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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5   모성애라는 것  (16)
모성애라는 것 [일상/기린이 이야기]

많은 이들이 모성애는 여성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기린이를 낳기 전에는(‘임신하기 전’이 아님에 주의) 모성애라는 것이 본능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덧 기린이가 돌이 다 되어가는 지금 돌이켜 보면, 모성애는 아가와 엄마가 서로에게 적응해가며 조금씩 함께 쌓아가고 다져가는 유대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온몸을 찢는 듯 한 산고産苦를 견디고 무사히 아이를 낳았다는 기쁨도 잠시, 지금까지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엄마로서의 역할, 책임, 무한정으로 베풀어야만 할 것 같은 사랑, 숭고한 희생 등은 온데간데없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바로 당혹감이었다. 아기는 어떻게 안아줘야 하나? 젖은 어떻게 물려야 하나? 기저귀는 또 어떻게 갈아주지? 저렇게 속싸개로 꽁꽁 싸매놔도 괜찮을까?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배냇저고리가 저렇게 크다니, 옷을 갈아입히다가 저 가느다란 팔이 꺾이기라도 하면 어쩌나? 맙소사, 어떻게 이 아기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내 뱃속 안에 웅크리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기린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기린이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먹이고 어떻게 씻겨야 할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모성애’라는 범우주적인 명제 하에 그렇게 되어야만 함을 암묵적으로 강요했다. 어둑하지만 한없이 아늑한 엄마 뱃속에서, 출렁거리는 양수에 몸을 맡기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다가 갑작스레 바깥세상에 나와 당황스럽기 짝이 없을 아기와, 열달 전에는 점보다도 작았던 존재가 어느새 제 몸을 키워 이렇게 내 팔에 안겨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그저 멍하기만 한 엄마가 그 충격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조금의 시간적 여유도 없이 말이다.

기쁘지? 얼마나 좋으니? 아기가 참 예쁘지? 미안하게도 나는 그런 질문들에 순수하게 내 감정을 표시할 수 없었다. 기쁨보다는 당혹감이, 사랑보다는 ‘엄마’라는 이름의 무거운 책임감이 나를 짓눌렀고, 내 서툰 손길에 아이가 불편해하고 젖을 토하고 잠을 못 이뤄 울어댈 때마다 죄책감은 날로 더해만 갔다. 나 때문이구나. 나 때문이구나. 내가 네 엄마라서 이렇게 너를 힘들게 하는구나. 하필이면 나 같은 사람이 엄마라서 이 귀한 생명을 이렇게 울고 지치게 만드는구나….

2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의 어느 날, 기린이는 어김없이 잠투정을 시작했고 울음소리는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화가 났다. 너도 힘들지만, 나도 힘들어. 잠이 오면 자면 되는데 왜 이렇게 자질 않니. 왜 내 마음을 몰라주니! 급기야 버럭 소리를 지르며 냅다 울고 있는 기린이를 smk군에게 던지듯이 안겨주고는 안방으로 뛰어 들어와 큰소리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순간 기린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한참 울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아빠 품에 안긴 기린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때의 기린이의 표정은, 정말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놀란 듯도 한, 그리고 어딘가 미안한 기색이 보이는 듯도 한. 이제 2개월 된 아기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해보질 못했건만, 그때의 기린이는 분명 내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순간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조심스레 다가가 기린이를 안으니 좀 전까지만 해도 온 집안이 떠나가라 울어대던 녀석이 이젠 내 품에 폭 안겨서는 눈을 감고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을 청하려 하는 게 아닌가.

아마도 그때가 아닌가 싶다. 내가 정말로 이 아이의 엄마구나, 싶었던 것은. 그저 신기하고 조금은 얼떨떨한 기분이 아닌, 그야말로 충만함이 가득한 기쁨을 맛보았던 것은. 한때는 탯줄로 이어진 세상 둘도 아닌 하나인 존재였던 우리가 독립된 개체로 만나 서로에게 적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걸,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에 스스로를 괴롭혀왔던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그때에야 비로소 깨달은 거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한번도 아기를 접해보지 않은 내가 단지 ‘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이미 습득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열달 동안 뱃속에서 키워내는 그 이상으로, 세상 밖에 나온 아기와 엄마는 서로에게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기와 엄마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인지하지도, 용인하지도 않는다. 엄마잖니, 왜 그걸 몰라? 왜 그걸 못해? 왜 아기를 울리니? 그리고 쏟아지는 충고를 가장한 질책, 질책들. 하지만 아기와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둘만의 시간이다. 

11개월 반에 접어드는 요즈음, 자고 있는 기린이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나고 잘 자고 있는 아이의 볼에 괜히 뽀뽀 세례를 퍼붓곤 한다. 이 작은 아이가 불과 1년 전에는 내 뱃속에서 꼼지락대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직 신기한 마음이 남아있지만, 이제는 정말로 엄마가 된 기쁨을 조금은 제대로 실감하는 것 같다. 이 감정을 굳이 모성애라는 거창한 낱말로 정의내리고 싶지는 않다. 이 세상에 내가 있고, 네가 있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너의 엄마이고, 너는 나의 딸. 단지 그게 전부일 뿐. 본능도 의무도 책임도 아닌, 그저 살아 숨쉬는 우리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뿐.





2010/02/05 23:35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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