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은 박재범이었다. 환절기 봄바람에 묻혀 지나가는 연례행사라며 코를 풀어대기 시작한지 만 이틀째에 결국 스테이션에서 ‘어이구야’ 외마디를 남기고는 풀썩 주저앉아버리는 바람에 이민우의 손에 질질 이끌려 당직실로 사라진 것이다. 엔스에이드를 챙기는 이민우 앞에서 ‘하여튼 골고루 한다니까, 정말.’이라며 볼멘소리를 내뱉은 것도 무색하게 그 다음다음날은 조아라, 그로부터 사흘 뒤에는 이민우 차례였다. 뭔 얘기냐 하면―.
“다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연신 코를 풀고 기침을 하느라 여념이 없던 세 사람이 제각각 휴지뭉치를 들고 엉거주춤 일어나 그를 맞았다. 물론 그들을 등지고 EMR을 확인하던 그녀도 재빨리 일어나 그의 눈치를 살폈다.
“자기 몸 제일 확실하게 챙겨야 할 사람들이 이게 뭐야 도대체?! 병동 전체가 니들 기침소리 때문에 온통 들썩들썩하잖아!! 다들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죄송합니다. 내일까지 확실히 떼내겠…(콜록콜록콜록)….”
“죄송합니…(쿨럭쿨럭쿨럭쿨럭)….”
“니들이 그러고도 의사야? 그렇게 기침들 해가지고 어디 드레싱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자기 관리 하나 제대로 못할 거면 지금이라도 당장 집어치워!!”
만성적인 수면부족과 고된 격무에 시달리는 전공의 생활. 특별한 운동을 하는 것도, 그렇다고 삼시 세끼 꼬박꼬박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는 것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저 멀리 말머리성운 어딘가의 이야기인지라 감기에 가장 취약한 집단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외과의들인 이상, 의사도 사람인데 감기에 걸릴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은 결국 자기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는 변명일 뿐이다. 그렇기에 세 사람은 허리춤에 한손을 얹고 무섭도록 쏘아보는 그 앞에서 연신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은 기침을 하느라 제대로 굽히지도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발작적으로 터져 나오는 기침 때문에 어깨를 들썩이는 세 사람 사이로 그녀가 눈을 깜박거리며 열심히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 정도면 됐어요, 선생님. 감기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의 양쪽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녀의 텔레파시를 수신했다는 신호다.
“이왕 걸린 건 어쩔 수 없고, 대신 다른 사람한테 더 이상 안 옮기도록 조심해. 알았어?”
“조심하겠…콜록콜록콜록….”
대답 한 마디도 제대로 끝맺지도 못하고 종일 기침 때문에 결리는 옆구리께를 부여잡는 와중에도 ‘다른 사람’에 유난히 힘을 주는 그의 눈치를 슬쩍 살피는 세 사람이었다.
“히야, 봉…(콜록) 덕분에 살았네, 그자?(콜록콜록콜록)”
“그러게. 호되…(콜록콜록)게 혼내키실 줄 알았어(콜록콜록).”
“봉 선생, 미리 피해있어. 이러다 진짜(콜록) 봉 선생마저 감기 걸리면(콜록콜록) 우린 진짜 안 선생님 눈빛에(콜록) 홀랑 다 타버릴 거다(콜록콜록콜록).”
“그래그래, 쪼 선생 말 맞다(콜록콜록). 저 어디(콜록콜록) 멀리 좀 가 있어라. 봉 선생 니까지 감기 걸리면 아이구야(콜록) 완전 프라이팬에(콜록) 깨소금(콜록) 볶듯이(콜록) 들들 볶일 거(콜록) 아이가(콜록콜록).”
그의 흰 가운자락이 복도 모퉁이를 돌자마자 참았던 기침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쏟아내는 푸념 아닌 푸념에 그녀는 멋쩍은 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잖아도 그녀 몸 상태에 대해서는 당사자보다 몇 십배로 신경을 곤두세우는 그였다. 동기들 말대로 그네들에게 감기라도 옮았다 하면 아마 더욱 강도높은 다크포스를 뿌려대며 세 사람을 몰아칠 게 뻔했다. 자기 몸도 몸이지만 세 사람을 위해서라도 더욱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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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누구한테 옮은 거야? 박재범? 이민우? 조아라?”
“아우, 선생님, 이제 그만하세요. 제가 제 몸 못 챙겨서 감기 걸린 건데 누굴 탓해요….”
인류가 세상의 모든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알고 있다 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감기다. 그의 호통이 스테이션을 뒤흔든 지 하루가 지나, 사흘 연속 야간당직을 섰던 그녀는 결국 39도 넘게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평소보다 호흡이 거칠다고 생각한 그에게 그만 딱 걸린 것이었다. 히포크라테스가 보우하사 다행히 그녀의 이후 스케줄이 반나절 조금 넘게 비어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굳이 싫다는 그녀를 거의 들쳐 메다시피 해서 그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물론, ‘다른 사람’한테 옮긴 죄로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그녀의 동기들에게 째릿하며 눈을 한번 흘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맞지도 않는 자신의 파자마를 억지로 그녀에게 입히고, 사놓고 한번 써보지도 않은 새 전기요를 꺼내어 깔아놓고 온도를 한껏 올린 후 한사코 괜찮다는 그녀를 완력을 동원해 이불 속에 밀어넣었다.
“저 괜찮아요. 아까 엔스에이드도 맞았고요….”
“됐어. 감기엔 그저 푹 쉬고 자고 영양가 있는 거 실컷 먹는 게 제일이야.”
“치이….”
그렇잖아도 열 때문에 부옇게 흐려져 오는 시야였지만 한껏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그의 얼굴만은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갑갑한 마음에 한쪽 팔을 이불 밖으로 살짝 내밀고 있으려니 금세 알아채고 다부진 손끝으로 턱 밑까지 꼼꼼하게 이불을 당겨 여며주는 그의 눈길은 그 언젠가 병실에 누워있던 자신을 바라보던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열 때문에 바싹 마르는 입술을 축이기 위해 물잔을 입에 대주는 손길마저 애틋해서 자신이 감기가 아닌 급성폐렴에라도 걸린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누가 보면 진짜 중병 걸린 줄 알겠어요. 그냥 감기일 뿐인데.”
베드테이블에 잔을 내려놓고 이내 이마에 맺히는 식은땀을 수건으로 꾹꾹 눌러 닦아주는 그를 보며 그녀가 투정부리듯 말했다. 이렇게 열이 나는데 빨리 안 자고 뭐하냐며 버럭댈 반응을 예상하고 눈을 한번 찔끔 감았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줄 뿐이었다. 한 마디 더 할까 하다가 손끝 발끝까지 저릿하게 아려오는 근육통에 그냥 눈을 감으려던 찰나,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아프지 마. 사소한 감기라고 해도 너 이렇게 누워있는 거, 다신 보고 싶지 않다.”
비록 오래 전이라면 오래 전이긴 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그녀를 처음 발견했을 때 순간 그 어떤 생각도 판단도 내릴 수 없이 그저 두 발로 바닥을 딛고 서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때를. 하얀 침대 시트보다 더 새하얀 얼굴을 하고서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힘겹게 얕은 숨을 내쉬던 그녀를. 자신을 믿는다며 수술을 부탁하는 그녀의 청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혹여나 자신의 실수로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 없이 남은 시간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몇 십번이고 몇 백번이고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짓씹어야 했던, 온몸의 피가 마를 것만 같았던 시간, 시간들. 그럼에도 달아날 수 없는 지옥과도 같은 두려움 앞에서 한없이 떨어야만 했던 자신을.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그때가 생각나는 바람에 한층 골이 깊어진 그의 양미간을 보며 그녀는 순간의 투정으로 그가 힘겨운 기억을 되새기게 해버린 자신을 자책했다.
“…죄송해요….”
“…눈 좀 붙여. 계속 옆에 있을 테니까.”
따끈한 전기요와 푹신한 이불 덕분이었는지, 이마를 따스하게 짚어주던 그의 손 덕분이었는지 그녀는 색색 고른 숨소리를 내며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열 때문에 간간이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채긴 했지만 조금씩 열이 내리고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말대로 그냥 감기일 뿐이고, 그의 말대로 푹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설령 환절기에 스쳐 지나가는 감기라 해도― ‘아픈’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 전공의 생활이 힘들다면 그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줄 수 있었고 그 외의 다른 것들도 그녀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뒷받침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몸만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대신 아파줄 수가 없었으니까. 그가 그녀에게 해줄 수 없는 단 한 가지였으니까. 그 사실이 못내 그를 괴롭게 했다. 그녀를 사랑하며 단 하나 아프고 힘든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
서너 시간 후 그녀는 눈을 떴다. 곁에 있겠다던 그가 방안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침대 밖으로 한 발짝 내딛었다. 그가 여며준 이불을 끝까지 얌전히 덮고 있느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열도 거의 내리고 온몸이 욱신거리던 근육통도 거의 사라져있었다. 방문을 열자 소파에서 논문을 보고 있던 그가 인기척을 느끼고 읽던 책을 내려놓았다.
“좀 어때?”
“이제 괜찮은 거 같아요. 땀을 실컷 흘렸더니 몸도 이젠 안 쑤셔요.”
“갑자기 몸 식으면 다시 한기 들어.”
땀 많이 흘려서 씻어야 돼요, 라며 도리질치는 그녀를 억지로 품에 안아다 침대로 데려다 놓고 그녀가 입을만한 새 면티셔츠와 땀을 닦을 수건을 꺼내준 후 그는 그녀가 자는 사이에 마트에서 사들고 온 것들을 가져와서는 침대 위에 우르르 쌓아놓았다. 복숭아통조림, 귤통조림, 바나나, 사과, 방울토마토, 떠먹는 요구르트, 오렌지주스, 포도주스, 전복죽….
“선생님, 무슨 편의점 차릴 일 있어요? 뭘 이렇게 많이 사오셨어요?”
“아플 때 사람마다 먹고 싶어지는 게 다 다르니까…. 일단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걸로만 사봤어.”
“에헷, 전 복숭아가 좋아요.”
그녀의 말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 그는 벌써 복숭아통조림 한 캔을 따고 있었다. 순간 방안에 화악 퍼지는 복숭아향이 더없이 달콤했다.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잘라 그녀가 좋아하는 푸우 밥그릇에 담아서 내밀자 그녀는 그릇을 받아드는 대신 어미새에게서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새 마냥 입을 아 하고 벌렸다.
“저 열은 내리긴 했지만 오늘 하루는 그냥 감기환자 할래요. 그러니까 기왕 해주시는 거 떠먹여주세요.”
“말하는 거 보니까 다 나은 것 같은데?”
졌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그가 숟가락을 놀렸고 그녀는 한 입씩 잘도 받아먹으며 만족스런 웃음을 띠웠다.
“이런 것도 좋네요. 감기 정도는 한 번씩 걸려도 좋을 거 같아요.”
“차라리 먹여달라고 해. 감기 안 걸려도 얼마든지 해줄 수 있으니까. 아프지 마. 나도 안 아플 거니까.”
“보통 거기선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그런 대사가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선생님이 무슨 철인도 아니고 안 아파야지, 한다고 안 아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 그래도 앞으로는 안 아플 거야. 아플 수가 없어. 너 놔두고서는.”
그게 내가 널 사랑하고 지키는 방법이야. 네가 아픈 몫 떼어다가 대신 아픈 게 아니라, 너도 나도 아프지 않는 거. 너나 내가 아프기 전에 서로가 미리미리 챙겨봐 주는 거. 그렇게 둘이 오래토록 건강하게 같이 지내는 거. 그저 기쁘고 즐거운 기억으로 채우기에도 한없이 모자란데 아파서 힘들어하는 틈을 넣기 위해 그 귀한 시간들을 일부러 쪼갤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도 혹시나 네가 아프면 끝까지 곁에 함께 있을 사람은 바로 나니까. 그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그래, 내가 너의 가슴을 열고 네가 내 심장을 네 것으로 만들어버린 바로 그때처럼. 그래서 더더욱 아플 수가 없어, 너 때문에라도. 시원하고도 달콤한 복숭아 한 조각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 한 조각씩을 담았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미소 지으며 그의 마음을 한 입씩 받아 그녀의 것으로 만들었다. ―맛있어? 입안에서 녹아나는 부드러운 과육을 천천히 씹으며 빙그레 웃는 그녀를 바라보던 그의 눈이 물었고, 그녀는 자신의 입술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그들이 함께 하는 또 하루가 저물어갔다.
FIN.
(봉갤 업로드 시간 : 2007-05-09 23:49:34,
Est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