었고 오빠들 중 누군가가 챙겨뒀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그 이후로도 나는 애써 반지의 행방을 묻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서랍 구석에 처박혀 있어서 그런지 빛은 무뎌졌지만 동그란 링에 박힌 아쿠아마린은 여전히 반짝거렸다. 살며시 왼손 약지에 밀어 넣자 반지는 원래 있어야 하는 자리인 양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때 그가 내 손에 끼워주던 반지는 마치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꼭 들어 맞았더랬는데 지금은 살짝 헐거웠다. 그래, 그때처럼은 아니겠지. 이젠 모든 게 달라졌으니까. 살며시 입술에 반지를 가져다대자 차가운 금속 특유의 냉기가 입술을 타고 목줄기를 지나 가슴 언저리로 내려앉았다.
“인수 오빠. 이건 어떡할까? 반지는 워낙 작아서 그렇게 공간도 안 차지하는데. …일단 벌여놓은 것부터 치우고 봐야겠다. 그치?”
헐렁한 반지를 끼고서 다시 서랍 정리를 시작했다. 남은 티켓 상자를 다 집어넣고 나니 마치 꼭 맞춘 듯 두 번째 상자도 가득 찼다. 꽤 묵직한 상자 두개를 문간으로 밀어 놓는 게 의외로 버거웠다. 텅텅 빈 서랍에 온갖 잡동사니를 쓸어 담았다. 자주 쓰는 필기구며 수첩, 자질구레한 액세서리는 제일 위쪽 서랍에. 자질구레한 인쇄물이며 자료들은 차곡차곡 포개어 클립으로 묶어서는 두 번째 서랍에. CD며 DVD 같이 모양새가 큰 것들은 바로 보고 꺼낼 수 있도록 제일 마지막 서랍에 차례대로 넣어두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막 일어났을 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온몸이 노곤했지만 내친 김에 죄다 해치워버려야 할 것 같았다. 청소기의 흡입구까지 바꿔가며 책장 모서리 사이사이까지 죄다 쓸어내고 큰오빠가 차를 닦을 때만 쓰는 극세사 걸레를 적셔서는 문지방 틈새부터 책상 위 스탠드 전선 이음새까지 꼼꼼하게 닦아냈다. 숨이 차올라 잠시 침대에 걸터앉아 있으려니 더 이상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변덕스런 장맛비가 금세 또 그친 모양이다. 귀한 햇살을 놓칠세라, 환기도 시킬 겸 베란다 창문도 내 방 창문도 활짝 열어젖혔다. 그래봤자 똑같이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겠지만 모처럼 마음먹고 청소까지 깔끔하게 끝냈으니 그 정도야 뭐 어떠랴. 눅눅한 바람이라도 이마에 배어나온 땀을 식히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책장 모서리에 등을 대고 길게 기대앉자 발끝에 테이프로 꽁꽁 발라놓은 상자 두 개가 닿았다. 4년 동안 끌어안고 있었던 그의 흔적들이, 나의 지난 20여 년의 시간이 채 30분도 안 되는 동안에 달랑 저 상자 두 개로 정리되어버렸다.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다.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죄다 꺼내어 상자에 담고, 빈 서랍에는 다시 새로운 것들을 넣어 채우고 상자는 봉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치면 마음도 다를 게 뭐가 있을까. 마음에 남아있던 그를 조금씩 지우고, 다른 이를 조금씩 담으면 되는 거다. 그래, 바로 이 서랍처럼. 엊저녁 느닷없던 그 사람의 고백처럼.
―손만이라면 당장이라도 놓을 수 있어요. 하지만 마음은 잡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할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으시다면.
고백. 마음속에 숨긴 것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 연인 사이라면 좋아한다든가, 사랑한다는 등의 그런 말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 오랜 시간동안 그도, 나도,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서로를 보아왔고 언젠가부터 서로가 곁에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으므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민 손에 기다렸다는 듯 깍지를 끼었고 이때다, 라고 정한 것도 아니었지만 저도 모르게 상대방의 입술을 맛보고서는 새로이 눈뜬 감각에 두근거렸더랬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듯 그저 서로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갈증을 풀 수 있었던, 굳이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그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 안이 가득 차오르는 듯한 그 충만함과 절대 흔들리지 않을 안정감. 그것만으로도 완벽하다고 생각했기에 만족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영정 앞에서 울지 않았다. 아니, 울 수가 없었다. 무작정 슬픔을 쏟아내기엔 아직 못한 말이 너무도 많았다. 고맙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한번 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에게 다짜고짜 작별인사를 건넬 수 있단 말인가. 영어 공부 봐주었던 거 고마워, 함께 영화보러 가주었던 거 고마워, 보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달려와줘서 고마워, 괜히 토라진 척 하고 있어도 순순히 투정 다 받아주고 감싸주어서 고마워, 내 손을 잡아줘서 고마워, 날 안아줘서 고마워, 결혼하자고 말해주어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렇게나 가슴속에 가득가득 들어차 있었는데, 단 한번도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 왜 바보같이 그냥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을까. 그날 이후 꿈속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울며 토해내듯 때늦은 고백을 하게 될 것을 알았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래, 실은 그 사람의 고백에 순간 가슴이 떨렸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릿함에 두근거리기도 했다. 천천히 손가락에 헐겁기만 한 반지를 매만졌다. 한때는 손에 꼭 맞았지만 이젠 더 이상 맞지 않는 반지.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곱씹고 또 곱씹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나. 서랍을 열었다. 반지를 넣어둘 만한 케이스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안쪽을 향해 반지를 넣고 탁 닫아버렸다. 챙 하고 서랍 바닥에 반지가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인수 오빠. 미안해. 진작에 사랑한다고 얘기해주지 못해서….”
끼니를 제때 때우지 않아 그런지 잠을 자도 피로가 영 풀리지 않아 눈이 뻑뻑했다. 안경을 벗고 눈을 깜박거리자 때맞춰 스위치라도 누른 것처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뺨을 타고 내려와 턱에 방울방울 맺히는 눈물을 닦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래. 오늘은 마음놓고 그냥 울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그냥 울어버리자. 엉엉 소리를 낼 필요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 눈물은 쉬지도 않고 나왔다. 이틀 동안 마신 것들이 이젠 죄다 눈물로 나오려나 보다.
“사랑해….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 계속 생각나…. 근데, 오빠…나 있지….”
말해도 될까. 그래도 될까. 꿈속에서라도 나올까봐 몇 번이고 입을 틀어막고 삼켰던 말.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찢어지듯 비명을 질러댔지만 누가 강요한 적도 없지만 스스로를 묶어두고 가둬 두었던 금기는 너무도 쉽게 깨어져버린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마지막 버팀목이 삭을 대로 삭아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느끼며 그예 눈을 감았다. 우스운 일이다. 꼭 해야 했던 그 한마디는 결국 하지 못한 채 입밖에 낸 것이 스스로에게 주는 면죄부라니.
“아직도 오빠 사랑하는데, 그런데 그 사람도 자꾸 생각나…. 그냥, 자꾸, 자꾸, 생각나….”
그 말만은, 도저히 그 고백만큼은. 몇 번이고 입술을 짓씹으며 그것만은 안 된다고 다짐했건만 속절없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여전히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나왔다. 그래, 계속 울어야지. 눈물로 내 마음을 다 씻어내 버릴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며칠이고 울 수밖에. 이젠 받아줄 이 없는 사랑도, 미안함도, 죄책감도, 어느 틈엔가 그 사람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조금씩 스며 나오는 설렘과 두근거림도, 그렇게 죄다 깨끗하게 씻어내고는 그저 껍데기인 나만 남게 될 지라도. 오늘 하루로 안 된다면 내일도, 모레도 계속 울면 된다. 그날 이후 이미 한번 죽은 마음이니. 모두 비워내고, 다시 추스르자. 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진짜 따뜻한 사람과 마음을 주고받기에도 짧다면 한없이 짧은 시간, 시간들. 텅 비어버린 나 때문에 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다. 들어줄 이 없는 고백은 나 혼자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묵직한 상자들을 끌어당겨서는 천천히 그 위에 엎드렸다. 투두둑 떨어지는 눈물 때문에 종이상자 뚜껑에 점점이 짙은 얼룩이 하나 둘씩 번져갔다. 가뜩이나 습기 때문에 눅눅해진 종이가 푹 젖을 때까지 울고 또 울며 나는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모를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미안해요, 그리고…보고 싶어….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도 모르는 새 방안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꽉 잠긴 목에서는 더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눈물만은 샘솟듯 계속 흘러나왔다.
다시, 바깥에도 지겨운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2007. 4. 27.
*‘하냥’은 ‘늘’의 잘못된 표현입니다만, 그 어감이 좋아서 종종 쓰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