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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단상 [일상/보고, 듣고, 느끼다]

1.
자주 들르는 지인의 블로그에서 글을 읽다가 그 밑에 길게 이어지는 댓글 대화까지 읽었다(무엇을 숨기랴. 바로 이 글이다). 대략의 줄거리만 알 뿐 원작 희곡을 읽은 적이 없고 공연 또한 보질 못했으니 공연에 대한 감상을 100% 이해할 수는 없었음에도 무척이나 마음에 와닿았던 이유는 아마 아래에 이어진 진솔한 대화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돌기만 하고 명확해지지 않아서 그저 답답했던 것들이 조곤조곤 실타래처럼 풀려나올 때. 즐겁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한 그런 순간들.


2.
가사와 육아 문제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를 논할 때 가장 답답한 것은 개인 대 개인의 의사소통이나 이해로 완벽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가사노동은 위 대화 중 한분이 말씀하셨듯이 어느 정도 분담이 가능하다. 또한 당연히 같이 해야 한다는 인식 또한 높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육아 문제에 부닥치게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자녀를 가지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임신 전부터 ‘임신을 준비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제하고 지켜야 하는 것들, 임신 중이기 때문에 지켜야만 하는 것들부터 시작해서 출산과 육아는 아무래도 여자 쪽에 그 무게가 더욱 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니 어째서 그러한가, 에 대해서 명확하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음, 아마도 이런 부분이 있지 않을까. 퇴근 후 집에 들어섰을 때 싱크대에 설거지 더미가 한가득 쌓여있고 세탁물 바구니는 가득 차다못해 흘러넘치고 거실이며 방이며 발 디딜 틈도 없이 난장판이 되어 있고 가스레인지 위의 후드는 몇 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기름때가 덕지덕지 앉아있고…. 그런 상황에서 남편이나 아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을 이루고 또 현 상황에 대해서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즉 공유가 가능한 경험이지만 임신과 출산은 공유가 불가능한 부분이니까. 여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 혹은 여자이기에 짊어져야만 하는 한없이 무거운 멍에. 육아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고. 어차피 공유가 불가능하고 어느 한쪽이, 즉 여자가 더 많은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에 대한 보완은 국가와 사회가 맡아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이 부분이 전혀 뒷받침되어주질 않으니 말이다. 누군들 나이든 친정엄마/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싶겠나.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놀이방/탁아소 관련한 사건·사고들 때문에, 혹은 사건·사고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시설조차 없어 안 그래도 당신 한 몸 건사하기도 힘겨운 어르신들에게 울며 겨자먹기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3.
댓글 대화 중에서 언급된 ‘공정성’에도 잠시 눈길이 머물렀다. 조금 격하게 표현해서, 대한민국에서 남편과 아내간에 공정성을 유지하려면 아예 외국에서 둘 다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대신 아이는 없는 상태가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어느 한쪽만 직장을 가지고 있다면 경제력을 쥐고 있는 쪽에 무게가 실릴 것이고 아이가 있다면 아무래도 여자 쪽이 좀더 많은 노동과 희생(육아의 기쁨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몸이 고되다는 면에서는 노동과 희생이지 않나)을 치러야 할 것이고 외국에 있지 않다면 시댁과 친정간의 균형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사실 결혼 전에도 이런 부분들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심지어는 예식장 예약하고 신혼여행 예약하고 웨딩촬영하러 돌아다니던 그 와중에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건만 역시나 현실은 고민, 그리고 상상 그 이상이다.


4.
사무실이 있는 건물 바로 옆에는 초등학교가 있는데 아침마다 등교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엄마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매일 교통안전봉사를 하는 또 누군가의 엄마들은 금방이라도 총알같이 차도로 튀어나갈 듯한 아이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인도 쪽으로 들어오라고 외쳐댄다. 단지 내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돌아가며 학교에 가고, 은연중에 학교 행사에 참여하라는 압력을 받고…. 이 모든 것들 역시 모성애의 발현으로 다 품고 가야 하는 것일까.


5.
이 모든 고민/문제/현실의 근원은 결국 내가 여자라는 데 있다. 만약 남자라면 이와 유사한 비중을 지닌 고민들/혹은 여자들이 느끼는 것과 비슷한 고민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이기 때문에 서로가 짊어져야 하는 것들이 참 많기도 많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좀더 운신의 폭이 넓다고 보여지는 이유는, 그 역시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글쎄….


6.
기사 한줄 한줄 따지고 들자면 역시 할 말은 많지만. 일단 링크.

딸아, 친정엄마는 봉이 아니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78067


범죄로부터 아이 지키기, "나랏일, 왜 엄마 시키나"
http://www.mdtoday.co.kr/mdtoday.html?cate=2&no=51450


7.
이런 문제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마다 꼭 드는 생각.
그런데,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이럴까? 이를테면 (늘 운운하는) 소위 OECD 국가들은?


2008/04/29 18:14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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