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앤 더 시티(2008)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감독: 마이클 패트릭 킹Michael Patrick King(2008)
인기를 끌었던 TV시리즈를 영화화할 때는 이런저런 위험요소가 따르는 법이다. 가장 큰 문제라면 2, 30분 남짓의 시간에 딱 들어맞던 흐름과 구성을 두어 시간 정도로 화악 늘리기 위해서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개연성있게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역시 2, 30분 동안의 짧지만 흡입력있는 기·승·전·결 구조에 익숙해져 있던 기존의 팬들을 고스란히 데려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극중 칼럼니스트인 캐리가 써내려가는 글 몇 줄만으로 장면을 전환하고 단편적인 깨달음을 전달하기에 140여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 때문인지 극장판 [섹스 앤 더 시티]는 몇 가지의 사건을 준비한다. 일단 영화의 시작과 끝을 맡고 있는 캐리와 빅의 결혼을 중심으로 미란다와 샬롯, 사만다의 상황이 한데 어우러진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만큼, 인기를 끌었던 TV 미니시리즈를 영화화한 만큼 영화 속 주인공들도, 그리고 그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도 그만큼 좀 더 깊어지고 성숙한 모습이기를 기대했다. 과연 그 결과는? ![]() 드레스가 이쁘기는 이뻤다마는...-_-a; 내가 이 영화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이미 결혼한 이들은 그 나름대로, 싱글로 남아있는 이들은 또 그 나름대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면서 변함없이 만나 수다를 떨고 우정을 나누는 그런 소소한 모습들이었다.1) 만약 여전히 TV시리즈였다면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는 게 가능했을 테지만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소화해내야만 하는 극장판에서는 결국 굵직굵직한 사건들로 이야기를 끌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지만 나름대로 재치가 넘치던 에피소드를 원하던 내 기대, 내 취향에는 극장판이라는 형식은 처음부터 그다지 맞지 않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5년이라는 시간만큼의 인간적인 성장과 성숙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던 걸까? 특히 숱한 연인들을 거쳐 (아마도) 마지막 사랑인 빅과의 만남을 몇 년간 이어오면서도 TV시리즈와 별반 나아지지 않은 헛똑똑이 캐리의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럽다. 여전한 모습, 발전이 없다. 연애와 사랑에 대해 그렇게 많은 관찰과 경험을 해왔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결혼 문제에 있어서는 한참을 돌아온 후에야 결론에 이른다. 물론 결혼이라는 현실에 있어서 이때까지 보고 들은 간접경험은 별반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갖가지 경험과 실수, 그로 인한 소소하지만 진솔한 깨달음을 전달하기 위한 역할을 작품 속 화자인 캐리가 떠맡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30대의 캐리와 지금의 캐리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것, 또한 TV시리즈에서 빅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때와 극장판에서의 빅과의 관계가 나아진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늘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며 캐리의 현명한 조언자로 남아있던 미란다 역시 일보 후퇴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일과 가정을 동시에 꾸려가야 하는 40대 여성의 노곤한 일상을 보여주려 한 시도였다면 어느 정도 공감은 할 수 있지만(그런 면에서 나는 스티브를 용서하지 못하는 미란다의 마음 역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빅에게 던진 말 한 마디를 두고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캐리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미란다라니, 예전의 그녀였다면 결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일이다. 물론 샬롯의 말대로 고백해야 할 시기를 기다릴 필요는 있었겠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언젠가는 한번 부딪쳐야만 하는 그 상황을 애써 피해 도망다닌 걸로밖에 안 보인다. 이 역시 TV시리즈였다면 적정한 선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을 텐데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위해 일부러 질질 끌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샬롯의 경우는 그냥 제자리걸음 상태. 나름대로 좌충우돌을 겪었던 세 명과 달리 샬롯은 한층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임신을 하게 된 샬롯은 4총사 중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 이미 입양을 통해 딸아이를 얻은 상황에서 또 다시 임신을 한다는 데 대해 캐리나 미란다, 사만다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과 균형을 이루기 위함은 아닐까 싶어 다소 마뜩찮은 감도 없지 않았다(샬롯이 그동안 괴로워한 걸 생각하면 축하해야 마땅하지만 뭐랄까 영화 전체의 균형을 위해 임신이라는 장치를 이용했다는 느낌마저-_-). 그나마 내적 외적으로 가장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는 바로 사만다이다. 연인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때로는 자기 자신의 욕망을 접어두는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가장 힘들 때 함께 그 시기를 견뎌내 준 스미스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까지 느끼게 되지만, 결국 스미스를 향한 사랑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역시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별을 고한다. 물론 TV시리즈에서 사만다는 이미 리처드에게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더 사랑한다며 헤어진 적이 있지만 극장판에서의 스미스와의 이별은 또 다르다. 마음에 드는 반지를 꼭 자기 돈으로 사고 싶었다고 말하는 사만다의 모습2)은 이전처럼 상대방을 자신에게 묶어두기 위해 사랑이라는 감정에 맹목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사랑을 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사만다‘다운’ 성숙함을 보여준다. 4총사 중 가장 나이가 많고 또 가장 먼저 50대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사만다의 성장은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50이라는 나이에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 여전히 지칠 줄 모르는 열정, 여전히 자기애에 충실하지만 예전에 비해 타인을 한결 배려하는 모습. 아마 4총사 중 유일하게 결혼을 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믿고 세상을 헤쳐 나간다는 면에서 사만다는 비혼(非婚)여성들의 롤 모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R], [엑스파일], [CSI], [프렌즈] 등 많은 인기를 얻었던 여타 드라마들과 비교했을 때 [SATC]는 짧다면 짧은 6시즌으로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캐리, 미란다, 샬롯, 사만다―네 명의 여성들이 꾸려왔고 또 앞으로 꾸려갈 삶과 사랑과 인생과 우정에 대해서 네 명 각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또한 팬들 역시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보다 화려한 의상, 값비싼 웨딩드레스가 이미 끝을 내버린 이야기의 답습을 무마시켜 주지는 못 한다. 짧은 시간 속, 스쳐지나가는 단상을 하나 둘 씩 잡아두며 삶과 사랑에 대해 작지만 의미있는 의문을 던져주던 [SATC]의 매력이 영화 속에서는 온갖 의상과 구두의 형형색색에 파묻혀버린 아쉬움이 너무도 크다. 비록 영화 [SATC]는 한 발 더 나아가보려다가 두 발 물러서버리긴 했지만 때로는 아아 조금만 더, 하는 순간에서 스스로를 다잡으며 멈출 줄 아는 것이 나이가 들었기에 가능한 성숙한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2008/06/1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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