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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무대 위의 향연 - 해당되는 글 17건
2008/07/19   쓰릴 미(2008. 6. 28 15:00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  (3)
2008/02/19   Bjork Volta Tour-잠시동안의 이세계 
2007/10/28   맨 오브 라만차(2007)-2007. 10. 20. 19시 울산 현대예술관 
2007/05/14   [바람의 나라-무휼] 2007년 5월 12일 1회/2회  (4)
2007/03/23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Romeo & Juliette)-2007. 3. 17/21, 부산 시민회관  (4)
2006/10/17   뮤지컬 [이]-2006. 10. 15. 18:00 부산 시민회관  (6)
2006/08/06   [바람의 나라-무휼](2006)-(1)  (3)
2006/07/26   뮤지컬 [바람의 나라-무휼] 관련 논란  (6)
2006/07/22   [바람의 나라-무휼]-15일의 단상  (2)
2006/07/20   <포스팅 예고>-[바람의 나라-무휼]  (3)
쓰릴 미(2008. 6. 28 15:00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 [창고/무대 위의 향연]

주연: 김우형(네이슨 레오폴드/나)
         김무열(리처드 롭/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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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한창 결혼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없던 시기에 [쓰릴 미] 부산공연을 놓치고 며칠 동안을 심란해했더랬다(이게 다 결혼 때문이야!! 징징징;). 워낙 인기를 끌었으니 한번 정도는 재연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그로부터 1년. 다행히 Novus양의 도움으로 오픈 티켓을 무사히 구해서 다녀올 수 있었다.

되도록이면 공연 자체에 집중하고 싶어서 특별히 넘버를 구해 듣는다든가 관련 정보를 알아보지 않고 그냥 보았는데 그편이 역시 나았던 듯 싶다. 작년 부산 공연을 보았던 Novus양의 말로는 굉장히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고. 공연을 막상 처음 보는 내 눈에도 공연 전체가 설명을 해주려 한다는 느낌이었는데 확실히 작년 공연에 비해 서술을 많이 하려고 한 듯 했다.

리처드는 상당히 알기 쉬운 캐릭터이니만큼 배우가 방향만 잘 잡으면 관객들을 쉽사리 휘어잡을 수 있는 인물인 것 같다. 일단은 성격이 딱 초딩스럽고-_- 감정선도 꽤나 분명한 편이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 동생에 대한 질투,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신…. 너무 알기 쉬워서 얄팍하지만 그래서 어린애같은 순수한 면이 있다. 이를테면 소악마같은 매력이랄까. 김무열의 경우 이러한 리처드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 참으로 노련하고 여유로운 리처드를 보여주었다. 오히려 너무 잘 해서 조금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이 부분은 페어를 이루는 네이슨 역의 배우와 어떤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많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자, 그런데 이 조화란 것이…. OTL

네이슨을 연기한 김우형의 경우, 일단 목소리 자체는 좋았다. 노래를 부를 때 살짝 힘이 딸리는 느낌도 없진 않았지만 이건 공연을 거듭하면서 노력하면 어느 정도 커버될 수 있는 부분이라 본다. 일단 배우의 잠재력은 있는 것 같은데, 아직 ‘네이슨’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리처드에 비해 네이슨은 훨씬 복잡다단한 인물이다. 어쩌다가 하필이면 초딩-_- 리처드를 원하고 욕망하게 되어버린(대체 무슨 업보를 지었길래? ㅠ_ㅜ), 늘 리처드보다 한발 앞서 생각하고 판단하면서도 속내를 감추고 차근차근 리처드가 정말로 자신을 필요로 하게 되는 순간까지 몰아넣는 네이슨이라는 인물은 단지 대본에 쓰여져 있는 반전만으로 나타내기엔 좀 더 많이 꼬이고 꼬인 캐릭터다. 그런데 아직 김우형이 연기한 네이슨은 대본 그대로의 네이슨을 연기하기에 급급했다는 느낌이랄까. 최선을 다하려고는 하는데 아직까지 깊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네이슨과 리처드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네이슨의 목소리가 늘 묻혀버렸다. 극 초반에서는 리처드가 네이슨을 휘두르다가 점차점차 네이슨이 리처드를 압박하는 정도가 조금씩 단계적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 점진적인 단계가 전혀 느껴지지 않다가 반전 부분에서 그냥 대사로 나타나버린다. 그래서인지 네이슨이 발산할 수 있는, 또 그래야만 하는 애절하고 처절한 느낌이 전혀 나질 않았다. 나름 귀여운 매력을 발산하는 리처드만큼 더욱 더 깊고 위험한 아우라를 펼쳐야 할 네이슨이 다소 평면적으로 묘사된다는 게 상당히 아쉬웠다.

네이슨에 대한 아쉬움이 단지 배우에게서 비롯된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이건 연출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뭔 소린고 하니…키스신이 너무 많다. -_- 처음엔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 세어보다가 이후로 나오는 장면은 분명 올해 추가된 부분이리라 싶어 그냥 세는 걸 관뒀다(Novus양이 세어봤는데 다섯 번이라고 한다). 네이슨이 리처드를 덮치는 장면도 과하다는 느낌. 리처드가 담배도 곧잘 피우는데 그 상황에서 꼭 그렇게 실제로 담배에 불을 붙여야 하는가도 의문이다. 전반적으로 좀더 자극적인 부분을 강조하려고 한 듯 했다. 그러나 뭐든간에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 하다. 이를테면 웃통을 대놓고 훌렁 벗고 있는 것보다 단추 한 두개를 풀어헤친 그 사이로 언뜻언뜻 엿보이는 가슴팍이 더욱 매력적이고 야해 보이는 법이다(-_-;). 대놓고 키스신을 왕창 늘려봤자 전혀 임팩트가 없다는 것은 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특히 우형 네이슨의 경우 색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그 많은 키스신이 전혀 보람이 없었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고(오히려 네이슨의 팔을 쓰다듬는 무열 리처드의 손놀림이 더 야해보였다면 말 다했지). 네이슨을 연기하는 배우가 어떻게 배역을 이해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리처드에 대한 감정선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자극적인 장면도 상당부분 가감 내지는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적어도 첫날 첫 공연의 네이슨에게는 그 키스신들이 불필요한 장면들이었다. 물론 앞으로 계속 바뀌고 추가되면서 조금씩 나아지긴 하겠지만 배우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키스신은 좀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오히려 그 장면 때문에 배우들간의 호흡이 깨질 우려도 있으니까(특히 무열 리처드와 우형 네이슨처럼 아무리 봐도 한없이 건전하게만 보이는―아유, 나중에는 안쓰러울 정도였음. 아무런 화학작용이 느껴지질 않아서;― 페어의 경우는 더욱 더 그렇다).

이러니저러니 불평불만을 조금 늘어놓긴 했지만 [쓰릴 미]는 기본적으로 꽤 탄탄하고 좋은 공연이다. 특히 재연의 첫 공연이 저 정도였으니만큼 지금쯤은 관객들의 반응도 다 수렴했을 테고 배우들간의 호흡도 제법 잘 맞아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같은 배우 같은 연출이라도 절대 100% 완벽한 재현이 불가능한 것이 공연 예술의 매력이니만큼, 2008년의 [쓰릴 미]도 빨리 안정권에 접어든다면 작년 못지않은 즐거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내 눈으로 그 즐거움을 확인하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배우들의 매력과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공연이니만큼 재연에 재연을 거듭해서 더욱 새로운 또 다른 네이슨과 리처드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꼬리 1> 니체의 초인 부분을 작년에는 ‘슈퍼맨’이라고 했다는데(;;) 올해는 그냥 ‘초인’으로 옮긴 부분은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대체 ‘슈퍼맨’이라고 처음 생각해 낸 사람은 어디의 누구냐???
꼬리 2> 그 날 이후로 리처드가 담배피는 횟수가 조금 줄었는지 모르겠다. 그리 넓지 않은 공연장에서 그렇게 진짜 담배를 피워대니 이것 참 난감한 것이 도중에 뛰쳐나갈 수도 없고 속은 더욱 메슥거리고. OTL 여성관객이 99%인데 그중에 나처럼 임신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나; ㅠ_ㅜ  


2008. 7. 19



2008/07/19 20:15 | 관련글(트랙백) 1 | 댓글 3
Bjork Volta Tour-잠시동안의 이세계 [창고/무대 위의 향연]

드디어 보고 왔다. 우리나라에 과연 와줄까 반신반의하던 Bjork언니의 내한공연. 처음엔 들쑥날쑥하던 회사 스케줄 때문에, 두 번째로는 역시 왔다갔다하던 집안행사 일정 때문에, 막판에서는 갑자기 들이닥친 감기몸살 때문에 정말 우여곡절 끝에 다녀온 공연. 자금사정상 2층 S석에 몸을 파묻고 멀리서 바라봐야만 했지만 마치 아프리카 어느 부족 제사장인 듯한 Bjork언니의 포스를 느끼기에는 충분. 스탠딩석에 있는 사람들을 잠시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그날 내 몸상태로는 무사히 다녀온 것만으로도 기특한 수준이라.

19시 시작인데 19시가 되어서도 관객들이 계속 들어왔다. S석에도 외국인들이 상당수였는데 여기저기 후기들을 보니 스탠딩석에도 외국인들이 무척 많았던 듯. 15분이 지나도 사람들 분위기는 어수선해서 밤 10시 차 타긴 글렀구나, 하고 체념하고 있는 와중에 드디어 불이 꺼지고 공연시작. 키보드며 디제이들이 자리를 잡고 브라스밴드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무대 뒤쪽에 정렬하자 드디어 (여전히 범상치 않은 분홍빛 의상을 입고;) 언니님 등장. 첫 곡은 [Volta]의 Earth Intruders. 순간 눈물이 살짝 나려고 했다. We are the earth intruders~ 부분에서는 ‘그래요, 그저 언니 말씀이 다 옳아요’ 막 이런 기분; 첫곡이 끝나고 마구 심장이 쿵쾅대는데 이어서 Hunter, Aurora까지 분위기 마구마구 업되는 순간 흘러나온 All is full of Love의 전주. 맙소사, 이 곡이 나올 줄이야!! 명색이 [Volta] 투어래서 [Volta] 앨범 위주로 선곡을 할 줄 알았는데 언니 이렇게 나오시면 정말 감사하죠 흑흑. 그래, 여기선 울어줘야 해!! 관객들 반응도 거의 폭발적이다(아마 이 곡 나올 때 운 사람들 제법 있을 듯. 사실 Hunter를 부르는데 All is full of Love랑 Jóga를 안 불러주면 언니 미워, 이럴려고 그랬지. -_-) 처음 All is full of Love의 뮤비를 봤던 그때 기억이 마구마구 떠오르면서 그냥 엉엉 울었다(smk군은 아무말 없이 가방을 넘겨받아 휴지를 찾아줬다).

사실 이 이후부터는 거의 기억이 토막난 상태다. 몸 상태가 워낙 별로였던 것도 있지만, 그녀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기쁘고, 또 좋아서. 앨범만 들을 때에는 굉장히 가느다란 목소리로 소화해내는구나 했던 부분도 어찌나 파워풀하게 불러대는지. 아무리 자기 목소리라지만 어쩜 저렇게 쥐락펴락할 수 있을까. 맨발로 무대 위를 종횡무진하며, 음악에 맞춰 흐느적흐느적대다가 강한 비트가 나올 때 마구 내지르는 저 작은 주먹까지도 아름다우신 언니, 우리 마녀님.

공연 시작전 무대 위에 듬성듬성 놓여진 키보드며 각종 장치들을 보면서 좀 썰렁하네, 하며 궁시렁댔는데 공연 시작하는 순간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장비가 리액터블(Reactable)이라는 기기인데 터치스크린 같은 패널 위에 디제이가 손 혹은 물체같은 걸 얹어서 콘트롤하는 장비란다. 언니의 몽환적인 목소리만큼이나 현란한 영상으로 공연 내도록 신기함과 함께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또 하나 새삼 놀란 것은 CD로 들을 때보다 실제 라이브에서의 노래가 훨씬 더 힘있고 강렬했다는 것.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만큼; 한창 때만큼의 가창력일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살짝 했는데 우리의 무녀마녀 Bjork에게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오히려 CD보다도 더욱 자유자재로 음역의 극과 극을 오가는 것이 그야말로 손끝에서 발끝까지 전율이 좍좍 일 정도였다.

Innocence에서 흩뿌려지던 하얀 종이가루. Bachelorette을 부를 때 착착 감겨들던 Bjork의 목소리. Hyper-ballad를 부를 때 너도나도 손을 흔들며 열광하던 사람들. 뒷좌석 관객들에게 미안해서 쭈뼛거리다가 결국은 Declare Independence에서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2층 객석의 관객들. Bjork의 몽환적인 목소리에 이끌려 하염없이 그 안으로 빠져들어간, 그때 그 시간에 존재하던 또 다른 이세계. 과연 앞으로 다시 그녀의 목소리를 라이브로 들을 기회가 있을까? 어쩌면 그 시간 모두가 꿈이었던 건 아닐까. 아직도 ‘쌩큐’라고 인사하던 Bjork 언니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울리는 것만 같은데. 쌩큐라고 했었죠, You are wonderful라고 했었죠. 아니, 저야말로 ‘쌩큐’예요, Bjork. 쌩큐 베리 마치!!


1. Earth Intruders
2. Hunter
3. Aurora
4. All Is Full Of Love
5. Hope
6. Pleasure Is All Mine
7. Vertebrae by Vertebrae
8. Jóga
9. Desired Constellation
10. Army Of Me
11. Innocence
12. Bachelorette
13. Vökuró
14. wanderlust
15. Hyper-ballad
16. Pluto

(여기부터 앵콜)
17. The Anchor Song
18. Declare Independence

(Setlist 출처 : 비요크코리아)


꼬리> 브라스밴드 멤버 중 한명이 생일이라 같이 생일축하노래를 불러달라고 Bjork 언니께서 하명얘기해서 다 함께 해피 버스데이~를 부르는데 해피 버스데이 디어 (사람 이름) 이 부분에서 Bjork가 @*&^)@*&%라고 생일인 멤버 이름을 알려줬는데 아무도 그 이름을 따라 말할 수가 없었다(아이슬란드 이름이라;). 믿거나말거나 어떻게 따라 발음해보려고는 했지만 뭐-_-;;;;



Bjork, 비요크

2008/02/19 22:07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맨 오브 라만차(2007)-2007. 10. 20. 19시 울산 현대예술관 [창고/무대 위의 향연]

주연: 정성화(세르반테스/돈키호테)
       윤공주(알돈자)
       이훈진(산초)
       최민철(도지사/여관주인)
       민경언(닥터 까라스꼬-얼굴이 정말 작다!! 게다가 키도 커!! +_+)
       진용국(신부)
       김명희(가정부)
       정명은(안토니아)
       김호(이발사)
       오은미/장은숙/문종원/박송권/배준성/김사량/정재헌/이동재/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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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도에 [돈키호테-라만차의 사나이] 공연에 대한 이런저런 감상문을 찾아 읽으면서 ‘또 좋은 공연 하나를 놓쳤구나.’라는 생각에 속절없이 찬물만 계속 들이켰던 기억이 난다.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맨 오브 라만차]라는 제목으로 찾아온 이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울산 공연이 일주일만 빨랐어도 보지 못했을 거고, 일주일만 늦었어도 이제 주말마다 회사에 매인 몸이 되어 결국 블랙커피만 들입다 마시면서 울분을 토했을 게 뻔하니까.

2005년에 이은 재연, 그리고 서울에서의 한 달여간의 공연기간을 거친 덕분인지 공연 내내 전체적인 짜임새나 분위기가 매우 안정된 느낌이었다. 배우들끼리 대사/노래를 주고받는 리듬감이나 무대 전체적인 동선 역시 어느 하나 차고 기움이 없었고, 상당히 어려운 노래들이 많았는데도 듣기에 크게 부담이 없었다. 특히 노새끌이들의 힘찬 앙상블은 노래만 들으면 굉장히 강렬한 느낌인데도 막상 무대 위에서는 전혀 튀지 않고 잘 녹아드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돈키호테를 연기한 정성화의 목소리를 들은 첫 느낌은 바로 ‘성실하다’라는 것. 그 정도로 음색이 침착하고 부드러웠기에 돈키호테의 광기보다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꿈을 잃지 않으려하는 세르반테스의 올곧음이 더 잘 어울리는 듯도 싶었다. 군데군데 세르반테스/돈키호테의 음색이 살짝 섞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았지만 목소리 자체의 믿음직함이 참으로 인상적. 공연을 보고 난 후에야 미리 사두었던 [맨 오브 라만차] 2CD 중에서 조승우/김선영 캐스팅의 첫 번째 CD를 들었는데 (비록 공연을 직접 본 것이 아니므로 편견일 수도 있으나) 조승우의 목소리가 정성화의 목소리에 비해 더욱 극적이고 과장된 듯한 느낌이었다(특히 대사 자체의 표현력은 조승우가 한 수 위인듯). 아마 관객들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저마다의 매력을 지니고 있기에 서로 다른 캐스팅을 고루 관람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남는다.

돈키호테만큼 중요한 역인 알돈자의 경우 노래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데 놀랐고 그 어려운 노래들을 윤공주가 비교적 무난하게 소화해낸다는 데에 또 한번 놀랐다. 그럼에도 (가성으로 커버하는 부분도 있지만 때로 진성으로 팍 내지르는 부분 역시 있는데) 간간이 힘에 부친다는 느낌에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사를 칠 때의 목소리는 닳고 닳은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인지 거칠고 허스키한 음색인데 막상 노래는 굉장히 높은 음역까지 올라갔던 것. 어떨 땐 악을 쓴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라고나 할까. 어지간한 음역이 아니고서야 알돈자의 노래를 완벽히 소화해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닌 듯 싶었다. 다만 알돈자라는 인물이 굴곡많은 삶에 한껏 찌들어 지친 캐릭터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오히려 그 점을 역설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쉬움은 살짝 접어두기로 했다.

산초를 연기하는 이훈진이 무대 위에 등장했을 때 내심 속으로 ‘정말 산초구나!’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산초라는 캐릭터가 어느 정도의 전형성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익살맞으면서도 순박하고, 적당히 요령을 피울 줄은 알지만 그럼에도 충직한) 저렇게 외모부터 너무나도 산초 그 자체일 수가 있다니! 프로그램을 보고서야 산초도 더블캐스팅인 걸 알게 되었는데(울산 공연은 정성화/이훈진 콤비였다) 프로그램에 실린 사진만으로도 이미 내 마음은 이훈진 산초로 낙점(이러면 안 되는데-_-). 단지 공연에 몰입해서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도 산초에게 시선이 머무는 순간 절로 소리없는 웃음이 새나온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랄까. 정성화의 강직한 음색과도 상당히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특히 ‘좋으니까~’라며 몸을 모로 꼬는 장면은 그야말로 최고. 

주연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안토니아와 가정부, 신부, 그리고 닥터 까라스꼬의 성격을 체스판의 말에 빗대어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체스의 룰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무대 위에서 등장인물들의 3차원적인 움직임이 서로 교차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각각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무대 위에서 표현할 수 있는 시각적 효과와 함께 대사가 더욱 힘있게 와닿을 때의 그 기쁨이 어느 정도인지 새삼 느끼게 된 기회이기도 했다. 아마 이런 점이 실황CD가 아닌 공연장에서 배우들과 함께 하는 관객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라 할 것이다.

꿈은 아름답지만 때로는 지독히도 잔인한 법이다. 그러나 현실은 때로 꿈보다도 더 잔인하다. 처절한 현실은 몸과 마음을 찢어발기고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때로는 죽음을 갈구하게까지 만든다. 그럼에도 우리들이 발붙이고 숨을 쉬고 있는 것은 꿈이 아닌 현실. 꿈을 현실로 끌어내리는 것, 현실을 꿈으로 끌어올리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번민하는 것…. 과연 어느 것을 선택해야만 하는지,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고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돈키호테는 꿈을 꾸며 죽었지만 세르반테스는 막막한 현실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가, 그리고 알돈자가 다시 일어나 노래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그 덧없어보이는, 이룰 수 없는 꿈. 꼭 이루어서 현실로 만들지 않는다 해도 그저 그 꿈을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한…. 그래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는 세르반테스의 등이 그렇게나 힘겨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없이 가슴 벅차게 다가왔나 보다. 꿈과 이상을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면, 우리 모두는 유죄. 그러나 어쩌랴, 그 죄가 바로 내일을 다시 살게 하는 것을. 현실 속의 상처로 온통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 위에 꿈의 잔해가 흩뿌려질 때, 어쩌면 그 한 순간을 위해 이토록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 알돈자와 돈키호테, 세르반테스처럼.


2007. 10. 28.

꼬리1> CD에는 ‘슬픈 표정의 기사’라고 되어 있는데 공연에서는 ‘슬픈 수염의 기사’라고 들었다. ‘슬픈 수염’이 더 멋지고 좋은데.
꼬리2> 정성화씨와 윤공주씨의 원래 음색이 어떤지 무척 궁금해졌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두 배우의 다른 공연도 꼭 보고 싶고나. 




2007/10/28 22:25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바람의 나라-무휼] 2007년 5월 12일 1회/2회 [창고/무대 위의 향연]

원작·1차 각색: 김진
연출·2차 각색: 이지나
작·편곡: 이시우
작사: 정 영
음악감독: 구소영
안무: 안애순
주연: 무휼-고영빈
해명-홍경수
혜압-고미경
호동-김호영
이지-도정주
연-여정옥
괴유-김산호
세류-신영숙
가희-이채경
마로-김백현
배극-배성일
병아리-심정완
새타니(젊은 시절의 혜압)-김은혜
대소-박원묵
대소(젊은시절)-최정수
연비-박석용


5월 12일 15:00(1층 B열 101)/19:00(1층 B열 100)의 후기입니다.



2006년도에 뮤지컬 [바람의 나라-무휼]을 관람했던 이들이라면 이 작품을 두고 상반된 평가를 내렸을 법하다. 철저히 원작에 대한 경외로 가득 차 있던 이 공연에 대해 원작의 팬들은 무한한 찬사를 보내고 원작을 잘 모르던 이들마저 ‘카드명세서로 망무기굿을 벌인다.’라고 할 정도로 공연에 몰입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등장인물들 간의 복잡한 관계와 대립구조를 이미지만으로 풀어가는 진행에 힘들어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년의 공연은 당연히 재공연을 기대하게 할 정도의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무대 위에서 온전히 자기 노래 한번 부르지는 않았지만 무휼이 왕이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호동왕자가 죽는 마지막 부분에서 무휼이 어린 호동을 껴안고 있는 만화의 장면이 스크린에 비춰지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으며, 12분간의 전쟁씬이 끝나고 괴유가 거칠게 숨을 몰아쉴 때 다함께 두 주먹을 꼭 쥐었고, 저승에서 올라온 해명태자와 그의 연인 새타니가 서서히 멀어지며 노래를 부를 때 그들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렸더랬다. 저마다 기억에 남는 부분들은 조금씩 달랐으되 분명 작년의 공연은 한번 본 관객들이 계속하여 공연장을 찾게 만드는 알 수 없는 흡인력을 갖고 있었고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공연장으로 향하는 이유모를 이끌림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이러한 작품을 만났다는 데 대해서 기뻐하며 다시 공연장을 찾았다. 마치 무휼의 뒤를 따르겠노라 맹세했던 해명태자, 세류, 괴유, 마로, 그리고 고구려의 군사들처럼.

제작진의 고민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뮤지컬 [바람의 나라-무휼]이 아무리 원작만화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해도 만화적 이미지를 무대에서 재현하는 파격적이기까지 한 연출이 대다수의 일반관객들에게는 아직 많이 낯설었을 것이다. 언제까지고 원작의 팬들과 작년 공연의 팬들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법. 공연예술의 가장 큰 장점은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며 진화한다는 것이기에 2007년 [바람의 나라-무휼]이 어떤 변화를 보여주려 할 것인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보다 더 많은 일반관객들을 위해, 더욱 세밀하게, 더욱 친절하게. 그리하여 더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고 그들을 다시 공연장으로 끌어들이는 것. 그러나 그 변화는 과연 진화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제자리걸음일까. 그도 아니면 퇴화해버리는 걸까?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한다. 2007년 [바람의 나라-무휼]은 많은 것을 잃었다. 혹은, 버렸다. 비록 채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쪼개진 원석의 단면마냥 반짝거리던 것들은 지나친 세공으로 오히려 그 빛을 잃었고, 2007년도 공연을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해 추가한 듯한 새 노래들은 작품에 전혀 함께 녹아들지 못하고 오히려 장면과 장면 사이의 유기적 연결을 방해한다. 좀 더 화려한 볼거리를 위해 넣은 장면들 역시 충분하다 못해 과해서 그 부담감을 더한다. 새로 바뀐 가사들은 지나치게 설명조로 되버리는 바람에 작년의 시적·은유적 표현이 지니고 있던 깊은 맛은 사라져버린다. 게다가 뜬금없이 드라마에 사용되어 2006년도 뮤지컬 팬들을 당혹케 했던(나는 절망했다!) ‘무휼의 전쟁’ 테마는 더 이상 그 곡을 [바람의 나라-무휼]만의 것이 아닌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드라마를 계속 생각나게 하여 작년에 공연을 본 사람은 물론이고 이번에 공연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마저도 그 웅장한 장면을 순수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2007년도 공연은 무휼을 왕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끌어내리고 말았다.


무휼은 왕이다. 그리고 왕이어야 한다. 이것은 작품을 존재하게 하는 절대명제이며 이 명제가 의심받거나 흔들리게 되면 공연 자체가 힘을 잃어버린다. 그렇다면 무휼은, 왕은, 사람도 아닌가? 왜 인간으로서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면 안 되는가? 이 작품에 있어서만큼은 주인공 무휼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게 되면 주변인물, 즉 해명태자, 세류, 호동과의 차이점이 없어진다. 그들이 왕 앞에서 머리 숙이는 이유가 없어진다. 왜 혜압과 명림의 군사들이 그의 뒤를 따르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가야할 곳은 부도다.’라며 발길을 돌리는 무휼을 이해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물론 그에게도 인간적인 고뇌는 있다. 그러나 그 고뇌를 본인이 표현하지는 않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그는 철저히 왕으로 남아있어야 하고 그가 지닌 고민과 아픔은 그를 따르는 인물들을 통해 표현된다(해명: ‘그는 외로운 사람이다.’/세류: ‘나의 왕, 어깨를 펴세요.’).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가지 않았어도 되었던 부도로의 길, 왕으로서의 길을 가야 하는 데에서 오는 인간적인 고민과 갈등은 일곱 살 어린 무휼일 때 이미 끝냈던 것들이다(‘더는 약하기 때문에 잃고 살지 않겠다.’). 그는 자신이 왕임을 고민하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아무리 많은 목숨들의 무게를 지고 제 손을 피에 흠뻑 적시더라도 왕이기 때문에 견뎌야만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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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왕이십니다. 그리고 왕이셔야 합니다.


혜압이 말한다. ‘그가 옵니다. 고구려의 왕!’ 그 자신이 왕임을 의심하지 않기에 혜압은 그를 왕으로 인정하며 명림의 군사들을 그에게 내주고, 해명태자는 죽어 그의 머리 위에 실리며, 괴유는 천년에 천년을 거듭하여 살 수 있는 생명을 내맡기고, 호동은 그가 아버지이기 이전에 왕이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갈등한다. 그런 그가 왜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해야 하는가? 왜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반문해야 하는가? 의심을 했으면 다시 왕으로서의 자신으로 돌아왔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의문은 의문 그대로 남긴 채 그는 다시 부도로 향한다. 아니, 향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순간 관객들은 느낄 수밖에 없다. 무휼이, 그리고 [바람의 나라-무휼]이 방향을 잃었다는 것을. 전장에서 부르는 무휼의 노래는 왕인 그를 위해 싸웠던 병사들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어버리고 왜 괴유와 마로와 세류와 해명태자가 ‘이런 왕’을 위해 목숨을 걸고 운명을 걸었는지에 대해 관객들이 의심하게 한다. 1막에서부터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고 또 그래야만 하는 왕인 무휼을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으로 전락시켜 버린 것이다.     

극의 중심에서 절대 흔들리지 말아야 할 왕인 무휼이 흔들리자 공연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12일 1회 공연 때 명림숲에서부터 ‘죽여, 죽여, 죽여….’를 외치는 혜압의 대사부터 어딘가 힘이 빠져있다고 느낀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미묘하게 느려진 듯한 템포, 결코 넓다고는 할 수 없는 토월극장임에도 무대 위의 열기가 관객들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다. 어느 한 사람만이 그렇게 느슨해지고 힘이 없어진 게 아니다.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늘어지고 힘이 빠진다. 왕으로 걷고 움직여야 할 무휼의 움직임 역시 그냥 정해진 안무와 동선에 따라 움직인다는 느낌이다. 아마 내가 2006년도의 공연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 설명할 수 없는 맥빠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층 객석에서도 손발이 절로 떨릴 정도로 느낄 수 있었던 무휼의 그 압도적인 존재감을, 해명태자의 힘을, 혜압의 진중함을 이미 온몸으로 경험한 나로서는 2007년의 이 느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충분히 그 아우라를 드러낼 수 있는, 또 그런 실력을 갖추고 있는 배우들이 바뀐 연출 때문에 스스로 자기 존재감을 억누르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니!!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싶었는지 올해 공연에는 몇몇 장면들이 추가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무휼과 이지의 첫날밤, 그리고 배극의 죽음이다. 먼저 무휼과 이지의 경우, 지나치다. 만약 막공에서 그랬다면 팬서비스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건 너무 지나치다. 유혹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려 했다면 ‘조금만 더’라며 아쉬움을 남기는 순간 멈추었어야 했다. 2006년 공연에서 절제된 분위기 가운데 상징적인 안무로 첫날밤의 상황을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그냥 ‘대놓고’ 보여준다. 첫날밤의 무휼과 이지는 남자 대 여자가 자아내는 긴장감과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바가 다르기에 빚어지는 정치적 대립각을 연출해야 함에도 직접적인 베드신으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죄다 없애버리고 만다. 배극의 등장 역시 작년과 비교하여 대사와 연출이 상당히 바뀌었는데 이 역시 지나치게 수식이 많고 길다는 느낌이다. 만약 작년처럼 공연 전체의 긴장감이 상당히 높은 상태라면 배극의 죽음이 한 박자 쉬어가는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극의 흐름을 한층 더 늘어뜨리는 데 일조를 하고 있을 뿐이며 가사의 전달력도 확연히 떨어진다.

연의 노래 역시 완전히 바뀌었다. 2006년 연의 노래에 비해 올해는 훨씬 부드러워졌다. 결론은? 연의 의지 역시 그 부드러움에 묻혀 사라지고 말았다. 호동에 대한 연의 사랑은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해명태자의 혼을 받아들이면서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아들을 지키려 했던 연의 확고한 이미지는 한없이 약해져버렸다. 아마 작년의 연(유나영)의 노래가 상당히 강했다는 의견들을 의식한 데서 나온 변화인 듯 한데, 이는 연을 누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변화를 줄 수 있었을 부분임에도 굳이 노래를 바꾸면서까지 연의 캐릭터를 변화시켜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의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번에 새로 바뀐 호동 얘기도 좀 짚고 넘어가야겠다. 호동은 나어린 아이가 맞다. 그러나 신수인 봉황을 맞아들이고, 성장하고, 왕 무휼과 대립한다. 비록 온유하고 심약한 부분도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만(‘약한 자는 왕이 될 수 없다.’/칼자루를 바꿔 쥐는 장면) 어린 호동 역시 자신만의 의지와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본 12일의 호동은 호동으로서의 의지가 없었다. 배우의 연기가 나쁜 것도 아니요, 노래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무대 위에서 뛰어다니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아이였을 뿐, 호동은 아니었다. ‘푸른 하늘 저 부도로’라며 손을 뻗는 그 장면은 호동의 의지가 담긴 외침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호동을 그저 아이로만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챙, 하고 긴장감을 이어 끝까지 올라가주어야 하는 ‘저 부도로’에서 1회, 2회 두 번 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OTL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바로 2막의 전쟁씬이다. 작년에 비해 한층 다듬어진 안무와 일사불란한 군무는 여전히 좋았다. 무대 위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도약하는 그 힘찬 움직임들에 눈물이 핑 돌려고 할 무렵, 문제의 그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고 동시에 나는 듣고 말았다. 뒷좌석에서 속삭이던―“[하얀 거탑]?” 그렇다. 나는 더 이상 그 장면을 온전한 [바람의 나라-무휼]로 기억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이건 프로그램에 그 사실을 명시해놓은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음악과 딱딱 맞아 떨어지는 안무가 전해주던 치열한 전쟁의 비장함과 엄숙함, 있는 힘껏 잡아당긴 활시위와도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정작 작품과는 전혀 관계없는 드라마로 인해―아니, 솔직하게 말하련다. 뮤지컬을 위해, 그 장면을 위해 만든 음악을 전혀 개연성이 없는 드라마의 메인테마곡으로 이용해버린 작곡가로 인해, 뮤지컬 [바람의 나라-무휼]의 팬들의 기억 속에서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남았어야 할 장면이 갈기갈기 찢겨져버린다. 대체 이 장면이 어떤 장면이던가. 무휼의 전쟁이다. 왕의 전쟁이다. 해명의 현무와 세류의 주작이 전장을 가로지르고, 괴유의 백호와 대소의 현무가 맞부딪고, 왕 무휼이 칼을 휘두르고, 왕을 믿고 따랐던 이들이 장렬하게 숨을 거두는 장면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 장면을 보며 울 수 없다. 더 이상 그 장면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질 수가 없다. 그렇게나 열정적으로, 온몸으로 전쟁의 비장함을 표현하는 이들을 보며 감동에 젖을 수가 없다. 바로 그 중요한 장면에 사용된 음악을 뮤지컬과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작품의 삽입곡으로 사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고 만 작곡가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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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온몸으로 [바람의 나라-무휼]을 표현해주신 분들.


그래도 올해 공연을 보며 위안을 얻은 게 있다면 호흡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멋진 안무다. 작년과 비교하여 더욱 섬세하면서도 박력을 겸비한 앙상블이 전해주는 그 감동이란! 비록 (윗 단락에서 언급했다시피) 음악 때문에 그 감동에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왕의 전쟁을 온몸으로 나타내준 분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부디 막공까지 몸조심하시기를).

가희와 이지의 표현력도 한층 깊어졌다. 특히 긴 휘장을 다루는 이지의 팔의 움직임은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한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가희는 여전히 움직일 때마다 ‘우리 (완소) 가희 어떡해~.’라는 심정으로 불안해하며 보았지만 대사를 칠 때의 완급 조절이나 노래는 더 좋아진 느낌이었다. 청룡의 표현 역시 마음에 들었던 부분 중 하나다. 올해의 청룡은 긴 소맷자락을 휘날리고 있었는데 이쪽이 더욱 청룡의 움직임에 걸맞아보였다. 나머지 신수의 경우 무휼을 따르는 세류, 해명태자, 괴유가 자신의 신수를 드러내는 장면에서 뒤의 스크린을 활용함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더하는 부분도 상당히 멋졌다. 또한 호동이 칼을 쥐고 장난치다가 처음엔 칼자루를 쥔 상태에서 바닥에 내리꽂으려다 방향을 고쳐 칼자루로 바닥을 내리치는 장면이 있는데 작다면 작은 부분이지만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호동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12일 공연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산호 괴유의 발견이다. 사실 작년의 김산호가 연기한 무휼은 고영빈 무휼에 비해 카리스마가 많이 약했고, 이번 공연에서 내심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가희와 함께 등장하는 순간 흠칫 놀랐다. 괴유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사를 칠 때의 호흡과 발음이 아직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괴유를 소화해내기 위해 배우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산호 괴유는 물론, 김산호라는 배우가 연기할 미지의 캐릭터들에 대해서도 기대를 품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공연은 진화해야 한다. 또 그래야할 의무가 있다. 매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르기만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변화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작품을 작품답게 만든 중요한 것들을 스스로 놓아버린다면? 함축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깊은 의미를 품고 있던 대사, 실험적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큰 매력을 담고 관객들을 끌어당겼던 과감한 연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왕 무휼의 흔들리지 않는 굳은 의지와 압도적인 힘. 비록 채 다듬어지지 않아 거친 면도 있었지만 작년의 [바람의 나라-무휼]은 관객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대신 관객들을 확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했었다. 그래서 2006년 공연의 마지막 장면―‘가야할 곳은, 부도다.’―에서 부도로 향하는 배우들과 왕 무휼의 발걸음에는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무게가 실려 있었고, 공연을 본 관객들도 마음속에서 그들을 따라 부도로 향할 수 있었다. 내 기억 속에는 작년 7월 15일의, 온몸이 떨릴 정도로 와닿았던 대무신왕 무휼이 여전히 그 빛을 발하고 있다. 그랬다, 그는 왕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왕을 따르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12일의 그와 그들은 어떠했던가. 흔들린 왕의 의지와 그로 인해 설득력을 잃어버린 부도로의 꿈. 묻고 싶다. [바람의 나라-무휼]만이 가질 수 있는, 또 실제로 가졌던 장점들을 스스로 포기하고 존재감을 죽이고 애써 관객들에게 과한 친절을 베풀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2007년의 그들은 과연 어디로 향하려 하고 있는 것인가. 왕을 만나기 위해, 다시 그를 따라 부도로 가기 위해 달려갔건만 정작 그러지 못한 나의 마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대무신왕 무휼.
그가 가야할 곳은, 부도다.
 



꼬리1>프로그램에 실린 바람의 나라 인물관계도에서 세류의 그림은 세류가 아니라 어린 호동이다(극장 로비에 세워진 대형관계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어이없는 실수라니. -_-
꼬리2>고백한다. 12일 밤 2회 공연 후 사인회할 때 고영빈 씨를 향해 “무휼 님, 왕으로 남아주세요!!”라고 외친 사람이 바로 나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외쳤는지, 나의 외침을 들은 이들은 과연 알까. 부산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계속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왕으로 남아주세요.
꼬리3>사실 김호영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아무리 힘이 빠졌다고는 하나 무대 위에 있는 이들은 당연히 무휼이고 해명태자이고 괴유이고 마로이고 세류이며 혜압임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비해 아직 김호영의 호동은 호동을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좀더 배역에 대한 해석이 깊어진다면 김호영의 호동은 조정석 호동과는 또 다른 매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07. 5. 14.



고영빈, 바람의 나라-무휼

2007/05/14 00:55 | 관련글(트랙백) 2 | 댓글 4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Romeo & Juliette)-2007. 3. 17/21, 부산 시민회관 [창고/무대 위의 향연]

음악, 제작: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rard Presgurvic)
안무 &연출: 레다(Redha)
음악 편곡: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rard Presgurvic), 카롤랭 프티(Carolin Petit)
무대 세트: 도미니크 르부르주(Dominique Lebourges)
의상: Frdric Delliaux (프레드릭 델리오), Laurent Djardin (로랑 데자르뎅)
조명: Tom Irthum (톰 이르튐)
음향: Philippe Parmentier (필립 파르망티에)

로미오: 쥘르 그리종(Jules Grison, 17일)/다미앙 사르그(Damien Sargue, 21일)
줄리엣: 조이 에스텔(Joy Esther)
벤볼리오: 씨릴 니콜라이(Cyril Niccolai)
머큐시오: 존 아이젠(John Eyzen)
티발트: 윌리엄 생 발(William Saint-Val)
캐퓰렛 경: 아리에 이따(Arie Itah)
레이디 캐퓰렛: 스테파니 로드리그(Stephanie Rodrigue)
레이디 몬테규: 브리짓 방디띠(Brigitte Venditti)
영주: 스테판 메트로(Stephane Metro)
유모: 이다 고르동(Ida Gordon)
신부: 조엘 오'깡가(Joel O'Cangha)
죽음: 크리스틴 아시드(Christine Hass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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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유모님


몇 년 전 PLUTO님 집에서 함께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DVD를 보면서도, 국내에서 이 뮤지컬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저 하이라이트 CD만 듣고 또 듣고, 국내 정식발매된 DVD만 보고 또 보다가 이 공연이 우리나라에 온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얼마나 기뻐하고 또 슬퍼했는지 모른다(차비만 해도;). 예상치 못한 회사 스케줄로 결국 이 공연을 영영 놓치는 것인가 하고 절망할 무렵, 부산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는 소식에 또 얼마나 가슴 설레어하면서도 부산의 열악한 무대들을 생각하며 또 염려했었는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역시 처음 접한 버전이 중요하다는 것. 캐퓰릿 가와 몬테규 가의 대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DVD의 직선적인 세트 대신 2007년 버전에선 무대를 사선으로 나누는 거대한 아치를 중심으로 무대 위 장치들이 빙글빙글 춤을 춘다(덩달아 장치들을 직접 밀어야 하는 댄서들도 빙글빙글;). 무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닌 이상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세트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만도 사실 벅차다(2번의 공연 모두 1층 제일 앞좌석에서 본 나는 두 번 다 무대를 바라보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노래하는 배우만 따라가기에도 바빴다). 무대 장치가 드러내는 대립이 약해지면서 캐퓰릿과 몬테규 두 가문의 레이디간의 대결구도도 훨씬 약해지고 대신 캐퓰릿 경의 비중이 높아진다. 만약 DVD를 보지 않고 이번 공연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처음 접했다면 모르되 DVD에서 두 레이디 간의 짱짱한 대결에 120% 감동했던 나로서는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이었다.

또 하나, DVD와 2007년 공연의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죽음의 해석이다. 빨간그림자 님도 말씀하셨듯 DVD에서의 죽음의 등장은 참으로 멋지고 강하게 인상에 남는다. 실제 공연장에서의 관객들은 죽음이 지금 어떤 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는지 전혀 모를 테지만 DVD에서는 클로즈업이 가능하니까. 그러나 2007년 공연에서는(이 역시 내가 제일 앞줄에 앉아 있었기에 알 수 있었지만) 죽음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2001년의 죽음이 마치 여신과도 같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내려다보며 한치 앞 운명조차 알아채지 못 하는 캐릭터들을 향해 간간이 비웃음마저 띄우는 차가운 이미지의 신격화된 죽음이라면 이번의 죽음은 한층 표정이 풍부해지고 연민과 안쓰러움이 더해진 보다 인격화된 죽음이다. 즉 DVD 버전의 죽음은 무대 위에는 존재하되 인물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며 모든 인물들의 운명을 자신의 소맷자락 안에 가두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데 반해, 2007년 버전의 죽음은 인물들과의 거리가 훨씬 가까워지며 때로는 그들의 감정을 함께 나누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를테면 2막의 Comment Lui Dire(어떻게 말해야 해)에서 DVD에서는 죽음과 벤볼리오가 따로 따로 연기를 하지만 2007년 버전에서는 죽음과 벤볼리오가 일체화된 연기를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죽음의 의상도 확 바뀌었는데 DVD의 죽음이 마치 여왕님과도 같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우아함을 자랑했다면 이번의 죽음은 정말이지; 만약 공연을 중간부터 보는 사람에게 ‘지금 무대에서 춤추고 있는 저 사람이 누구게?’라고 물었을 때 ‘만투아의 노숙자?’라고 답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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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던 죽음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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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졸지에 이 지경으로;;


전반적으로 DVD가 한 편의 장대한 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면 2007년 공연은 각각의 넘버가 따로 떨어져도 어색하지 않은 버라이어티 쇼와도 같다. 특히 캐퓰릿 가의 무도회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마저 흰 의상을 입음으로써 두 사람의 만남보다 무도회 전체의 화려한 퍼포먼스에 더 포인트를 주고 있다(분위기가 딱 1급 호텔 쇼다). 당연히 그 한 장면 장면이 주는 시청각적 임팩트는 크지만 문제는 그 모두가 한데 모였을 때 조화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DVD의 팬이었던 관객들이 2007년 공연을 보면서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면 아마 이게 원인이 아닐까 싶다. 무대며 부분 부분의 연출은 더욱 세밀해졌지만 역으로 극 전체의 응집력은 떨어진다는 것. 리뉴얼된 연출이 노리는 부분이 이것이라면 취향의 문제겠지만 역시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는 대체로 만족스러운 편. 특히 댄서들이 대단한 게, 이 사람들은 그냥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아크로바틱 수준인데도 두 시간 반이 족히 넘는 공연 내내 파워풀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어느 정도냐 하면 La Haine(증오)에서 앙숙인 두 가문의 대결을 표현하기 위해 캐퓰릿 가와 몬테규 가의 댄서들이 무대 위를 종횡무진하는데 절반은 스텝을 밟고 절반은 그냥 날아다닌다; 그런데도 서로간의 호흡이 어쩜 그렇게 절묘하게 어우러지는지 감탄에 또 감탄. 댄서들 중 대부분이 무릎에 보호대를 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하긴 그렇게나 과격한 동작들이 이어지는 데 몸이 남아날 리가 있나. 맨 앞줄에서 어지럽게 왔다갔다하는 무대 장치들 때문에 정신 사나웠지만 그래도 덕분에 댄서들의 멋진 동작들(=멋진 몸;)을 바로 앞에서 봤으니 정말 눈호강 한번 거하게 한 셈이다.

댄서들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춤 실력도 수준급인데 그 정도의 안무를 소화해내면서도 노래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 참 놀라웠다. 특히 DVD로 볼 때보다 실제 무대 위에서 보니 배우들의 액션이 굉장히 컸는데, 특히 Les Roi Du Monde(세상의 모든 왕들)에서 머큐시오와 벤볼리오, 로미오의 안무가 같이 무대 위에 있는 댄서들의 안무만큼 복잡한 데도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없이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17일 3시 공연에서는 언더인 쥘르 그리종의 로미오 캐스팅으로 보았는데 아무래도 몇 해 동안 계속 로미오를 해온 다미앙의 목소리가 훨씬 두텁고 안정적인 느낌이라면 쥘르 로미오의 목소리는 좀더 얇은 느낌이어서 보다 더 신선하게 다가왔고 연기도 노래도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DVD를 통해 다미앙 로미오에 익숙해져 있지 않았다면 쥘르 로미오에 대한 느낌도, 국내 관객들의 쥘르에 대한 반응도 사뭇 달랐을 터다. 21일 공연에서 티볼트의 목소리가 좀 힘겹게 들려서 마음에 걸렸지만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며 노래에 한해서는 무척이나 흡족했다. 단 하나, 줄리엣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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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것도 좋지만 노래도 좀 어떻게 해줘 줄리엣;


이건 아주 큰 문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 노래를 못 한다!!(콰광) 이 이상 가는 문제가 또 어디 있나? 어떻게 고음부가 로미오보다도 더 안 나올 수가 있단 말인가! OTL 조이 에스텔의 음역 자체가 굉장히 좁은 탓인지, 중저음부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팍 하면서 시원스레 올라가야 할 부분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탁 막혀버린다. 물론 DVD의 세실리아 카라도 노래를 부를 때 가성을 많이 사용하긴 했지만 솔로 부분에서도 중창/합창 부분에서도 전혀 목소리가 묻히지 않았다. 그런데 조이 에스텔의 경우 로미오와의 이중창에서 고음부분에서는 줄리엣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도 애써 고음을 소화해내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 한계를 알고 목소리를 죽인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게다가 21일 공연에서 Aimer(사랑이라는 건)의 듀엣 부분에서는 무슨 이유에선지 웃느라고 자기 파트를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다. 이렇게 당황스러울 데가!!! 만약 조이 에스텔이 계속 줄리엣을 맡게 된다면 줄리엣의 파트를 대폭 수정을 하든가 아님 캐스팅을 아예 바꾸는 극단의 선택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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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볼리오와 머큐시오. 간만에 미중년 아닌 미청년들 보며 소녀심이 작렬했다;

공연보기 전부터 절대 만만치 않은 티켓 가격과 부산의 얇은 관객층 때문에 분위기가 많이 썰렁하지는 않을지 내심 걱정을 했었고 실제로 17일 공연에서는 여기저기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무대 위에서 열연을 펼치는 배우들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21일 마지막 공연에는 수도권의 [롬&줄] 팬들도 대거 내려오고 객석도 거진 메워지는 등 17일과는 비교도 안 되는 분위기로 앵콜곡까지 무사히 마무리했다. 비록 배우들은 군데군데 빈 객석을 어떻게 생각했을지언정 오랫동안 공연장에서 직접 그들의 노래를 듣기를 바라마지 않았던 나로서는 여러모로 귀중한 경험이었다. 비록 DVD와 다른 해석, 다른 연출에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해도, 수준급의 노래와 춤을 보고 들은 것만큼은 틀림없으니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로미오와 줄리엣]을 기다리며, 이렇게 2007년 그들의 모습을 마음속에 담으련다.

2007.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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휀서비스 한번 화끈하시고-



꼬리1>프랑스 팀의 내한공연인 이상 티켓 값이 상당 수준인 건 각오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팬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주었음 좋겠다. 내 허리가 휘어지다 못해 꺾이지 않은 게 다행스러울 정도다. -_-;
꼬리2>21일은 막공이어서 그랬는데 소소한 이벤트가 많았다. 특히 난데없이 등장한 그 해골이란(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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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Romeo & Juliette) 2007-빨간그림자 님




2007/03/23 23:52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4
뮤지컬 [이]-2006. 10. 15. 18:00 부산 시민회관 [창고/무대 위의 향연]
원작/연출: 김태웅
음악감독: 박칼린
주연: 김법래(연산)
공길(최성원)
장생(조유신)
녹수(백민정)

*주의: 그다지 호의적인 감상은 아닙니다.


뮤지컬 [이]. 영화 [왕의 남자]만을 접한 분이라면 이 작품이 또 다른 풍성한 즐거움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연극 [이]를 접한 분들이라면 그 느낌이 상당히 여러 갈래로 갈릴 것만 같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두 시간을 훌쩍 넘기는 공연 내내 ‘이 공연을 왜 굳이 뮤지컬이라고 한정지었을까?’라는 의문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가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굳이 ‘뮤지컬’이라는 장르 명칭을 붙이지 않은 것은 (무대예술로서) 내가 관람한 10월 15일의 [이]는 그 수준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우인들의 화려한 한판 놀음은 그야말로 그 시대의 전문 광대들이 바로 저러했겠지 싶을 정도로 기교가 넘치고 활기찼다. 물론 작대기를 주고받다 떨어뜨린다든가 하는 등의 자잘한 실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실수들을 무마하고도 남을 정도로 우인을 맡은 배우들의 아크로바틱 연기는 실로 놀라웠다(15시 낮공연을 마치자마자 바로 18시 저녁공연을 강행한 상황에서의 막공 연기가 그 정도면 정말 상당하지 않은가. 세상에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아닌가; 대체 왜 그렇게 시간표를 짰담?). 주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나쁘지 않았고.

그런데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 이 찜찜함은 대체 뭐란 말인가. 김법래의 연산은 기대한 그대로 광폭한 연산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연산 사이를 자유로이 왕래했고 백민정의 녹수 또한 한없이 교태가 넘치다가도 바락바락 앙칼진 소리로 보는 이들의 정신을 확 들게 만들었다(다만 고음부분에서 다소 흔들린 점은 아쉽다). 조유신의 장생은 기대 이상으로 광대놀음이나 장님놀이에서 한층 빛을 발했고 초반에는 조금 불안한 감이 없지 않던 최성원의 공길 역시 2막의 장님놀이에서 그동안 모아둔 에너지를 쏟아 부은 듯한 느낌. 게다가 막강 실력의 우인들이 공연의 시작과 마무리를 꽉 잡아주지 않던가. 이만하면 상당히 좋은 작품이라 할 텐데, 왜 이 모든 요소들이 각각의 장점만 반짝일 뿐 한데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하는 것일까.

굳이 그 이유를 꼽아보자면, 뮤지컬 [이]는 연극 [이]에서 완전히 독립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종속되지도 않은 상태였다는 데 있다. 사전에 연극이나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뮤지컬 [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서로 꿰맞출 수 있는 실마리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우인들의 놀이판을 제외한 극의 주요부분은 연극의 그 부분을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마저 연극을 답습하고 있다. 뮤지컬만이 전달할 수 있는 최대의 강점인 노래는 뮤지컬 [이]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연극에서 요구하는 연기와 뮤지컬에서 요구하는 연기는 그 방향이나 방법에서 차이가 상당할 터인데, 뮤지컬 [이]의 배우들은 그 사이에서 마치 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마저 준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연기를 잘 한다’라고 느끼고 있는데도 그 미묘한 혼란스러움이 전혀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체 이유가 뭐길래?

1막을 보고 난 후 아연한 마음에 다시 프로그램을 펼쳐보니 아니나다를까 연출이 원작의 김태웅 씨다. 아, 그래서 그랬던가. 연극의 장점을 그대로 뮤지컬로 갖고 와서 재현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장점을 일정 부분 접으면서까지, (그것도 연극의 대사를 대부분 그대로 갖고 오면서까지) 연극이 주었던 감흥을 전달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회한을 담는 연산과 공길의 앙상블은 뭔가 조화를 되는가 싶다가 끝나버린다든가, 두 시간을 훌쩍 넘기는 내내 ‘이거다’하고 귀에 들어오는 노래가 한 곡도 없었다는 것은 좀 심각하지 않은가(물론, 내 귀에만 그랬기를 바라지만;). 즉, 난 뮤지컬 [이]를 기대하고 갔는데 연극 [이]의 리바이벌을 보고 왔다는 얘기다. 이번 뮤지컬의 연출의도가 바로 연극의 충실한 재현에 있었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쟁쟁한 주연배우들과 실력있는 단원들이 공연하는 작품이라면 누구나 연극과는 또 다른 차별화, 뮤지컬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그 점은 좀 고려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뮤지컬의 도입, 특히 마무리를 책임진 이들이 바로 우인들이었다는 것이다. 뮤지컬이기에 가능한 배우들의 현란한 몸놀림과 힘찬 합창. ‘웃는 자가 바로 왕’이라 노래하던 그들 덕분에 나를 비롯한 관객들은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왕이 되어 웃으며 무대를 바라볼 수가 있었다. 어쩌면 뮤지컬 [이]가 관객들에게 선사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을까. 공길이 연산에게 웃음을 주었듯이, 관객들 또한 우인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마음껏 웃으며 박수를 치게 만들기 위한 흥겨운 한판 놀이. 내가 보고 온 뮤지컬 [이]의 진정한 주인공들은 실은 우인들이었다.

한껏 부푼 기대감을 안겨주었던 [이]의 부산 초연은 비록 이틀로 끝이 났지만, 부디 이번 공연에서 나타난 아쉬운 점들을 충분히 보완하여 이어질 울산, 그리고 서울 공연에서는 뮤지컬만의 특성을 십분 살린 보다 완성도 높은 뮤지컬 [이]를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주연배우들의 절절한 노래와 이를 뒷받침하는 연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우인들까지. 원작의 명성에 묻히지 않고 늘 새로이 거듭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꼬리1> 그래도 열악한 환경에서 이만한 공연을 보여주었다는 데 대해서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참으로 감사한다. 사실 시민회관이 음향이나 기타 등등에서 좀 많이 @(&_#%하지 않은가. 더욱 기막힌 건 부산에서 올라가는 굵직한 공연의 절반이 시민회관에서 올라간다는 것이고. -_-
꼬리2> 나열 맨 앞줄에서 공연을 보았는데 우인을 연기하던 이채경 씨(가희)/김은혜(새타니) 씨가 어찌나 눈에 쏙쏙 들어오던지;
꼬리3> 그외 가장 강력한 희망사항, 제발 프로그램 새로 만들어주세요. 날림인 게 너무 티나잖아(콜록). -_-+++


다른 분들의 감상: 뮤지컬 이-funnybunny 님

2006. 10. 17.


2006/10/17 20:21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6
[바람의 나라-무휼](2006)-(1) [창고/무대 위의 향연]
감상베이스: 2006. 7. 15. 19:30, 7. 16. 15:00
2006. 7. 29. 20:00 국회방송 <어울림>
대본 제공: 별님사랑 토혜 님

*버닝으로 타버린 속을 달래기 위한 자기 위로용 포스팅으로 객관성 제로, 극적 연출 및 음악 관련 지식 제로, 오로지 있는 것이라고는 팬심 뿐이니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쿨럭). 역사 관련 부분은 『삼국사기』를 참조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현재 제 수중에 『삼국사기』가 없습니다(아니 분명 집에 있을 텐데 왜 책장에 없는건지;). OTL 흐릿한 기억에 의존하여 쓰고 있으므로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 월, 화요일 중에 다시 수정될 가능성이 99.9%입니다. -_-;; 1주일에 하나씩은 포스팅할 예정이나 개인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대 뒤에 걸린 스크린, 별다른 세트가 없는 텅빈 무대. 무대는 3단 리프트 구조로 각각의 인물관계를 구성하는 보조적인 역할이며, 이후로도 특별히 설치되는 세트도 없다. 잠시 후 대무신왕 무휼에 관한 짤막한 설명이 스크린에 비춰지고, 무장을 한 무휼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떠오른다(여기서부터 사람 잡기 시작한다). 낮게 깔리는 바람소리. 이윽고 조명은 무대 맨뒤 상단 중앙에 홀로 선 무휼을 비추고(무휼은 주로 중앙에 위치한다), 그는 혼자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때로는 유하게, 때로는 격하게. 시작부터 칼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무왕(武王)이란 시호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듯 하다.

공연 내내 무휼은 이렇다할 대사나 노래가 없지만 일단은 극의 중심인 캐릭터이므로 무휼의 동작/춤은 관객들의 시선을 한번에 잡아 끌어야 하는 흡입력과 표현력이 요구된다. 감정처리나 표정으로 전달할 수 있는 관객의 범위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 어느 때보다도 배우가 지니고 있는, 그리고 표현해내는 존재감이 필요하다. 신예인 김산호는 이 점에서 분명 약할 수밖에 없다. 그의 연기가 돋보이는 부분은 다른 이와 연기할 때, 특히 연이나 이지와 함께 있는 장면이며, 그 장면에서 드러나는 이미지가 극 전체로 증폭되어 김산호의 무휼을 받아들이게 된다. 단시간에 극복하기 힘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런 식의 해석을 택했는지, 아니면 고영빈의 무휼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함이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16일 이후 김산호의 연기가 계속 좋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해명 역을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김산호의 연기가 돋보일 수도, 아니면 묻힐 수도 있는 위험성이 다분하다.

이에 반해 고영빈의 무휼은(내가 보았던 15일을 기준으로) 냉혈한 왕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가 휘두르는 칼은 날카로우며 단호했고, 독무에서의 움직임은 그간 묻어두고 드러내지 않았던 감정을 손끝 발끝에 실어 표현했다. 중후한 왕의 이미지라기 보다는 발톱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는 젊은 왕. 빨간그림자 님도 말씀하셨듯 김산호의 무휼은 ‘왕’이라기 보다는 그냥 ‘무휼’이 어울리지만 고영빈의 무휼은 ‘왕’이었다. 대무신왕 무휼은 분명 연민과 한을 품고 있으며 그 역시 무휼이라는 인물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무휼을 ‘대무신왕’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결국 ‘왕’이기 때문에 겪어야만 하는 절대적인 고독과 그에 흔들리지 않는 의지다. 결국 무휼의 연기에 따라(처음 본 캐스팅이 누구와의 조합이었느냐에 따라) 극을 이해하는 관객들의 기본적인 태도가 확확 바뀔 수밖에 없다.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무휼(무휼의 테마가 깔린다). 왕이 되었지만 왕인 그를 아직 인정하지 않는 해명태자의 군사들을 얻기 위하여 명림숲으로 향한다. 일찍이 해명을 따르며 그의 뜻을 따라 북방으로 가고자 했던 이들은 해명이 자결한 후 반역으로 몰려 몰살당하고, 그 원혼들은 명림숲에 남아 왕인 무휼을 부인한다.

명림숲의 귀신들
그가, 그가, 그가, 그가, 그가,
그가 온다, 그가 온다, 그가 온다, 그가 온다, 그가 온다.
그가 누구냐! / 유리의 아들!
그가 누구냐! / 주몽의 손자!
그가 누구냐! / 고구려의 왕, 고구려의 왕!
무휼, 무휼이 왔다!
왕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다기에!
유리의 아들이 무슨 일로 우리에게!
죽인 자를 또 죽이러, 목맨 자를 또 목매러, 찔린 자를 또 찌르러, 베인 자를 또 베러!
가라, 가라, 가라, 우리에겐 왕이 없다!
개처럼 죽은 우리, 혓바닥이 늘어지고
왕이 무슨 소용이냐!
반역으로 몰린 우리, 사체가 동강났네!
왕이, 왕이 대체 뭐냐, 가라, 가라, 가라!

무휼을 가리켜 처음엔 ‘왕’이 아닌 ‘그’, ‘유리의 아들’이라 칭한다. 그들에게 있어 무휼은 아직 왕이 아닌 선왕의 아들일 뿐이며, 선왕이 그랬듯이 또 다시 자신들을 핍박할 것이라 생각한다. 왕은 더 이상 그들에게 충성의 대상이 아닌 (죽은 후에도 여전히)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다.

해명이 죽은 후 그의 군사들을 거두고 명림의 귀신들을 다독거린 이는 바로 해명의 연인 혜압이다. 기러기 소리로 점을 치는 새타니인 그녀는 해명이 죽기 전날 부부의 연을 맺고 오랜 세월 동안 해명의 유지를 품고 왕을 기다린다. 극중에서 혜압은 해설자 역할도 도맡고 있는데 이 장면에서도 유리왕이 어떻게 해명을 죽음으로 몰아갔는지를 설명한다.

혜압
이들이 누군지 아느냐?
그 날 해명을 따르던 무리들이다.
왕께서 명하시길, 나라에 반역하는 해명을 따랐으니 너희도 반역이라,
아비에게 반역하는 태자를 따랐으니 너희도 반역이라
태자 해명은, 나라의 천도*에 따르지 않고 멋대로 옛 땅에 남아 힘을 모으고 나라를 어지럽히고 이웃 나라와 적대하니 제멋대로 새 나라를 건국하려 함이 아니더냐? 모두 죽여라.

*유리왕 22년(AD 3년)의 국내성 천도를 뜻한다. 해명은 천도 후에도 국내성에 오지 않고 옛 도읍인 졸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명림의 귀신들
무슨 죄를 지었기에 우리를 모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우리를 모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우리를 모두!
군사를 길러 외적을 물리치려 한 죄, 경계를 지키고 그들에 대항하려 한 죄, 충성이 그의 죄!
왕이 그를 의심하네, 아비가 아들을 의심하네, 기개를 방자로, 의지를 역모로, 충성을 반역으로!

혜압
의심으로 아들을 잡아먹는 귀신!
첫째로 죽은 것이 도절, 둘째로 죽은 것이 해명, 셋째로 죽은 것이 여진.
태자로만 세우면 목숨이 달아나는구나, 나라를 준다 하여 명줄을 끊는구나, 자식을 반역으로 모는구나!
네놈은 나라에 불충하고 반역을 도모하고 효성이라곤 눈곱만치도 없구나!
죽어 싸다, 죽어 마땅하다.
죽여, 죽여, 죽여!

(『삼국사기』를 보면) 유리왕 14년(BC 6년) 부여의 대소가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인질을 교환할 것을 요청하자 유리왕은 태자 도절을 인질로 보내려 한다. 그러나 도절은 이를 거부하였고, 이듬해 대소는 5만의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하였으나 대설을 만나 회군한다. 이후 도절에 대한 행적은 나와 있지 않고, 다만 그가 죽었다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도절태자의 죽음과 유리왕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역사서로는 알 수 없지만, 해명과 무휼 두 아들과 유리왕과의 관계를 생각해봤을 때 도절의 죽음 역시 유리왕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나 싶다. 이 장면에서 혜압(고미경)의 연기가 특히 두드러지는데, 극의 배경을 설명하면서도 자신의 입을 빌려 (무대 위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리왕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죽은 이들을 깨우지 말라며 절규하는 귀신들의 손에 들려 해명태자의 시신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 시신에게 입혀 놓은 장옷을 걷어내고 사라지는 귀신들, 바로 이어 혜압이 그의 죽음을 설명한다. 부왕의 명에 따라 동원의 마당에 창을 꽂고 자결한 해명태자. 그의 시신을 수습하고 굿을 지낸 혜압. 그들의 짧은, 그러나 평생을 이어 저승까지 이어질 길고 긴 인연. 극중 대부분 장면에서도 그렇지만, 이 장면의 대사도 역시 원작의 대사를 거의 그대로 따오고 있다. 이러니 원작의 팬들이 숨이 아니넘어가고 견딜 수 있겠냐 이 말이다(으흐흐흑).

혜압
그 날, 왕인 아비가 죽여버린 자식인지라
감히 손대었다가는 반역으로 몰릴까 두려워하여
손 못 대는 사람들을 젖히고―
내 손수 그의 몸에서 창을 꺾어내고 염하여 땅에 묻었다.
내가 그의 피를 닦고 그의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내가 그를 이승으로 불러올리는 굿을 했다.

누가 내 님을 죽였나
명림숲에 사는 새타니가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내 님, 내 님, 내 님….(새소리가 낮게 깔린다)

젊은 시절의 혜압(=새타니-김은혜)과 혜압이 함께 무대 위에 등장한다. 둘은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똑같이 해명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새타니가 앞에, 혜압이 뒤에 나란히 서 있다.

해명
명림동굴에 사는 새소리로 말하는 무녀야.
네 눈에는 내가 무엇으로 보이느냐?

혜압, 새타니
커다란 새, 저승 새, 저승의 날개, 이제 죽을 이, 죽어 돌아오는 자.
죽음을 헤치고 이승에 오르는 커다란 날개.



함께 한 사람인 듯 대사를 치는 이 장면은 새 소리로 점을 보는 새타니의 목소리인 양 표현되는데 새타니의 목소리가 표면적으로 확 드러나고 혜압의 목소리가 받쳐주는 식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연출 중 하나. 사실 해명과 연을 맺기 전의 새타니와 해명의 죽음 이후의 혜압은 거의 다른 사람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그 변화가 확연하기 때문에, 새타니 역으로 다른 배우를 캐스팅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객석에서는 배우 표정까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몰랐던 부분인데, 혜압의 표정과 새타니의 표정이 많이 다르다. 혜압은 굉장히 괴로운 듯, 아픈 듯한 표정인데 새타니는 마치 점을 치는 것처럼 멍하니 시선을 허공에 두다가 노래를 시작하면 해명을 바라본다. 이것 역시 연출인지 아니면 배우의 개인적인 해석인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보세요, 새타니 꼬시러 온 게 아니라 저 꼬시러 오신 거죠?? (야야야;;)


새타니에게 부부의 연을 맺기를 청하는 해명. ‘저승새의 신부’ 장면에서 김법래의 해명은 그야말로 사람잡는 저음으로 처음부터 새타니가 아닌 관객들을 후렸는데(;;) 홍경수의 해명은 새타니 한 사람을 향한 느낌이 더 짙게, 애잔하게 묻어난다.

혜압: 그대 이승 떠나는 허망한 걸음
혜압, 새타니: 저승 새의 날개가 펼쳐지네
새타니: 우리 사랑, 이 밤 지나면 꿈길 같은 죽음 뿐이네

혜압이 사라지고, 해명의 노래가 이어진다. 연인인 두 사람은 특별한 러브신이 나오지 않는데, 노래를 부를 때도 손을 잡는다거나 함께 눈을 마주치거나 하지 않고 늘 조금씩 엇갈리게 나온다. 그나마 러브신 비슷한 것이 해명의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가 그의 손을 잡은 채 몸을 낮추고, 다시 몸을 일으켜 와락 끌어안는 게 전부다. 문제의 첫날밤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진하게 표현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게 관객의 욕심이라면 욕심이지만 역시 귀신이라서 어쩔 수 없는 거였을까(훌쩍).

문제는 이렇게 끌어안았다가 계속 손을 잡고 노래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서로에게서 멀어지며 이중창을 부른다는 것인데 이게 또 가사랑 맞물리며 사람 마음을 에이게 한다.

새타니: 저승 새의 신부로 살아가리 저승 새의 눈물을 닦아 주리
해명: 우리 사랑의 꿈길을 잊지 못하리
저승에서 영원히 간직할 테니
해명과 새타니: 내 사랑 손에 쥘 수도 놓을 수도 없어라
맘 깊이 피어도 시들어도 슬퍼
해명: 나는 눈 감고 있으려오, 그대 눈앞에
세상이 눈물뿐이니

살아있는 이가 아닌 죽은 이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리라 결심하는 새타니와, 살아서 함께 바라보지 못하고 죽어서 그들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가겠다 노래하는 해명.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사랑을 접을 수도 없는 두 연인. 무휼과 연의 사랑 못지 않게, 아니 극중에서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애절하게 사랑하지만 결국 북방을 향한 대의와 대무신왕 무휼의 의지에 남은 생과 뜻을 싣고 무대 뒤에서 극을 바라보고 설명하며 이끌어간다. 살아서 함께 하지는 못했으되 그들의 의지만큼은 늘 한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부여를 넘고 북방을 달려간 저 부도로의 길.

홍경수의 해명을 직접 관람하지 못하고 녹화분만으로 접한 터라 정확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같은 캐릭터를 두고서 김법래와 홍경수의 해석은 다르다. 김법래의 해명은 그야말로 킹메이커, 자신의 의지를 숨기려 들지 않고 무대를 장악한다. ‘나는 죽어 내 아우의 머리 위에 얹히리라.’라고 대사를 치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선뜩할 정도로 강렬하다. 그러나 홍경수의 해명은 관조적이며 조금은 서글픈 해명이다. 유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이미 알고 슬퍼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아픔을 감내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새타니와의 앙상블은 홍경수 해명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로 계속(...대체 언제쯤??;;)


2006/08/06 08:49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3
뮤지컬 [바람의 나라-무휼] 관련 논란 [창고/무대 위의 향연]
[바람의 나라-무휼]의 음악이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비롯한 몇몇 곡을 샘플링한 것 같다는 의혹이 있다. 문제는 이 의혹이 표절 논쟁 시비로 번질 조짐을 보인다는 것인데, 결국 빨간그림자 님이 총대를 매고 앞장을 서셨다. 말을 옮기다보면 진의가 흐려질 수도 있으니 일단 빨간그림자 님의 글을 직링크해둔다.


의아한 것은, ‘표절인 것 같다’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어딘가로 붕 떠버린 채 사라져버렸고, 그 말의 여파만이 어떤 명확한 근거나 분석없이 조금씩 제 몸체를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표절’ 내지는 ‘도용’이라는 낱말을 쓰기 위해서는 10명의 사람 중 과반수 이상을 설득시킬 수 있는 확실한 논리와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할 짓이 없어서 몇날 며칠 동안 <태왕사신기> 시놉시스를 밑줄 그어가며 읽고, 일일이 도표를 그리고 확률 계산을 부탁하며 장문의 글을 올리고 관련 기사를 죄다 출력해서 읽어본 게 아니다. 적어도 나는 내 주장을 펴기 위해 나 스스로도, 그리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논리와 확신이 있어야만 했다(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내가 가진 논거와 그에 따른 결과에 있어서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아예 관련 논쟁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뮤지컬 [바람의 나라-무휼]에 관한 논쟁도 그러해야만 한다. 그 논쟁의 끝은 추측이 아닌 서울예술단과 작곡가의 대답으로 마무리지어져야 할 것이다.

단 일주일간의 짧은 공연이었지만 빨간그림자 님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 공연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렇기에 더욱 시시비비가 확실히 가려지기를 바란다. 엉성한 추측과 건너들은 말로 메꿔지는 소문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사실과 그에 따른 올바른 결과를. 어려운 일임에도 앞장서주신 빨간그림자 님께 그저 감사드릴 뿐이다.

꼬리1> 이번 건에 관해서 의견을 게시할 수 없는 이유는 내 자신이 음악에 관한 지식이 전무한 관계로 결국 논의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가정과 추측 밖에 나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꼬리2> 관련 의견을 주실 분은 논지가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빨간그림자 님 댁으로 의견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2006/07/26 10:26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6
[바람의 나라-무휼]-15일의 단상 [창고/무대 위의 향연]
어제 빨간그림자 님, 데굴 님과 문자로 이야기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는 세 사람이 보았던 15일 19:30 공연의 그 기억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세 사람 중 두 사람만이 강한 왕을 받아들이고 나머지 한 사람이 아주 약간의 의구심을 표명했다면 모르되, 분명 우리 셋은 감히 어느 누가 재현해낼 수 있을까, 하며 공연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두려워했던 강인하고 고독한 무휼을 보았다. 비록 공연 끝나고 ‘해명태자=킹메이커’ 발언은 내가 제일 먼저 하긴 했지만; 해명태자의 의지가 그렇게 강하게 표현될 수 있었고 그만한 존재감으로 무대 뒤를 관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극의 중심에 무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명이 그렇게 몰아칠수록 무휼이 지고 있는 운명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지고 그의 고독은 더욱 깊어진다. 어느 한쪽이 숨을 죽이면 단박에 그 균형은 깨어지고 만다. 하지만 15일의 해명태자와 무휼은 바로 그걸 해냈었다.

인정한다. 확실히 원작에 대한, 그리고 주인공에 대한 어떤 부분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가에 따라서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 역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배우들이 연기하는 그 각각의 면모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아마도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더 깊게 무휼의 고독에 끌리고 있었나 보다. 누구도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심연. 내가 보길 원한 것은 그런 것이었고,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보았었다. 무대 위의 모든 이들이 그의 앞에서 몸을 굽힐 때, 나도 마음속으로 그에게 머리를 숙였다. 원작의 대한 애정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아니, 원작에 대한 애정 때문에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을 받아들이기란 더욱 어렵기 마련이다(제작진이 제일 먼저 뛰어넘어야 할 벽도 바로 이거였을 거다. 원작의 팬들을 어떻게 하면 납득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 2001년의 공연을 보고 나와서 못내 마음 한 구석이 허허로웠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15일의 기억을 의심하지 않는다.

분명 이 공연은 원작의 힘을 아주 많이 빌고 있으며, 원작의 팬들이 그로 인해 더욱 환호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연 자체의 힘으로 서 있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휼의 존재감, 그가 그렇게 연기하는 이유의 당위성이 원작의 팬이 아닌 일반 관객들에게도 전해져야만 한다. 그것은 아마 제작진에 있어서도, 배우에게 있어서도 꽤 풀기 힘든 숙제일 거다. 그러나 나는 내가 보았던 그 가능성을 믿는다. 아버지로서의 잔상을 누른 채 왕의 모습으로 돌아서던 그 뒷모습을 보았으므로.

꼬리1>무대 위의 존재감은 그 현장에서밖에 느낄 수 없다. 너무나 짧은 공연기간 동안 채 시도해보지 못하고 남겨둔 것들을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 판단은 그때 다시 내려도 늦지 않을 거다(그런데 생각해보니 김법래 씨랑 신영숙 씨는 [이] 공연 들어가지, 조정석 씨도 [헤드윅] 뛸 텐데;; 우와아아아앙OTL).

꼬리2>어쩌면 무휼의 어떤 부분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캐릭터 해석도, 관객들의 반응도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아버지로서의 무휼, 그리고 왕으로서의 무휼. 1~6권까지의 내용에선 아버지 무휼의 느낌이 더 강하다(아마 각종 기사에서도 1~6권 분량을 다루고 있다고 했었지).
연아 걱정마라. 아무도 손 못 댄다. (기억 안 남;)
제 애비가 가진 신기 따위 없어도 아이는 얼마든 잘 큰다. 그런 것 없어 귀신과 놀지 못해도 아이는 너를 닮아 예쁘고 착하지. 그러면 되는 거야.

4권 맨 마지막 뒤에서 두 번째 페이지(생각나는대로 쳐서 정확하지 않다. 집에 가서 다시 확인해봐야지)에 나오는 무휼의 독백. 놀라운가? 글쎄 그도 한때는 이런 대사를 한 적이 있다니까. 그런데 가면 갈수록 그는 그토록 닮지 않으리라 맹세하던 아버지 유리를 닮아간다. 세류가 그에게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몸서리치는 것처럼. 호동이 제 신수를 떠나보냈음을 추발소가 고하자 무휼의 첫 마디가 바로 이거다. ‘왕자가 더 필요하다.’ 그러고는 대비전에서 술 마시다가 밖으로 나간다. 대비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어디로 갈 것 같습니까.’라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내전에 가서 이지를 취한다(이 ‘취한다’는 표현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장면에서는 그 말 말고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동안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자신의 원비를. 남편으로서 아내를 안는 것이 아니라, 왕이 후계자를 얻기 위해서 왕비를 취하는 것. 해색주와 얘기할 때도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선왕께 꼭 한 가지 동의하는 것이 있다. 때가 오면 태자는 죽여야 하는 법이다.’
마지막의 ‘가야할 곳은, 부도다.’라는 대사에 힘이 실리기 위해서는―10권 이후의 무휼에 대한 이해도 더 필요하다고 본다. 아버지인 자신을 억누르면서까지 왕으로서의 자리를 굳혀야만 했던 그를.
(문제는, 이런 그의 마음 속에도 아직까지 아버지의 느낌이 깔려 있다는 거다. OTL 그러니 사람 애간장이 다 녹는게지;;;)

꼬리3>이러니저러니 해도, (원작과는 또 다른 의미로) 나는 이 공연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고영빈, 바람의 나라-무휼

2006/07/22 09:58 | 관련글(트랙백) 1 | 댓글 2
<포스팅 예고>-[바람의 나라-무휼] [창고/무대 위의 향연]
29일 국회방송에서 [바람의 나라-무휼] 방송하고 나면 장면별 분석 들어갑니다. 제가 뮤지컬을 비롯한 공연, 무대미술, 연출 등등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관계로 아마 원작과 연계한 포스팅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쪽이 공연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요.

이렇게 먼저 얘기해놓으면 설마 귀찮다고 미루지는 않겠죠;; 빨간그림자 님, degul 님, 피드백 해주시리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미친게야 분명...;;;;;;;;;;;;;; JCS 때도 이렇진 않았는데;;;; 하지만 이렇게라도 풀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니;;)

//그런데 만약 녹화 실패하면...OTL


2006/07/20 17:11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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