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감독: 임순례(2008)
아니, 솔직히 말하자. 과연 흡족한가? 적어도 나는 이 영화가 그저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감동실화’에 집중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분명 이 영화는 감동적인 실화를 소재삼아 만든 작품이지만 (나 또한 당시 결승전을 보며 얼마나 눈물콧물을 흘렸던가;) 악전고투 끝에 거머쥔 은메달 그 이면에 숨어있는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남성들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고, 여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 인내하고 희생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나 둘씩 관객들 앞에 풀어놓는다. 사업실패 이후 자포자기하고 모든 책임과 생계를 떠넘겨버리는 남편 때문에 피를 토할 것만 나날을 보내고 있는 미숙. 이혼녀라는 이유 때문에 감독(대행이기는 했지만) 자리에서 떠밀려나야만 했던 혜경. 생리주기 조절 때문에 호르몬제 복용을 하다가 결국 불임이 되어버린 정란. 그들이 ‘핸드볼 선수’였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자 핸드볼 선수’였기 때문에 그러한 고통을 싸안고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다. ![]() 노장 3인방. 지금 그들의 고민 역시 어쩌면 후배들에게도 그대로 대물림될 지도 모를 일이다. 슬프게도. 텅빈 관객석. 썰렁하기 그지없는 경기장에서 묵묵히 경기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외로운 ‘핸드볼’ 선수이기에 그들은 팀이 해체되고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수난을 겪는다. 여자라면 누구나 당연히 하는 생리마저도 그들에게는 또 다시 넘어야만 하는 벽이 되어 생리통이 심해도 엔트리에서 제외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미숙의 “직원이면 정사원이겠죠?”라는 물음 뒤에 뒤따라오는 것은 바윗덩이같은 침묵이요, 호르몬제까지 먹어가며 어떻게든 운동하겠다고 이를 악물고 버텨낸 끝에 돌아오는 것은 “내 꼴 나지 마라.”라는 정란의 자조섞인 한탄뿐이다. 남자감독이었어도 이혼 경력이 문제가 되었겠냐는 혜경의 항변은 이제 너무나 흔한 상황, 흔한 대사라 더 이상 언급한다는 것도 멋쩍을 정도다. 문제는 미숙, 정란, 혜경…그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통이 비단 여자핸드볼 선수인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래서일까. 비록 생각했던 것만큼 펑펑 울지도 않았고 기대했던 만큼의 (소위 스펙따끄르한) 가슴벅찬 감동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의 행복한 순간]은 작지만 참으로 소중한 의미를 품고 있다. 소외당한 그들이 척박한 현실과 맞서 싸워가며 그토록 힘겹게 일구어낸 값진 열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딱히 달라질 바는 없을 것만 같은 현실. 그렇지만 영화는 꿋꿋하게 은메달이라는 표면 아래 숨어있는, 소외받는 이들의 상처들을 돌아보고 짚어보고 보듬는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비록 뻔한 갈등구조와 결말이라 해도 그 안에 담겨있는 사연들은 저마다의 진정성을 품고 있기에 더욱 가슴 한 구석을 아리게 만든다. 은메달이 주는 눈물겨운 감동만큼이나 작고 작은 아픔들을 외면하지 않고 되돌아보는 이 영화가 나는 무척이나 고맙고, 또 사랑스럽다. 우리의 왕언니 정란 언니님. 일터에서 이런 언니 한명씩은 있어야 일할 맛도 나는 법. 꼬리1>핸드볼 경기 장면을 소화해내기 위해 촬영 전부터 계속 체력훈련과 연습을 했다고 하던데, 그래서인가 배우들간의 호흡이 너나할 것 없이 참 좋다. 대사를 주고받는 박자도 그렇고,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언니 동생들간의 유대관계 또한 그렇고. 그런 분위기는 단지 대본연습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닐테지. 배우들간의 촬영 분위기 또한 참으로 훈훈했을 것 같다. 꼬리2>마지막 결승전 장면만큼, 아니 그 이상 울컥했던 장면이 바로 정란의 ‘내 꼴 나지 마라.’ 장면. 그 순간 숙연해지는 선수들과 착 가라앉는 공기라니. 이건 정말 여성관객들이라면 더더욱 감정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섣부른 짐작이기는 하지만 만약 감독이 남자였다면 과연 이런 에피소드에 이만큼의 비중을 주었을까 하는 생각도 아주 잠시 해보았다. 꼬리3>그래도 맞선남의 얼굴을 보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갈무리할 수가 없어서…; 꼬리4>문소리 연기야 말할 것 없고, 김정은의 연기도 상당히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란 역을 맡은 김지영의 연기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배우로서도, 그리고 극중 인물로서도 자기 자리를 제일 확실히 꿰어차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2008/01/1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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