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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무휼] 2007년 5월 12일 1회/2회 [창고/무대 위의 향연]

원작·1차 각색: 김진
연출·2차 각색: 이지나
작·편곡: 이시우
작사: 정 영
음악감독: 구소영
안무: 안애순
주연: 무휼-고영빈
해명-홍경수
혜압-고미경
호동-김호영
이지-도정주
연-여정옥
괴유-김산호
세류-신영숙
가희-이채경
마로-김백현
배극-배성일
병아리-심정완
새타니(젊은 시절의 혜압)-김은혜
대소-박원묵
대소(젊은시절)-최정수
연비-박석용


5월 12일 15:00(1층 B열 101)/19:00(1층 B열 100)의 후기입니다.



2006년도에 뮤지컬 [바람의 나라-무휼]을 관람했던 이들이라면 이 작품을 두고 상반된 평가를 내렸을 법하다. 철저히 원작에 대한 경외로 가득 차 있던 이 공연에 대해 원작의 팬들은 무한한 찬사를 보내고 원작을 잘 모르던 이들마저 ‘카드명세서로 망무기굿을 벌인다.’라고 할 정도로 공연에 몰입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등장인물들 간의 복잡한 관계와 대립구조를 이미지만으로 풀어가는 진행에 힘들어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년의 공연은 당연히 재공연을 기대하게 할 정도의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무대 위에서 온전히 자기 노래 한번 부르지는 않았지만 무휼이 왕이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호동왕자가 죽는 마지막 부분에서 무휼이 어린 호동을 껴안고 있는 만화의 장면이 스크린에 비춰지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으며, 12분간의 전쟁씬이 끝나고 괴유가 거칠게 숨을 몰아쉴 때 다함께 두 주먹을 꼭 쥐었고, 저승에서 올라온 해명태자와 그의 연인 새타니가 서서히 멀어지며 노래를 부를 때 그들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렸더랬다. 저마다 기억에 남는 부분들은 조금씩 달랐으되 분명 작년의 공연은 한번 본 관객들이 계속하여 공연장을 찾게 만드는 알 수 없는 흡인력을 갖고 있었고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공연장으로 향하는 이유모를 이끌림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이러한 작품을 만났다는 데 대해서 기뻐하며 다시 공연장을 찾았다. 마치 무휼의 뒤를 따르겠노라 맹세했던 해명태자, 세류, 괴유, 마로, 그리고 고구려의 군사들처럼.

제작진의 고민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뮤지컬 [바람의 나라-무휼]이 아무리 원작만화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해도 만화적 이미지를 무대에서 재현하는 파격적이기까지 한 연출이 대다수의 일반관객들에게는 아직 많이 낯설었을 것이다. 언제까지고 원작의 팬들과 작년 공연의 팬들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법. 공연예술의 가장 큰 장점은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며 진화한다는 것이기에 2007년 [바람의 나라-무휼]이 어떤 변화를 보여주려 할 것인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보다 더 많은 일반관객들을 위해, 더욱 세밀하게, 더욱 친절하게. 그리하여 더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고 그들을 다시 공연장으로 끌어들이는 것. 그러나 그 변화는 과연 진화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제자리걸음일까. 그도 아니면 퇴화해버리는 걸까?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한다. 2007년 [바람의 나라-무휼]은 많은 것을 잃었다. 혹은, 버렸다. 비록 채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쪼개진 원석의 단면마냥 반짝거리던 것들은 지나친 세공으로 오히려 그 빛을 잃었고, 2007년도 공연을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해 추가한 듯한 새 노래들은 작품에 전혀 함께 녹아들지 못하고 오히려 장면과 장면 사이의 유기적 연결을 방해한다. 좀 더 화려한 볼거리를 위해 넣은 장면들 역시 충분하다 못해 과해서 그 부담감을 더한다. 새로 바뀐 가사들은 지나치게 설명조로 되버리는 바람에 작년의 시적·은유적 표현이 지니고 있던 깊은 맛은 사라져버린다. 게다가 뜬금없이 드라마에 사용되어 2006년도 뮤지컬 팬들을 당혹케 했던(나는 절망했다!) ‘무휼의 전쟁’ 테마는 더 이상 그 곡을 [바람의 나라-무휼]만의 것이 아닌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드라마를 계속 생각나게 하여 작년에 공연을 본 사람은 물론이고 이번에 공연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마저도 그 웅장한 장면을 순수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2007년도 공연은 무휼을 왕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끌어내리고 말았다.


무휼은 왕이다. 그리고 왕이어야 한다. 이것은 작품을 존재하게 하는 절대명제이며 이 명제가 의심받거나 흔들리게 되면 공연 자체가 힘을 잃어버린다. 그렇다면 무휼은, 왕은, 사람도 아닌가? 왜 인간으로서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면 안 되는가? 이 작품에 있어서만큼은 주인공 무휼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게 되면 주변인물, 즉 해명태자, 세류, 호동과의 차이점이 없어진다. 그들이 왕 앞에서 머리 숙이는 이유가 없어진다. 왜 혜압과 명림의 군사들이 그의 뒤를 따르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가야할 곳은 부도다.’라며 발길을 돌리는 무휼을 이해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물론 그에게도 인간적인 고뇌는 있다. 그러나 그 고뇌를 본인이 표현하지는 않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그는 철저히 왕으로 남아있어야 하고 그가 지닌 고민과 아픔은 그를 따르는 인물들을 통해 표현된다(해명: ‘그는 외로운 사람이다.’/세류: ‘나의 왕, 어깨를 펴세요.’).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가지 않았어도 되었던 부도로의 길, 왕으로서의 길을 가야 하는 데에서 오는 인간적인 고민과 갈등은 일곱 살 어린 무휼일 때 이미 끝냈던 것들이다(‘더는 약하기 때문에 잃고 살지 않겠다.’). 그는 자신이 왕임을 고민하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아무리 많은 목숨들의 무게를 지고 제 손을 피에 흠뻑 적시더라도 왕이기 때문에 견뎌야만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신은 왕이십니다. 그리고 왕이셔야 합니다.


혜압이 말한다. ‘그가 옵니다. 고구려의 왕!’ 그 자신이 왕임을 의심하지 않기에 혜압은 그를 왕으로 인정하며 명림의 군사들을 그에게 내주고, 해명태자는 죽어 그의 머리 위에 실리며, 괴유는 천년에 천년을 거듭하여 살 수 있는 생명을 내맡기고, 호동은 그가 아버지이기 이전에 왕이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갈등한다. 그런 그가 왜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해야 하는가? 왜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반문해야 하는가? 의심을 했으면 다시 왕으로서의 자신으로 돌아왔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의문은 의문 그대로 남긴 채 그는 다시 부도로 향한다. 아니, 향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순간 관객들은 느낄 수밖에 없다. 무휼이, 그리고 [바람의 나라-무휼]이 방향을 잃었다는 것을. 전장에서 부르는 무휼의 노래는 왕인 그를 위해 싸웠던 병사들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어버리고 왜 괴유와 마로와 세류와 해명태자가 ‘이런 왕’을 위해 목숨을 걸고 운명을 걸었는지에 대해 관객들이 의심하게 한다. 1막에서부터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고 또 그래야만 하는 왕인 무휼을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으로 전락시켜 버린 것이다.     

극의 중심에서 절대 흔들리지 말아야 할 왕인 무휼이 흔들리자 공연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12일 1회 공연 때 명림숲에서부터 ‘죽여, 죽여, 죽여….’를 외치는 혜압의 대사부터 어딘가 힘이 빠져있다고 느낀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미묘하게 느려진 듯한 템포, 결코 넓다고는 할 수 없는 토월극장임에도 무대 위의 열기가 관객들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다. 어느 한 사람만이 그렇게 느슨해지고 힘이 없어진 게 아니다.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늘어지고 힘이 빠진다. 왕으로 걷고 움직여야 할 무휼의 움직임 역시 그냥 정해진 안무와 동선에 따라 움직인다는 느낌이다. 아마 내가 2006년도의 공연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 설명할 수 없는 맥빠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층 객석에서도 손발이 절로 떨릴 정도로 느낄 수 있었던 무휼의 그 압도적인 존재감을, 해명태자의 힘을, 혜압의 진중함을 이미 온몸으로 경험한 나로서는 2007년의 이 느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충분히 그 아우라를 드러낼 수 있는, 또 그런 실력을 갖추고 있는 배우들이 바뀐 연출 때문에 스스로 자기 존재감을 억누르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니!!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싶었는지 올해 공연에는 몇몇 장면들이 추가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무휼과 이지의 첫날밤, 그리고 배극의 죽음이다. 먼저 무휼과 이지의 경우, 지나치다. 만약 막공에서 그랬다면 팬서비스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건 너무 지나치다. 유혹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려 했다면 ‘조금만 더’라며 아쉬움을 남기는 순간 멈추었어야 했다. 2006년 공연에서 절제된 분위기 가운데 상징적인 안무로 첫날밤의 상황을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그냥 ‘대놓고’ 보여준다. 첫날밤의 무휼과 이지는 남자 대 여자가 자아내는 긴장감과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바가 다르기에 빚어지는 정치적 대립각을 연출해야 함에도 직접적인 베드신으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죄다 없애버리고 만다. 배극의 등장 역시 작년과 비교하여 대사와 연출이 상당히 바뀌었는데 이 역시 지나치게 수식이 많고 길다는 느낌이다. 만약 작년처럼 공연 전체의 긴장감이 상당히 높은 상태라면 배극의 죽음이 한 박자 쉬어가는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극의 흐름을 한층 더 늘어뜨리는 데 일조를 하고 있을 뿐이며 가사의 전달력도 확연히 떨어진다.

연의 노래 역시 완전히 바뀌었다. 2006년 연의 노래에 비해 올해는 훨씬 부드러워졌다. 결론은? 연의 의지 역시 그 부드러움에 묻혀 사라지고 말았다. 호동에 대한 연의 사랑은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해명태자의 혼을 받아들이면서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아들을 지키려 했던 연의 확고한 이미지는 한없이 약해져버렸다. 아마 작년의 연(유나영)의 노래가 상당히 강했다는 의견들을 의식한 데서 나온 변화인 듯 한데, 이는 연을 누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변화를 줄 수 있었을 부분임에도 굳이 노래를 바꾸면서까지 연의 캐릭터를 변화시켜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의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번에 새로 바뀐 호동 얘기도 좀 짚고 넘어가야겠다. 호동은 나어린 아이가 맞다. 그러나 신수인 봉황을 맞아들이고, 성장하고, 왕 무휼과 대립한다. 비록 온유하고 심약한 부분도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만(‘약한 자는 왕이 될 수 없다.’/칼자루를 바꿔 쥐는 장면) 어린 호동 역시 자신만의 의지와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본 12일의 호동은 호동으로서의 의지가 없었다. 배우의 연기가 나쁜 것도 아니요, 노래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무대 위에서 뛰어다니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아이였을 뿐, 호동은 아니었다. ‘푸른 하늘 저 부도로’라며 손을 뻗는 그 장면은 호동의 의지가 담긴 외침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호동을 그저 아이로만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챙, 하고 긴장감을 이어 끝까지 올라가주어야 하는 ‘저 부도로’에서 1회, 2회 두 번 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OTL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바로 2막의 전쟁씬이다. 작년에 비해 한층 다듬어진 안무와 일사불란한 군무는 여전히 좋았다. 무대 위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도약하는 그 힘찬 움직임들에 눈물이 핑 돌려고 할 무렵, 문제의 그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고 동시에 나는 듣고 말았다. 뒷좌석에서 속삭이던―“[하얀 거탑]?” 그렇다. 나는 더 이상 그 장면을 온전한 [바람의 나라-무휼]로 기억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이건 프로그램에 그 사실을 명시해놓은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음악과 딱딱 맞아 떨어지는 안무가 전해주던 치열한 전쟁의 비장함과 엄숙함, 있는 힘껏 잡아당긴 활시위와도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정작 작품과는 전혀 관계없는 드라마로 인해―아니, 솔직하게 말하련다. 뮤지컬을 위해, 그 장면을 위해 만든 음악을 전혀 개연성이 없는 드라마의 메인테마곡으로 이용해버린 작곡가로 인해, 뮤지컬 [바람의 나라-무휼]의 팬들의 기억 속에서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남았어야 할 장면이 갈기갈기 찢겨져버린다. 대체 이 장면이 어떤 장면이던가. 무휼의 전쟁이다. 왕의 전쟁이다. 해명의 현무와 세류의 주작이 전장을 가로지르고, 괴유의 백호와 대소의 현무가 맞부딪고, 왕 무휼이 칼을 휘두르고, 왕을 믿고 따랐던 이들이 장렬하게 숨을 거두는 장면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 장면을 보며 울 수 없다. 더 이상 그 장면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질 수가 없다. 그렇게나 열정적으로, 온몸으로 전쟁의 비장함을 표현하는 이들을 보며 감동에 젖을 수가 없다. 바로 그 중요한 장면에 사용된 음악을 뮤지컬과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작품의 삽입곡으로 사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고 만 작곡가 때문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맙습니다. 온몸으로 [바람의 나라-무휼]을 표현해주신 분들.


그래도 올해 공연을 보며 위안을 얻은 게 있다면 호흡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멋진 안무다. 작년과 비교하여 더욱 섬세하면서도 박력을 겸비한 앙상블이 전해주는 그 감동이란! 비록 (윗 단락에서 언급했다시피) 음악 때문에 그 감동에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왕의 전쟁을 온몸으로 나타내준 분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부디 막공까지 몸조심하시기를).

가희와 이지의 표현력도 한층 깊어졌다. 특히 긴 휘장을 다루는 이지의 팔의 움직임은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한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가희는 여전히 움직일 때마다 ‘우리 (완소) 가희 어떡해~.’라는 심정으로 불안해하며 보았지만 대사를 칠 때의 완급 조절이나 노래는 더 좋아진 느낌이었다. 청룡의 표현 역시 마음에 들었던 부분 중 하나다. 올해의 청룡은 긴 소맷자락을 휘날리고 있었는데 이쪽이 더욱 청룡의 움직임에 걸맞아보였다. 나머지 신수의 경우 무휼을 따르는 세류, 해명태자, 괴유가 자신의 신수를 드러내는 장면에서 뒤의 스크린을 활용함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더하는 부분도 상당히 멋졌다. 또한 호동이 칼을 쥐고 장난치다가 처음엔 칼자루를 쥔 상태에서 바닥에 내리꽂으려다 방향을 고쳐 칼자루로 바닥을 내리치는 장면이 있는데 작다면 작은 부분이지만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호동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12일 공연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산호 괴유의 발견이다. 사실 작년의 김산호가 연기한 무휼은 고영빈 무휼에 비해 카리스마가 많이 약했고, 이번 공연에서 내심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가희와 함께 등장하는 순간 흠칫 놀랐다. 괴유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사를 칠 때의 호흡과 발음이 아직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괴유를 소화해내기 위해 배우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산호 괴유는 물론, 김산호라는 배우가 연기할 미지의 캐릭터들에 대해서도 기대를 품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공연은 진화해야 한다. 또 그래야할 의무가 있다. 매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르기만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변화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작품을 작품답게 만든 중요한 것들을 스스로 놓아버린다면? 함축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깊은 의미를 품고 있던 대사, 실험적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큰 매력을 담고 관객들을 끌어당겼던 과감한 연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왕 무휼의 흔들리지 않는 굳은 의지와 압도적인 힘. 비록 채 다듬어지지 않아 거친 면도 있었지만 작년의 [바람의 나라-무휼]은 관객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대신 관객들을 확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했었다. 그래서 2006년 공연의 마지막 장면―‘가야할 곳은, 부도다.’―에서 부도로 향하는 배우들과 왕 무휼의 발걸음에는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무게가 실려 있었고, 공연을 본 관객들도 마음속에서 그들을 따라 부도로 향할 수 있었다. 내 기억 속에는 작년 7월 15일의, 온몸이 떨릴 정도로 와닿았던 대무신왕 무휼이 여전히 그 빛을 발하고 있다. 그랬다, 그는 왕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왕을 따르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12일의 그와 그들은 어떠했던가. 흔들린 왕의 의지와 그로 인해 설득력을 잃어버린 부도로의 꿈. 묻고 싶다. [바람의 나라-무휼]만이 가질 수 있는, 또 실제로 가졌던 장점들을 스스로 포기하고 존재감을 죽이고 애써 관객들에게 과한 친절을 베풀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2007년의 그들은 과연 어디로 향하려 하고 있는 것인가. 왕을 만나기 위해, 다시 그를 따라 부도로 가기 위해 달려갔건만 정작 그러지 못한 나의 마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대무신왕 무휼.
그가 가야할 곳은, 부도다.
 



꼬리1>프로그램에 실린 바람의 나라 인물관계도에서 세류의 그림은 세류가 아니라 어린 호동이다(극장 로비에 세워진 대형관계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어이없는 실수라니. -_-
꼬리2>고백한다. 12일 밤 2회 공연 후 사인회할 때 고영빈 씨를 향해 “무휼 님, 왕으로 남아주세요!!”라고 외친 사람이 바로 나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외쳤는지, 나의 외침을 들은 이들은 과연 알까. 부산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계속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왕으로 남아주세요.
꼬리3>사실 김호영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아무리 힘이 빠졌다고는 하나 무대 위에 있는 이들은 당연히 무휼이고 해명태자이고 괴유이고 마로이고 세류이며 혜압임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비해 아직 김호영의 호동은 호동을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좀더 배역에 대한 해석이 깊어진다면 김호영의 호동은 조정석 호동과는 또 다른 매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07.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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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4 00:55 | 관련글(트랙백) 2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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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misha’s WareHouse 2007/05/14 15:18 x
제목: 그리고,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
1.12일 1회 공연을 보고 나서 로비에서 머리를 감싸 쥐는 내게 모 님이 말씀하셨다. “괜찮아, 첫공을 못 봐서 그래. 첫공보다는 훨씬 좋아졌어.” 한없이 늘어지는 팔을 억지로 올려 뭐라 말로 ..
Tracked from Red Shadow 2007/05/28 04:23 x
제목: 뮤지컬 바람의 나라(2007)
공연일시: 2007년 5월 5일~ 25일 공연장소: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원작: 김진 연출: 이지나 안무: 안애순 작곡: 이시우 - CAST - 무휼: 고영빈 연: 여정옥 이지: 도정주 해명: 홍경수 혜..

천유 R X
완전 동감입니다...
어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이리 조목조목 잘 정리해주셨는지...
제 블로그에 링크걸어도 될까요? 아마 이 글 쓰고 냉큼 걸겠지만... 언짢아하지 않기를...^^
2007/05/14 20:07

misha X
물론입니다. 단소리든 쓴소리든 많이들 나와줘야 더 나아질 수 있는 거니까요.
...아직까지 '더 나아져야 할' 정도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건 참으로 (#&_$(&@_한 상황입니다만;
2007/05/14 20:35

여우비 R X
misha님. 지난번에 이 글 올리시자마자 보고 나서 덧글 단다고 하는게 어찌어찌 놓쳤다가 이제서야 다네요; 읽으면서 얼마나 님의 애정과 실망이 아프게 느껴졌는지 제 가슴이 다 짠했더랍니다. 저도 공연을 오랜 기간 사랑해온 관객으로서, 그리고 만화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그 마음 정말 마음으로 전해져 오더라구요. 그리고 더 속상했던 것은 제가 어쩌면 영영 그 멋진 바람의 나라 예전 버전을 볼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것이었어요. misha님의 이 애정과 몰입과 안타까움과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리뷰를 보면서, 제가 어쩌다 놓쳐버린 그 작품이 이제는 마냥 전설 속의 무언가처럼 느껴집니다. 앞으로 태왕사신기도 그렇고,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저는 그래도 misha님이 예전의 그 작품을 보셨다는 사실이 마냥 부럽기만 하네요.
2007/06/05 08:24

misha X
원작에 대한 애정도 있지만, 공연 자체에 대한 애정과 기대도 컸기에 실망도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냥 아쉬움만으로 묻어두기엔 아직 놓지 못한, 놓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가 봅니다. 그저 작년 공연을 떠올리는 것으로 버티기엔, 비록 감상글의 힘을 빌어도 기억은 참으로 연약한 것이라. 그냥 올해의 바람은...참, 아픕니다. 공연이 주는 감동 때문에 아프고 슬픈 것이 아니라는 게 더 힘드네요. ㅠ_ㅜ
2007/06/0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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