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일상/보고, 듣고, 느끼다]집단이란 건 때로는 참으로 편리하다. 마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그렇다고 우산을 쓰기는 뭣하고, 안 쓰자니 옷이 어느 새인가 젖을 것만 같아 망설여질 때 누군가가 우산을 쓴 모습을 보면 그때서야 ‘그래, 나도’라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우산을 펼쳐들게 되는 느낌이랄까(그래 내 얘기다;). 혼자서는 어떤 가치 판단을 내리기 힘들 때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고 거기에 귀가 솔깃해지며 마음이 움직이고, 나 자신의 판단을 그 목소리에 함께 묻어가는 것도 ‘집단’이라는 이름 아래 충분히 가능하다. 그 편리함과 안락함은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마약과도 같다. 한 집단이 자신과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극히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고 있을 때에는 정·반·합의 긍정적인 결론을 이끌어내어 더 나은 집단으로 변모하고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집단이 수적 우세를 무기로 하여 권력화될 때, 그리고 그 권력이 냉철하고 이성적인 결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맹신에서 나온 것일 때의 양상은 가히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감상이나 느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라는 게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 ‘좋으면 좋은 거지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해?’ 맞다. 그건 한 작품을 좋아하고 옹호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또 다른 의견을 무차별적으로 까대는 것마저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것도 그런 행위를 정당화시켜주지는 못한다. 논리적인 글에는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집단이 주는 편리함과 안락함에 고개를 묻고 감정적인 꼬투리만을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논리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할 뿐이다. ‘나는 좋은데 니가 뭐라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에 트집을 잡아?’ 글쎄, 난 지금의 모습이 딱 이 이상도 이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물론 ‘집단’을 자극할 만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논리적으로 충분히 수긍이 가는 내용 역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자신들의 의견에 반한다는 이유로 그렇게들 달려드는 모습들이란, 그건 옳지 않다. 그건 작품에 대한 애정이 아니다. 작품을 만든 이에 대한 존경도 아니다. 그저 작품을 바라보는 자신들의 ‘눈’만이 옳다고 무조건 우기며 자신들이 ‘좋다’라고 내린 판단이 흔들리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독선과 아집이 낳은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럴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정말 아낀다면 그럴수록 한 걸음 물러서서 조금이라도 더 다른 시각에서 더 많은 것을 보아내려 노력해야 한다. 정말 앞으로의 발전을 바란다면 남들이 다 찬사를 보낼 때 용기를 가지고 쓴소리 한 마디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나 좋았다면서, 왜 그런 모습들은 보여주지 않을까. 그들의 애정과 용기는 집단 안에서만 가능한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것이었던가? 2007/08/0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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