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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 [일상/보고, 듣고, 느끼다]

1.
12일 1회 공연을 보고 나서 로비에서 머리를 감싸 쥐는 내게 모 님이 말씀하셨다. “괜찮아, 첫공을 못 봐서 그래. 첫공보다는 훨씬 좋아졌어.” 한없이 늘어지는 팔을 억지로 올려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심정으로 잔뜩 곤두선 후기를 쳐내려가고 있을 때 다른 분이 13일 저녁공연은 12일보다 더 나아졌다고, 호동이가 크고 있다고 문자로 알려주셨다. 사실 12일만 해도 1회보다는 2회의 배우들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조금 더 힘이 들어가 있었고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변화하고 있다는 것,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늘 아래 똑같은 공연은 존재할 수가 없다. 같은 작품에 같은 배우와 같은 스태프가 참여해서 같은 공연장에서 같은 관객들을 모아놓고 공연을 한다 해도 그 공연은 분명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공연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며 피해갈 수 없는, 그리고 극복해야만 하는 약점이기도 하다. 그 미묘한 변화를 매일 관람하며 파악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사실상 그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자신이 보게 될 날의 공연이 가장 좋은 모습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배우와 제작진은 매 회 공연이 가장 좋은 공연이 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12일의 1, 2회 공연을 보고 나서 착잡한 마음을 토로하자 다들 내게 얘기한다. 그래도 나아지고 있어. 내일은 좀 더 바뀔지도 몰라. 충분히 그만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잖아. 갈수록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야…. 아마 그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말들은 내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아니,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것부터가 문제다. 초연도 아닌 재연에서, 그것도 재연을 시작한지 1주일이나 지난 공연이 아직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바뀌고 있다는 것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어떻게 위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게 어떻게 장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만큼 처음부터 방향을 완전히 잘못 짚었다는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관객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자신이 지불한 티켓 금액만큼의 감동을 얻기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심리다. 나는 공연을 보러 간 것이지 48,000원 짜리 리허설을 보러 간 게 아니다.

애정이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애착이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그저 ‘마음에 안 드니 일단 씹고 보자.’라며 온갖 싫은 소리를 내뱉는 게 아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까’라며 애써 아쉬움을 묻어두고 그저 감싸고 보듬기만 하기에는 이 작품에 내가 쏟았던 기대와 애정이 너무나도 크고 깊다. 그 사실이 더욱 나를 우울하게 한다. 불면 날까 쥐면 꺼질까 무한한 포용력으로 다 품는 것, 그런 것만이 애정은 아니다. 그런 것만이 작품을 위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들 그토록 사랑하는 작품을 옹호하고 싶지 않을까. 누군들 그토록 아끼는 작품에 칭찬만 하고 싶지 않을까. 때로는 입술을 깨물고 쓴소리를 하는 것. 그런 것도 애정이다. 비록 이런 식으로 그 애정을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2.
같은 곡을 전혀 다른 두 개의 작품에 동시에 사용하는 데 대해서 이시우 씨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모른다. 서울예술단 측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혹시 어떤 조치는 취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저작권이나 로열티에 대해서 문제는 없는지 어떤지도 역시 아는 것은 없다. 그러나 단 하나 확실한 건 있다. 작곡가 이시우는 창작자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스스로 저버렸다.

3.
고인 물은 언젠가는 썩게 마련이다. 변화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왜 그렇게 변화했는지를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그 나름대로의 당위성을 갖춰야만 한다. 12일의 공연에서 나는 그 당위성을 찾지 못했다. 


4.
그럼에도, 사인을 하는 배우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려서.





2007/05/14 15:17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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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X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007/05/14 16:20

misha X
넵!
2007/05/14 20:35

천유 R X
정말정말 완전완전 동감이요... ㅠ.ㅠ
첫공보고 전 충격에 휩싸여, 조금 과장하면 막 울고싶었답니다...
2007/05/14 20:12

misha X
12일 공연만으로도 전 머리를 몇 대나 얻어맞은 듯 멍했는데 첫공을 봤으면 아마 로비에서 그냥 드러누웠을지도 모르겠어요.
2007/05/14 20:38

약토끼 R X
변화야 좋지. 자꾸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좀 있는데..
이건 익숙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 안에서 해결이 되야 할 문제들이야...-.-
제길,. 무휼이 주접떨고 있잖아!!!!!!!!
2007/05/14 21:06

misha X
맞아요. 익숙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익숙하지 않더라도 보는 이를 납득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전혀 안 되었으니 문제인 거죠.
2007/05/14 21:14

세류 R X
첫 공연 보고 뒷목 잡고 쓰러진 저는 아직까지 탈력모드입니다.
초연도 아니고 재공연이 이러면 정말 어쩌자는 것인지 말입니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매사 삽질중이라 저도 큰일입니다 ㅠ.ㅠ
2007/05/14 21:12

misha X
그러게나 말입니다. '좋아지고 있다'는 더 이상 칭찬이 될 수 없다고요오오오. OTL 제발, 그 정도로 만족하지들 말아줘요. ㅠ_ㅜ
2007/05/14 21:19

cherie_mee R X
막공끝나고.. 이리저리 검색하다 들르게되었습니다.
첫공의 충격..하니 생각이 나네요;;
5월 5일과 6일엔 극 마지막에 이지가 '그래, 그리하였다. 내가 그 아이를 죽게하였다'라고 말했답니다. ㅡㅡ;;;
2007/05/27 17:27

misha X
첫공을 보지 않아 다행이라고 아직까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2007/05/29 09:16

천유 R X
게다가 게다가 세류가 괴유에게 뭐라뭐라 하면서 칼을 건네주기도 했지요...--;;
2007/05/28 17:20

misha X
12일 공연에서는 그 장면이 없었는데 역시 쳐낸 모양이군요. 으음...-_-a;
2007/05/29 09:17

별비 R X
저는 2006년도 공연도 영상으로밖에 못 봤고(그나마도 친구의 도움으로), 2007년 공연도 22일과 25일밖에 보지 못한지라 감히 뭐라 말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2006년도 공연을 보신 대다수의 분들이 "아쉬웠다"라는 평을 하는 걸 보면 확실히 이번에는 무언가가 많이 부족했던 모양입니다...한두 명이 그런 게 아니니 확실하겠죠. 공연측도 이 점만은 명심해야 할 겁니다.
그래도 이번의 재공연도 저번과 똑같은 '실험'이라는 취지에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실험이 언제나 성공할 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이번에는 저번 공연보다도 '원작조차 모르고' 오신 관람객이 많았습니다.(초등학생, 중학생, 주부, 기타 등등) 그런 분들에게 이번에 덧씌워진 '사족'이 불필요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2007/05/28 23:54

misha X
별비 님, 반갑습니다.
재연을 실험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사실 저는 부정적입니다. 특히 올해처럼 공연기간이 긴 경우에는 말이죠. 이미 작년 공연으로 캐릭터/줄거리 분석이 다 끝난 상태일 텐데, 이번 재연에 새로 넣은 부분들이 그토록 불협화음같이 느껴진다면 분명 뭔가가 잘못된 거겠지요. 바뀐 부분들이 관객들을 납득시키고 당위성이 있어야 하는데 제가 본 12일의 공연은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추가된 장면들이 설명이 아닌 그저 '볼거리'에만 치우쳤다는 느낌이었어요. 원작을 모르는 분들에게도 과연 얼마나 이해에 도움이 되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휼의 캐릭터가 흔들림없이 중심을 잡고 있었다면 또 달라질 수 있었겠습니다만, 얘기를 들으니 12일 공연과 또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어쨌거나 제게 있어 올해의 바람은 이래저래 아쉬우면서도 관심을 끊을 수 없는 손톱밑의 가시같은 공연이 된 것 같습니다.
2007/05/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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