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루부미: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땅-증오만이 남아있는 그곳에서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감독/각본: 마니쉬 자Manish JHA
주연: Tulip Joshi (칼키) Sudhir Pandey Piyush Mishra Pankaj Jha 화창한 토요일 아침, 제8회 PIFF의 첫 영화를 보기 위한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극장 좌석에 깊숙이 몸을 파묻는 그 익숙한 느낌도, 극장 안에 옅게 떠도는 방향제 냄새도 만족스러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마음은 무척이나 평온했다. 이제 막 보게 될 영화가 나를 얼마나 슬프고 우울하게 만들지는 전혀 짐작하지도 못한 채. 누가 내게 '이 영화는 좋은 영화인가?', '이 영화에 별점을 매긴다면 망설이지 않고 별 다섯을 줄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과연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니, 영화의 완성도 여부를 떠나서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너무나 명확해서 감히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한 가족을 이루고 그들이 다시 모여서 집단을 이룰 때 남자와 여자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고 또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 당연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무지로 인해 갓 태어난 여아를 죽여버리는 처절한 현실. 곧 태어날 새 생명에 대한 설렘과 희망에 두 손을 부비며 기도하는 것도 잠시, 따스하게 아이를 보듬고 쓰다듬어 주어야 할 그 손으로 아이를 흰 우유 속에 담그어 버리는 아이의 아버지. 아이를 위한 눈물도 연민도 없다. 다만 있는 것은 '다음에는 아들을 주옵소서'라는 나지막한 중얼거림뿐이다. 그리하여 결국 여성이 사라져 버린 땅, 마트루부미의 남자들은 돈을 내고 모여서 포르노 비디오를 보면서 옛날 품에 안았던 그 누군가를 떠올리며 눈물 한 줄기를 흘린다. 치미는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외양간을 찾는 남자, 남창이 콧노래를 부르며 옷을 벗기 시작하자 미소를 띠며 침상 위에 몸을 누이는 승려. 여성이 사라져버린 땅 마트루부미를 지배하는 것은 날 것 그대로인 원색적인 증오와 폭력, 그리고 공포이다. 아들 5명 몫의 지참금을 대가로, 한 여성이 이 땅에 발을 딛는다. 칼키, 태어났을 때 '당연히' 죽었어야 할 여아이면서도 갓 태어난 핏덩이를 미처 죽이지 못한 그 아버지 덕에 세상과 격리되어 고이고이 자란 여성. 여자를 찾지 못해 막대한 지참금을 치른 시아버지는 '옛날에는 여자들이 지참금을 냈는데 말이야'라고 투덜거리며 아들들의 아버지로서 며느리와 자신이 초야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며 낯선 곳에서 하루종일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칼키를 기다리는 것은 따스한 말 한 마디 없이 정액을 배설하기 위해 달려드는 남자들뿐. 누구도 그녀의 공포를 알아채 주지 않고 그저 '여성의 몸뚱어리'로만 대하는 그곳에서 조금씩 빛을 잃어 가는 칼키를 인격체로 대우해주는 이는, 육체를 취하려 하기 이전에 따스하게 안아주는 막내아들과 집안 일을 도와주는 어린 소년뿐이다. 집안일과 성욕을 해결하고자 하는 도구가 아닌 한 영혼의 소유자로 대해주는 막내아들에게 사랑을 느낀 칼키는 그에게 마음을 열고, 다른 이들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칼키의 환한 미소와 다감한 태도는 결국 남은 형제들의 분노를 불러온다. 어쩌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친동생마저 죽이고 칼키와 함께 달아나는 소년의 등에 총을 겨누는 형제들과, 조카를 잃은 분노를 칼키를 겁탈함으로써 해소하는 소년의 삼촌. 마트루부미의 모든 남자들에게 칼키의 몸은 짓밟히고, 남자들은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아무 거리낌없이 내던지며 살육과 폭력의 본성에 자신을 내맡긴다. 서로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가 가득한 가운데 칼키는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딸을 낳고, 그 아이를 쓰다듬으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무슨 이유일까. 어쩌면 자신처럼 짓밟힐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 딸아이건만, 그래서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새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기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에 눈물을 펑펑 흘릴 수밖에 없었으면서도 칼키의 그 미소 앞에서 내가 흘린 눈물은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락(那落)과도 같은 고통에 시달리더라도 칼키와 그녀의 딸, 또 그녀의 딸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칼키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그래, 나도 사실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보상해줄 수 없는 고통은, 어루만져 줄 수도 없을 정도로 다 해어져버린 상처들은―. 왜 그·녀·들·만·이 그 모든 아픔을 지고 미래의 희망을 위한 무거운 짐을 져야만 하는가. 도대체 왜. 2004. 5. 9. 2005/11/26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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