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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프린세스-건조한 일상을 촉촉하게 바꿔주는 그 무엇 [창고/애니, 쉼없는 동경]
감독: 미셸 오슬로 (1999)
각본: 미셸 오슬로


이 애니메이션은 동화(童話 : 어린이를 위하여 지은 문학작품, 혹은 그런 이야기)다. 혹은 우화(寓話 : 다른 사물에 비겨 의견이나 교훈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말)다. [키리쿠와 마녀]에서 볼 수 있었던 미셸 오슬로의 독특한 감각과 재능은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캐릭터와 도저히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교한 화면, 그리고 독특한 유머. 아이들이 가득한 혼잡한 일요일의 상영관 내에서 나는 이 작품에 숨돌릴 틈 없이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이 정교함, 이 화려함. >.<첫 에피소드인 왕자와 공주 이야기는 흔히들 들어온 이야기이다. 111개의 다이아몬드를 찾아서 공주를 구해내는 왕자의 이야기. 생전 만나본 적도 없는 공주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왕자를 비웃지 말자. 이런 점에서 [프린스 & 프린세스]는 완벽한 동화다. 이런 단순한 내용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풀숲에 떨어져 빛나고 있는 수많은 다이아몬드다(이 장면을 위해 별별 수단을 다 써보다가 결국은 유리판에 마가린을 발라 빛을 투과 시키는 방법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미셸 오슬로는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는 관계로 그림자 애니메이션을 택했고 총 8개의 에피소드를 만들었는데 본편에는 배급자가 선택한 6편의 작품만이 선택되었다(참고페이지-씨네21).

남자와 여자는 서로 이야기를 생각해내면서 자신이 분장할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늙은 기사는 그들을 위해 무대를 마련해준다. "괜찮아, 왕자와 공주만 있다면 무슨 이야기든 만들어 낼 수 있어"라는 늙은 기사의 말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약간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왕자와 공주, 마녀와 평범한 청년, 여왕과 그녀에게 무화과를 갖다 바치는 소년, 잔인한 여왕을 사모하는 조련사. 그들은 나란히 책상에 앉아서 평소처럼 시간을 보내다가 왕자와 공주 이야기로 시작한 그들의 상상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해서 중세 유럽, 19세기 일본, 미래에 이르기까지 전차원을 종횡무진하며 이야기를 끌어낸다. 왕자와 공주라고 해서 무조건 해피엔딩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편일률적으로 옛날 이야기를 답습하는 것도 아니다. 마녀의 성 앞에서 퍼부어지는 공격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 청년은 칼을 버리고 "들어가도 될까요?"라면서 마녀의 허락을 구한다. 치마를 걷고 계단을 뛰어오르며 자신의 성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마녀의 모습을 보면서 마냥 유쾌하게 웃을 수만은 없는 그 아련한 느낌을 청년은 알아차린 것일까? 성 안을 구경하면서 청년은 마녀의 지성과 따스한 배려, 자신의 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에 사랑을 느끼고 공주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키리쿠와 마녀]에서도 키리쿠가 마녀가 그런 악행을 저지르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듯이, 청년 역시 1:1로 대등한 위치에서 마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스스로 마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한다. 고정관념처럼 박혀버린 마녀=악의 구분을 믿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는 청년의 모습은 동화라기보다 차라리 우화에 더 가깝다.


웃음 대폭발!!! >.< (19세기 일본의 판화가 호쿠사이(참고페이지는 이 곳)의 그림에서 출발한 에피소드는 입가에 맴도는 웃음과 함께 이 애니메이션을 만든 이들(감독을 포함한 8명의 애니메이터가 이 작품에 참여하였다)의 실험정신도 돋보이는 장면이다. 도둑의 등에 업혀 에노 마추바라에서 후지산에 이르기까지의 경치를 구경하는 노파 오이꼬와 함께 관객들은 호쿠사이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에 접하게 된다. 약 10여분의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부엉이 머리가 째깍째깍 돌아가면서 "1분간 휴식시간입니다"라는 제작진의 유머 또한 더없이 만족스럽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지막의 10분간의 키스타임은 폭소 그 자체이다. 서로의 사랑을 맹세하면서 키스한 왕자와 공주는 상대가 동물로 변하는 순간 진저리를 치며 자신의 사랑을 부인한다. 고래에서 벼룩같은 극과 극을 달리며 그들은 본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 계속 키스하지만 결과는 성(性)이 뒤바뀌어 버린다. 왕자로 변한 공주가 "괜찮군요, 이제 성에 돌아가요"라고 하자 그렇게는 못한다며 난리치는 왕자. "괜찮아요, 내가 사냥을 나가고 당신은 바느질을 하면 되요"라고 공주가 말하자 왕자는 "난 바느질을 못한단 말이오"라면서 도리질을 친다. 그 순간 공주의 직격타-"배우면 되죠!!!" 모든 고정관념과 편견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이 통쾌함!! 그렇다, 배우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이 장면만큼은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 도시의 야경과 함께 남자와 여자, 늙은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상상력의 자취를 함께 좇는다.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왕자와 공주가 진부하다고 생각되면 우리의 상상력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가끔씩 생활이 지겨워질 때마다 친한 몇 명과 함께 연습장을 꺼내 들고 함께 끄적여보고 싶다.


2001.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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