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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없는 세상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

지은이: 김은희
권수: 전 1권(2008)
출판사: 책공장더불어


잡지 <나인>에 이 작품이 연재되던 때, 제목을 보며 순간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나비, 즉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왜 제목이 『나비가 없는 세상』일까. 잠시 품었던 의문은 작가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섬세한 묘사에 언제 그랬냐는 듯 눈 녹듯이 사라지고 신디, 추새, 페르캉의 모습에 하염없이 빠져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알레르기 때문에 고양이는커녕 털 달린 옷도 제대로 못 입는 나도 책 속에 그려진 신디, 추새, 페르캉을 매만져보며 마치 잠시나마 살아있는 그 녀석들을 바라보는 듯한 행복한 착각 속에 빠졌던 그때. 그때로부터 7, 8년여가 지난 지금 복간된 『나비가 없는 세상』은 그동안 흐른 시간만큼의 소소한 변화들이 더해져 더욱 큰 감동을 가져다준다.

<나인>에 연재 당시(2000년) 작가의 곁에 함께 있었던 신디와 추새는 그 사이 종적을 감추었고, 날지 못하는 비둘기 앨리스도 아마 천수를 다한 것 같다. 신디와 추새, 앨리스가 있던 자리에 작가의 남편과 아들 이카가 새로이 부부와 가족의 인연을 맺으며 작품 연재 시부터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양이 페르캉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이들이 생겼음에도 작가는 청소기를 돌리다 사라진 신디와 추새를 떠올리며 왈칵 울음을 터뜨린다(책장을 넘기던 나도 순간 울컥하고 목이 메고 말았다). 언제나 함께 있으리라 생각했던 존재들과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는 때가 오는 그 순간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10여 년이라 한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세월동안 함께 울고 웃고 뺨을 부비며 살아온 고양이들과 헤어져야만 할 때…. 그래서 제목이 『나비가 없는 세상』인 걸까. 언젠가는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그 이별의 순간 때문에? 혹은 이런 생각도 든다. 만약 나비―즉 고양이―가 만약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더없이 큰 기쁨과 감동을 느낄 또 하나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마는 게 아닐까. 나비가 없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들은 지금보다 더 메마르고 삭막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데뷔 이후 굵고 힘 있는 펜선으로 그려내는 강렬한 그림체(『나의 강』, 『M&M』, 『Guyz』 및 「귀환선」, 「Some like it hot」과 같은 다수의 단편들)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작가의 화풍은 <윙크>에 『소년별곡』을 연재하면서부터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든다. 바로 스크린톤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철저히 수작업만으로 모든 장면을 표현해낸 것이다. 스크린톤 없이 오직 펜선의 필압 조절만으로 (이 역시 탄탄한 데생력과 필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더욱 세밀한 명암과 양감과 질감까지 자유자재로 묘사하며 한층 더 깊어진 그림체로 한 발짝 나아간 작가의 화풍은 『나비가 없는 세상』에서 다른 작품에는 없는 또 하나의 특징을 더하게 된다. 바로 작품 속 고양이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가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에 대해 애착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비가 없는 세상』의 고양이들 역시 작품 속 주인공으로 그만한 관심을 주는 것 역시 ‘작가’로서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또 다르게, 『나비가 없는 세상』의 고양이들은 정말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해 데생을 하고 펜선을 입혔다는 느낌을 준다. 그저 내 곁에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 신비롭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독립된 하나의 귀한 생명체를 조심조심 종이 위에 옮겨놓고는 사랑하는 마음에 잉크를 풀어 따스한 시선의 펜촉에 그 잉크를 묻혀서 보드라운 털 한 올 한 올을 정성스레 그려낸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 점에서 고양이를 소재로 한 다른 만화들(『왓츠 마이클』, 『Cat』, 『묘한 고양이 쿠로』 등)과는 확연히 다르다. 『나비가 없는 세상』의 신디, 추새, 페르캉은 단순히 작품의 소재/주인공이 아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작가의 동반자이며 서로의 안식처이자 평생 잊지 못할 ―혹은 잊을 수 없는― 귀한 인연인 동시에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런 대상들을 어찌 말 몇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말과 글로 나타낼 수 없는 그 수많은 감정들이 신디의 또랑또랑한 눈빛, 추새의 보일 듯 말 듯한 미소, 페르캉의 반지르르한 털결에 듬뿍듬뿍 묻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 역시 그 사랑을 나누어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고양이라는 신비한 존재, 반려동물의 의미, 나아가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따스한 마음과 한없는 사랑으로 가득한 『나비가 없는 세상』. 부디 신디와 추새, 페르캉을 비롯한 고양이들, 작은 생명체들이 힘없고 낯설고 익숙치 않다는 이유로 고통받지 않고 제 생명을 다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 작은 기원을 담아본다.


2008. 5. 30.





2008/05/30 16:47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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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 R X
저는 미샤님의 이 감상을 읽으면서 웬지 목이 매네요. 김은희 작가님의 '엠엔엠'을 사모으려고 동네 서점을 뒤져보고, '소년별곡' 다음편을 기다리며 윙크를 읽고, 나인의 창간호를 읽었던 그 시절이 기억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언제나 함께 있을 것 같던 존재들과 갑자기 이별하게 된다면- 이라는 미샤님 말씀에 가슴 한 켠이 찡해져요.

덧. '엠엔엠'을 영어랑 기호를 넣어서 썼더니 어째 짤리고 말았네요!;
2008/06/01 22:10

misha X
집에서 키우는 조그만 화분 하나도 말라죽으면 가슴이 아픈데 하물며 뽈뽈거리며 움직이던 반려동물이 어느날 사라진다면 그 마음이 오죽할까요. 시어른들이 예뻐하시는 개를 보면서 귀엽다 귀엽다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해요. 저 녀석도 언젠가 제 수명을 다할텐데...그때 또 어른들은 어떤 마음이실까 하고. 그런 마음 때문에 이 책이 더욱 슬프고, 또 가슴에 와닿는 거 아닐까요.

//아흑, M&M 보고 싶어요. ㅠ_ㅜ
2008/06/02 11:53

gene R X
신디랑 추새, 앨리스 이젠 없구나. 최근의 내용을 덧붙여 출간된건가? 아후. 예전에 페르캉 한쪽 눈 잃었을때 펑펑 울었던 기억이난다.
2008/06/01 18:50

misha X
예전에 나인북스에서 나왔던 내용에다 2008년 근황이 몇 페이지 추가되었음. 신디랑 추새가 사라졌단 내용 보고 무척 놀랬다.
2008/06/0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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