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식 [일상/보고, 듣고, 느끼다]결혼 이후 제대로 감상문이랍시고 쓴 글이 딱 두 편이다. 물론 결혼 말고도 회사 일도 무척이나 바쁜 시기였긴 했지만, 그동안 영화나 공연, 만화 등을 접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고는 해도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 가만 생각해보니 집에서는 딱히 글을 쓸 기분이 들지 않는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의욕이 없다는 게 맞을 것이다. 집에 가면 저녁을 챙겨 먹고, 설거지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를 민다(물론 smk군은 내가 설거지를 할 동안에 세탁기랑 청소기를 맡는다든가, 걸레질을 한다든가…누군가가 집안일을 할 때는 다른 한명도 늘 함께 일한다. smk군의 표현을 빌자면 그건 ‘공약사항’이다). 둘 다 씻고 나와 젖은 머리를 탁탁 수건으로 치면서 귤을 까먹고, 맥주를 마시고, 밀린 DVD나 드라마를 보다가 잔다. 일상의 반복. 중앙집중식 난방 덕분에 하루종일 비워도 늘 훈훈한 집의 온기는 ―물론 ‘가정의 따뜻함’과는 전혀 다른 종류긴 하지만― 저녁나절 문을 따고 들어서는 순간 거실 바닥에 스르륵 주저앉아버릴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안정적이고, 편안하다. 그만큼 일상에 잠식당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게 한다. 엊저녁 PC 모니터 앞에서 멍하니 앉아 귤을 하나씩 까먹다가 비로소 생각해냈다. 아, 이래서 내가 결혼을 그토록 두려워했었구나, 하고. 딱히 지친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지만 안락함과 안정적인 분위기에 젖어들어 하나둘씩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는 것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되고야 마는 내 자신이 싫고 또 두려웠다는 것을. 며칠 전 놀러온 친구에게 선뜻 ‘결혼하니까 이런저런 게 좋더라.’라고 입밖에 내어 말하기가 망설여졌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함께 있을 수 있다.’라는 사실은 결혼에 수반되는 대부분의 단점을 덮고도 남을 정도로 지대한 장점이자 결혼이라는 쉽지 않은 일을 결심하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는 있지만 결혼생활은 그 장점만으로는 지탱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내 경우에는 ‘나’에 관한 부분이 항상 일정부분 이상을 차지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기적이라고 비난받을 지언정 ‘내’가 묻혀버리고 싶지는 않다는 게 솔직한 마음. 아마 이건 꽤 오랫동안 스스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될 것 같다.
2008/01/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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