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아프리카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지은이 : 박희정
신일숙, 강경옥, 이은혜 같은 대선배작가들과 함께 <윙크> 창간호부터 투입된 박희정은 나예리, 천계영과 함께 <윙크>가 배출한 신인 중 현재까지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데뷔 때부터 아름답고 유려한 그림체와 강렬한 원색과 은은한 파스텔톤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컬러 일러스트로 독자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은 박희정은 『I can't stop』으로 연재의 흐름을 익힌 후 드디어 『호텔 아프리카』의 문을 열게 된다. 영화를 향한 꿈과 열정으로 뭉친 세 젊은 남녀와 어린 시절 유타의 뜨거운 태양 아래 하나둘씩 피어났던 호텔 아프리카의 추억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진다. 물론 때로는 다소 성급하고 서툰 결말로 끝을 맺은 에피소드도 있긴 하지만, 『호텔 아프리카』는 결코 신인답지 않은 호흡과 연출, 감각적인 그림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때로는 남녀간의 아스라한 사랑, 때로는 동성간의 우정 그 이상의 짜릿한 감정, 때로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우수에 젖은 서정적인 이야기들이 한창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녀들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 더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이 작품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 것은 작가가 그만큼 들인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독 초롱초롱 빛을 가득 담은 인물들의 눈부터,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옷 주름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넘어가는 법 없이 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처럼 물이 오를 대로 오른 그림과 컬러는 비록 아니어도, 충분히 박희정만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그림체는 그야말로 ‘보는 맛’이 난다. 주인공들의 개성에 걸맞는 스타일리시한 차림새 또한 신일숙이나 강경옥, 황미나 등의 기성작가들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신선함으로 다가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중요요소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가식과 편견없는 진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호텔 아프리카’의 사람들처럼, 정말 하고픈 이야기를 소중히 품고 있다 조심스레, 정성스레 가다듬어 들려주고 싶은 신인작가의 설렘과 두근거림이 『호텔 아프리카』를 더욱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든다. 그때 그 시절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릴 수 없었을, 대가의 원숙한 그림과 연출이 아니기에 오히려 더 와닿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묘한 부분이다. 90년대 말, 컴퓨터와 디지털의 홍수가 밀어닥치기 일보직전의, 손맛이 살아있는 따스한 그림과 아날로그적 감성이 던지는 향수가 2009년 지금 이 작품을 읽었을 때 더 짠한 느낌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박희정은 과연 『호텔 아프리카』 같은 작품을 다시 그릴 수 있을까?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 글쎄….
2009/05/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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