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연금술사(鋼の鍊金術師)-나의 눈물을 줄 테니 너의 웃음을 줘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지은이: 아라카와 히로무(荒川弘)
출판사: 스퀘어에닉스(スクウェア·エニックス) / 학산문화사 권수: 7권~(2002~) 처음 시작은 애니메이션이었다. 폭풍같이 몰아치는 바쁜 업무들에 짓눌려 급기야 호흡마저 곤란해지던 건조한 봄밤, 내 수중엔 만화책도 없었고 혼자 이어폰을 꽂고서 조용히 침묵할 수 있는 장소도 없었고 종이 위의 미세한 요철을 손으로 더듬으며 활자를 느낄 수 있는 책 한 권도 없었다(업무 자료 보면 되잖아? 라고 묻는 그대, 레드카드요!). 자연스럽게 그 상황에서 그나마 손쉽게 접할 수 있는 TV 애니메이션을 찾게 되었고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강철의 연금술사]. 다들 퇴근한 사무실에서 밤늦게까지 혼자 애니를 몰아서 보고 자취방으로 터벅터벅 돌아가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단 한가지였다. ‘―만화책을 사야만 해.’ 곳곳에서 일어나는 내전으로 인해 황폐해진 땅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 비릿하게 남아있는 피비린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 거기에 친우의 목숨까지 가슴에 묻어두고서 불꽃을 휘두르는 남자. 현자의 돌을 손에 넣기 위해 끊임없는 거미줄을 엮어나가는 호문큘러스.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죄의 증거를 몸에 지닌 채 현자의 돌을 찾아 헤매는 형제. 금기를 범한 대가로 이미 너무나도 큰 것을 잃었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어쩌면 목숨마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갈 수밖에 없다. 그것밖에 다른 길이 없으니까. ‘인체연성’이라는 대죄를 범한 그들의 동기는 순수하다. ‘그 사람을 다시 보고 싶어.’라는 것. 에드와 알이 그러하고, 그들의 스승 이즈미가 그러했으며, 로이는 휴즈의 묘비 앞에서 인체연성의 이론을 짜맞추며 쓴웃음을 짓는다. 잃어버린 소중한 이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 간절한 바람이 평생을 얽어매는 굴레가 되다니 이 얼마나 잔혹한 운명인가. 그러나 순리를 거스르고 자연의 이치를 그르친다는 점에서 그 소망은 죄가 되어버린다. 과학자로서 진리 저 너머로 다가가고 싶다는 열망과 뒤섞인 바람은 태어나서 살고 죽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절대적인 순환의 고리를 뒤틀어버리고, 그 뒤틀린 이공간에서 알과 에드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겨우 살아남게 된다. 인정한다. 한없이 우울하고 어둡기 그지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두텁게 내려앉은 구름 사이로 내리쬐이는 햇살처럼, 강철의 의수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에드의 곧은 황금빛 시선은 작품 전체를 뒤덮으려 하는 어둠을 순식간에 환한 빛으로 뒤바꾸어 버린다. 에드와 알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애써 지우려 하지 않고, 과거를 묻어두려고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자신들의 과오를 되새기며 단 하나의 목표―원래의 몸을 되찾기 위해 달려갈 뿐이다. 은시계에 날짜를 새겨놓고 ‘이런 식으로밖에 스스로를 다잡아야만 하는’ 자신을 책망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두려움과 절망에 파묻혀 눈물 흘리기보다 그들은 앞으로 발을 내딛는 것을 택했고, 그렇기에 에드와 알은 빛을 등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을 향해 나아간다. 그 빛 덕분에 『강철의 연금술사』가 수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 하나의 주인공, 로이 머스탱 역시 에드와 알처럼 자신의 죄를 가슴에 묻어두고 앞을 향해 달려나간다. 대총통이라는 지위를 손에 넣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충분히 이용하고 버릴 것은 가차없이 버리는 출세지향의 그이지만, 로이가 일으키는 불꽃은 과거에 저지른 죄를 다 태우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과거의 악몽들을 환하게 비추며 그를 채찍질한다. 이제 친우의 목숨까지 그 어깨 위에 올려진 이상, 그는 더 이상 주저할 것 없이 ‘위’로 파고들 것을 다짐한다. 더 이상은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무고한 이들의 피를 뒤집어쓰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더 이상은 자신의 불꽃이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은 그 불꽃이 뒤늦은 후회와 슬픔을 연료삼아 타오르게 하지 않기 위해.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간다는 점에서 로이와 에드는 닮은꼴이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두 사람이지만 둘은 서로의 부분부분을 채워주고 있으며 그들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같은 곳에 존재한다. 대총통으로 가는 길, 현자의 돌을 향한 길은 평행을 달리다가 어느새 교차되며 수없는 접점을 남기고 이제는 같이 겹쳐지려 한다. 불꽃 속에서 더욱 견고해지는 강철처럼, 불꽃의 연금술사와 강철의 연금술사는 아마도 그 길 위에서 또 다시 만나 서로를 뒷받침해주지 않을까. 금기, 죽음, 강철의 의지, 피, 그리고 전쟁…. 이 모든 것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강철의 연금술사』는 유머러스하고 담백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상황을 거침없이 정면돌파해 나가는 주인공들의 성격묘사는 물론이요 곳곳에서 빛나는 작가의 개그센스는 ‘훌륭하다’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상처입은 주인공들을 보듬어주는 주변 인물들―윈리, 호크아이 중위, 암스트롱 소위, 휴즈, 그리고 동방사령부의 로이의 심복들―의 표현 또한 주인공의 무게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매력을 한껏 발하고 있다. 그러나 마냥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그 웃음 끝에 씁쓸하게 배어나오는 슬픔은 나만이 느끼는 것일까. 밝은 햇살 아래서 함박웃음을 짓는 그들을 보고픈 마음에 나는 책장에 꽃혀있는 책을 애써 외면한다. 『강철의 연금술사』를 지배하는 대명제가 등가교환이라면, 내 눈물 대신 그들의 웃음을 바랄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럼에도 나는 다시 한번 작게, 중얼거린다. ―‘나의 눈물을 줄 테니 너의 웃음을 줘.’ 2004. 7. 28. 2005/11/26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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