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여우(千年女優 Millenium Actress, 제 6회 PIFF 상영작)-집착이라 해도 아름답다 [창고/애니, 쉼없는 동경]감독: 콘 사토시 (2001)
각본: 콘 사토시, 무라이 사다유키 음악: 히라사와 스스무 제작: 매드하우스 나는 콘 사토시 감독의 전작 [퍼펙트 블루]를 보지 못했다. GV 시간 때 전작과 상당한 연관이 있다는 감독의 말을 듣고 새삼 [퍼펙트 블루]를 진작에 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글쎄, 전작을 보았다 하더라도 [천년여우]를 보고 느낀 그 뿌듯함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배우로서의 전성기를 한껏 누리다가 돌연히 모습을 감춘 전설 속의 여배우 후지와라 치요코. 메이저 영화사에서 치요코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의뢰받은 타치바나 겐야는 치요코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젊은 카메라맨과 함께 치요코가 살고 있는 깊은 산속으로 찾아간다. 치요코의 팬임을 자처하며 그녀를 늘 그리워했던 타치바나는 치요코에게 그녀의 추억의 물건을 건네주고, 치요코는 그 물건-'열쇠'를 손에 쥐고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의 장면들이 순식간에 화면을 뒤덮은 후, 관객들은 어느새 그녀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게 된다. 학교를 파하고 열심히 집으로 뛰어가는 그녀를 뒤쫓는 것은 다름아닌 '치요코 님~'을 외치는 타치바나와 카메라맨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다만 고향이 홋카이도라는 것, 그림을 그린다는 것만 아는 치요코의 첫사랑. 그가 지니고 있던 '소중한 것을 여는 열쇠'의 대답을 내일로 미루었으나 결국 치요코는 첫사랑의 행방을 놓치고 만다. 그가 남긴 열쇠를 목에 걸고 그를 찾으리라 다짐하는 어린 치요코. 만주로, 다시 일본으로, 전후에는 계속 영화의 주연을 맡으며 계속 성공을 거두지만 그녀의 머릿 속에 있는 것은 오직 첫사랑을 찾겠다는 굳은 다짐 뿐이다.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는 모두 '그'를 찾는 과정이고, 영화의 내용은 그녀가 실제 처한 상황과 교묘히 맞물리게 된다. 또한 치요코 자신이 태어났을 때, 중요한 결심을 하는 전환점, 감정이 격해지는 장면 곳곳에서 일어나는 지진은 작품의 흐름을 끊어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흐트러진 호흡을 되살려주는 역할을 수행한다(개인적으로 '지진'을 이용한 연출이 상당히 인상깊었다). 옛날을 회상하며 재연하는 치요코와 그녀를 도와주는 타치바나, 그리고 철저히 제 3자의 입장에서(관객의 입장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을) 카메라맨의 존재. 이 3명은 애니메이션의 탄탄한 축을 이루며 쉼없이 그 내용 속에 집중하게 하며 과거와 현실, 환상의 교묘한 중첩 사이에서도 헤매지 않도록 관객을 이끌어간다. 사랑하는 이를 찾는 만주의 종군간호사, 사랑하는 영주를 되찾으러 갑옷을 입고 적의 성으로 진격해 가는 공주, '그'의 행방을 쫓는 여자닌자, 메이지 시대의 기생, 급기야는 달로, 우주로까지 '그'를 찾으러 떠나는 치요코의 영화. 그것은 치요코의 인생 그 자체이기도 했다. 매번 자신의 목에 걸린 '열쇠'를 손에 꼭 쥐고 끝없이 달리는 치요코. 그가 탄 기차를 쫓아서, 나중에는 그가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홋카이도의 눈밭을 달리는. 결국 '달리는 것' 이외에 치요코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채 막연히 자신의 그 애틋한 감정에만 의지할 뿐이다. 영화 속에 나타난 물레를 돌리는 유령 또한 그녀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두려움, 언젠가는 자신도 그도 나이를 먹고 더 이상 서로를 알아볼 수 없으리라는 당연한 시간의 흐름이다. 그녀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열쇠도 사실 그녀의 마음을 상징화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라도 내 버릴 수 있었을 열쇠. 그저 '소중한 것을 여는 것'이라는 그의 단 한마디에 의지해서 자신도 그 열쇠를 소중히 여기지만, 어쩌면 그것은 치요코의 집착이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라는 것은 내 생각이고, 감독 본인도 열쇠의 원래 의미는 관객 개개인의 몫이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열쇠의 의미에 대해서는 관객에게 맡긴 것과는 달리, 마지막 치요코의 환상은 치요코 자신의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죽음을 앞두고 열쇠를 손에 쥔 채 조용히 눈을 감는 치요코. 곧 그녀의 환상은 우주선을 타고 달이 아닌,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막막한 우주로 향한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우주선 안에서 결국 자신이 그토록 집착했던 것은 자신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녀(이 장면에서 나는 내가 느꼈던 것이 치요코의 대사와 같았기에 내심 기뻤다). 사실은 그가 죽었다는 것도 몰랐지만, 어쩌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었겠지만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자신의 집착. 죽음에 이르러서 그것을 인정하게 된 치요코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우주로 날아간다. 그녀의 아픈 과거에 함께 슬퍼하는 타치바나와 카메라맨을 남긴 채. 애니메이션의 기술적 측면에 있어서는 아는 것이 없기에 할 말이 없다(그러나 실사 사진을 적절히 이용한 장면과 치요코가 어린 시절의 사진, 특히 인형을 뒤에 둔 사진 등에 있어서는 잘 모르는 나로서도 정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연출은 어떠한가. 그닥 화려하진 않아도 정말 실재하는 듯한 그 생생한 캐릭터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칫하면 현실과 허구 사이의 함정에 스스로 빠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모두 감수하고서도 안정된 연출로 관객을 사로잡는 콘 사토시 감독에게 박수를 보낼 뿐이다. 꼬리> 역시 과외는 조금 늦겠다고 전화를 하고 사인을 받았어야 하는 것이었다. T.T 2001. 12. 1. 2005/11/26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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