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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라는 것 [일상/기린이 이야기]

많은 이들이 모성애는 여성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기린이를 낳기 전에는(‘임신하기 전’이 아님에 주의) 모성애라는 것이 본능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덧 기린이가 돌이 다 되어가는 지금 돌이켜 보면, 모성애는 아가와 엄마가 서로에게 적응해가며 조금씩 함께 쌓아가고 다져가는 유대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온몸을 찢는 듯 한 산고産苦를 견디고 무사히 아이를 낳았다는 기쁨도 잠시, 지금까지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엄마로서의 역할, 책임, 무한정으로 베풀어야만 할 것 같은 사랑, 숭고한 희생 등은 온데간데없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바로 당혹감이었다. 아기는 어떻게 안아줘야 하나? 젖은 어떻게 물려야 하나? 기저귀는 또 어떻게 갈아주지? 저렇게 속싸개로 꽁꽁 싸매놔도 괜찮을까?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배냇저고리가 저렇게 크다니, 옷을 갈아입히다가 저 가느다란 팔이 꺾이기라도 하면 어쩌나? 맙소사, 어떻게 이 아기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내 뱃속 안에 웅크리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기린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기린이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먹이고 어떻게 씻겨야 할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모성애’라는 범우주적인 명제 하에 그렇게 되어야만 함을 암묵적으로 강요했다. 어둑하지만 한없이 아늑한 엄마 뱃속에서, 출렁거리는 양수에 몸을 맡기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다가 갑작스레 바깥세상에 나와 당황스럽기 짝이 없을 아기와, 열달 전에는 점보다도 작았던 존재가 어느새 제 몸을 키워 이렇게 내 팔에 안겨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그저 멍하기만 한 엄마가 그 충격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조금의 시간적 여유도 없이 말이다.

기쁘지? 얼마나 좋으니? 아기가 참 예쁘지? 미안하게도 나는 그런 질문들에 순수하게 내 감정을 표시할 수 없었다. 기쁨보다는 당혹감이, 사랑보다는 ‘엄마’라는 이름의 무거운 책임감이 나를 짓눌렀고, 내 서툰 손길에 아이가 불편해하고 젖을 토하고 잠을 못 이뤄 울어댈 때마다 죄책감은 날로 더해만 갔다. 나 때문이구나. 나 때문이구나. 내가 네 엄마라서 이렇게 너를 힘들게 하는구나. 하필이면 나 같은 사람이 엄마라서 이 귀한 생명을 이렇게 울고 지치게 만드는구나….

2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의 어느 날, 기린이는 어김없이 잠투정을 시작했고 울음소리는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화가 났다. 너도 힘들지만, 나도 힘들어. 잠이 오면 자면 되는데 왜 이렇게 자질 않니. 왜 내 마음을 몰라주니! 급기야 버럭 소리를 지르며 냅다 울고 있는 기린이를 smk군에게 던지듯이 안겨주고는 안방으로 뛰어 들어와 큰소리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순간 기린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한참 울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아빠 품에 안긴 기린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때의 기린이의 표정은, 정말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놀란 듯도 한, 그리고 어딘가 미안한 기색이 보이는 듯도 한. 이제 2개월 된 아기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해보질 못했건만, 그때의 기린이는 분명 내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순간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조심스레 다가가 기린이를 안으니 좀 전까지만 해도 온 집안이 떠나가라 울어대던 녀석이 이젠 내 품에 폭 안겨서는 눈을 감고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을 청하려 하는 게 아닌가.

아마도 그때가 아닌가 싶다. 내가 정말로 이 아이의 엄마구나, 싶었던 것은. 그저 신기하고 조금은 얼떨떨한 기분이 아닌, 그야말로 충만함이 가득한 기쁨을 맛보았던 것은. 한때는 탯줄로 이어진 세상 둘도 아닌 하나인 존재였던 우리가 독립된 개체로 만나 서로에게 적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걸,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에 스스로를 괴롭혀왔던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그때에야 비로소 깨달은 거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한번도 아기를 접해보지 않은 내가 단지 ‘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이미 습득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열달 동안 뱃속에서 키워내는 그 이상으로, 세상 밖에 나온 아기와 엄마는 서로에게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기와 엄마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인지하지도, 용인하지도 않는다. 엄마잖니, 왜 그걸 몰라? 왜 그걸 못해? 왜 아기를 울리니? 그리고 쏟아지는 충고를 가장한 질책, 질책들. 하지만 아기와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둘만의 시간이다. 

11개월 반에 접어드는 요즈음, 자고 있는 기린이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나고 잘 자고 있는 아이의 볼에 괜히 뽀뽀 세례를 퍼붓곤 한다. 이 작은 아이가 불과 1년 전에는 내 뱃속에서 꼼지락대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직 신기한 마음이 남아있지만, 이제는 정말로 엄마가 된 기쁨을 조금은 제대로 실감하는 것 같다. 이 감정을 굳이 모성애라는 거창한 낱말로 정의내리고 싶지는 않다. 이 세상에 내가 있고, 네가 있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너의 엄마이고, 너는 나의 딸. 단지 그게 전부일 뿐. 본능도 의무도 책임도 아닌, 그저 살아 숨쉬는 우리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뿐.





2010/02/05 23:35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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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한Ruby R X
아아...목욕하는 기린이 행복해보여요.^^
저도 비슷한 감정을 갖었었어요. 나도 초보인데 다 나한테 어쩌냐고 물으면..정말 어찌하오리까..ㅜㅜ
이제는 아기를 안으면 안을수록 그 피어나는 사랑이 너무 벅차서 무서울지경이에요.
2010/02/05 23:58

misha X
'수중미인 기린'입니다(으하하하하).
처음인 건 엄마도 아빠도 다 마찬가지인데, 유독 '엄마'이기에 더 많은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도 같아요. 결국 누가 더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익숙해지는가의 문제인데 말이죠.

그래서 오늘 smk군에게 기린이 맡기고 나왔답니다-_- 아침 이유식까지는 잘 먹이는 걸 봤는데 과연 점심은 어떨지... 부녀사이가 좀더 돈독해지길 기대하고 있어요(후후).
2010/02/06 10:28

rumic71 R X
엄마로서 자기 자식을 사랑해주면 그게 말 그대로 모성애죠. 뭐 거창한 게 필요할 리는 없지요. 아가 표정이 참 귀엽습니다.
2010/02/06 05:44

misha X
목욕을 좋아해서 더 귀엽게 나온 것 같습니다. ^^
2010/02/06 10:31

gene R X
보다가 울었어요 -_ㅜ
가스나, 벌써부터 썩소짓긴♡ //ㅁ//
2010/02/06 14:17

misha X
썩소...좀 그렇지? -_-; 그래도 콧잔등 주름 잔뜩 잡으면서 웃을 땐 나름대로 귀여워;
2010/02/09 08:54

쥴라이 R X
물을 좋아하는 아가들은 목욕할때가 행복해보여...
울 큰 조카군도 물에 환장하던 놈이라는.. 예전엔 초보엄마들(올케 & 작은언니) 보다 더 애를 잘 보는(직업상 경험덕에..) 고모 & 이모였던 나도 내 새끼가 나오면 어케하나 암담하고만...ㅡ.ㅡ;;;
2010/02/06 19:15

misha X
그래도 경험이 있으시니 좀더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닥치면 어떻게든 되는 거 같아요. 너무 걱정마세요. ^^
2010/02/09 09:00

여우비 R X
아..글 읽다가 짠해서 눈물이 나왔어요. 특히 마지막 줄이 정말 가슴에 와닿네요. 저도 언젠가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오기야 오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너무 먼 미래 같네요. 기린이 정말 너무 이뻐요. 저도 misha님 임신하시고 기린이 기다리면서 하던 포스팅 킥킥대면서 읽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자라서 벌써 11개월 반인가요.. 어휴. 나도 그만큼 나이가 들었겠지만요-_-;; misha 님 블로그 처음 알았을 때만 해도 기린이는 아직 세상에 없었는데, 참 신기하네요^^ 기린이랑 misha 님이랑 남편 분 모두 행복하세요^^
2010/02/06 20:53

misha X
한번씩 기린이 갓 태어났을 때부터 사진들 보다보면 깜짝 놀라요. 너무나 변화무쌍하다는 사실에; 앞으로는 더 그렇겠죠? 은근 기대하고 있답니다.
2010/02/09 09:02

곤도르의딸 R X
저도 읽다가 눈물이 그렁그렁... 벌써 기린이가 돌 다 되어 가네요. 이젠 매일매일 더 예뻐지고 더 귀여워질 거에요. 돌 이후 애들은 진짜 엄청난 발전상을 보여주죠. 내 자식이 천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흐흐흐~~~~ 전 도러 키우면서 쩔쩔매던 때 생각하면 아직도 자책감과 무지함에 대한 분노로 가슴이 이글지글거립니다;
2010/02/07 22:41

misha X
자책감과 무지함...흐...정말이지 저도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납니다!! OTL 사실 전 지금도 기린이가 손가락을 열심히 빠는 게 처음 한 두달 동안 제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많이 안아주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이유불명의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둘째 때에는 이런 시행착오를 두번 다시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데 과연 어찌 될랑가요;

실로넨 님 말씀대로 정말 눈 깜짝할 새에 백일, 돌을 맞네요. 토요일부터 기린이는 말로만 듣던 돌치레를 하려는지 심한 목감기 증세로 응급실 데뷔도 하고 눈물 콧물을 좔좔 흘려가며 오늘 아침에도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었다지요; 내일 모레가 설인데 빨리 좀 나았으면 좋겠어요. 감기는 빨리 엄마한테 주렴, 하고 뽀뽀도 많이 하고 나왔는데. ㅠ_ㅜ
2010/02/09 09:10

우주인 R X
원래 아이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배가 남산만 했을 때도 뭔가 실감이 안났는데...게다가 역아라서 제왕절개였던 탓에 더욱 모성애, 보자마자 감동과 눈물...이런 거 못 느끼겠더라구요. 다만 나로 인해 세상에 나왔고, 내가 이 핏덩어리의 엄마이니 내가 지켜줘야만 하는 생명체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는어요. 하지만 하루하루 성장하는 걸 보니 그렇게 이쁠 수가 없네요. 초보엄마의 서투름 때문에 아기가 힘들어하면 미안할 때도 너무 많지만 그렇게 서로에게 맞춰가는 거겠죠? ㅠ_ㅠ
근데...왜 저보다 아빠를 더 좋아할까요-_-;;; 내가 먹이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했는데. 물론 친정엄마가 더 많이 봐주시지만 어쨌든 아빠보단 이 엄마와 더 오래있었는데 어째서~~ 초큼 섭섭해요.
...이러다 조만간 여기다가 육아 상담하는 날이 올지도...? 삼천포가는 댓글..
2010/02/10 16:03

misha X
저도 아이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임신 중에도 사실 내가 과연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참 걱정이었어요. 뱃속에서 꼼지락대는 태동에 즐거워하는 거랑, 실제로 아이와 대면한다는 거랑은 또 완전히 다르기도 하고요. 지금도 잘 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하루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나가는 모습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사실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느낌에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지만 말이죠;

우주인 님 아가는 아빠를 좋아하나 보네요. 기린이는 아빠한테 데면데면해요 ; 어제도 출장갔다가 사흘만에 아빠를 봤는데, 별 반응도 안 보이고(오히려 지난 일요일엔 아빠 코를 할퀴어서 피딱지 만들고). 그래서 smk군은 늘 서운해하지만 점차 좋아지겠죠? ;;
2010/02/12 09:10

다소 R X
저만 보면서 눈물 찔끔 흘린 게 아니군요. ㅠㅠ 생각해보면 엄마들이 처음부터 엄마였던 건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엄마라면 그 정도는 다 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저부터도 그랬던 거 같고요. 생각해보면 울엄마는 지금 제 나이에 절 학교에 입학시켰는데 그럼 그 창창한 20대를 애 키우느라 고생하셨단 얘기잖아요. 아우...새삼 미안한 마음이...ㅠㅠ

아기 잠투정에 misha님 펑펑 울었다는 얘기에 왜 제가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지. 생각만해도 무섭고 떨리고 그래요. 친구가 육아 힘들다고 해도 워낙 생글생글 밝은 구석이 있는 녀석이어서 왠지 아기자기 귀여운 일이 더 많을 것 같았는데 사실은 그녀석도 엄청 힘들고, 지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서 안쓰러워요(사실은 위에 우주인 이야기.헤~)

그러고보니 기린이 곧 돌이네요. :-) 조만간 예쁜 꼬까옷 입고 찍은 사진 볼 수 있겠어요. 은근 돌잡이도 기대중~^^
2010/02/11 17:05

misha X
'엄마'라는 이름이 어떤 이들에게는 참 포근하고 정겹게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또 우리나라는 유독 그 엄마라는 이름에 더 많은 책임을 강요하고 있기도 하고요.

사실 아이랑 같이 있는게 힘들다고만은 할 수 없는데, 제 자신부터 아직 단단히 굳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 이래저래 염려되는 것도 많고 그렇네요. 육아는 정말이지 고민의 연속; 지금의 선택이 과연 아이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 것인지 생각하고 있으면 어찌나 머리가 아픈지 그냥 머리도 마음도 비우고 그때그때 감으로 헤쳐나가고 있어요. 요지는 저도 아이도 즐겁게~ 하지만 요즘은 젖 먹을 때나 놀 때 자꾸만 깨물어서 한번씩 버럭질을 한다는 사실...;;;
2010/02/1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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