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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2   추격자(2008)  (1)
추격자(2008)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

감독 : 나홍진(2008)
주연 : 김윤석(엄중호)
         하정우(지영민)
         서영희(김미진)
         김유정(은지)
         정인기(이형사)
         박효주(오형사)


한 남자가 있다. 한때 경찰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여자들 등쳐먹으며 사는 악덕 보도방 업주에 불과한 남자, 엄중호.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가 데리고 있는 여자들이 한명 두명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는 잡으면 다리를 분질러놓겠다는 듯 이를 갈며 걸리기만 해봐라, 하고 벼르고 또 벼르게 된다. 하지만 실은 없어진 여자들이 도망가거나 팔려간 게 아니라 살해당한 것임을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게다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살해당했고 어디에 시체가 유기되었는지도 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살인범은 떡하니 경찰서에 잡혀와 있고 어떻게든 족쳐서 정보를 캐내야만 하는데 영화 속 경찰과 엄중호는 관객들이 알고 있는 정보의 십분의 일도 모르고 엉뚱한 곳만 헤매고 다니는 거다. 그야말로 속에선 천불이 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엄중호와 경찰들이 자꾸 헛다리를 짚고 헛물을 켤 때마다 관객들은 답답해하고, 죽은 줄만 알았던 미진이 꼼지락거리기 시작하면 그 긴장은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달아간다. 영화 [추격자]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스릴과 서스펜스를 위해 필히 드리워져야 할(혹은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다들 생각했던) 장막은 [추격자]에서 일찌감치 모두 걷어내버린지 오래다. 긴장을 유지하기 위한 몇 장의 카드를 관객들에게 모두 내보이고서도 영화 전체적인 흐름의 주도권은 여전히 감독과 배우들이 단단히 틀어쥐고 있다는 점에서 [추격자]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다. 이미 모든 정보를 까발려놓고 시작하다보니 자칫 잘못하면 영화 전체가 물먹은 솜 마냥 축 늘어질 위험이 다분했음에도 영화는 김윤석과 하정우라는 두 배우를 내세워 과감하게 정면돌파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 시도는 99% 성공했다. 마치 처음부터 살인범이었고 추격자인 양 너무나 자연스럽게 망원동의 그 어느 골목길 안에 서서 서로를 마주하는 두 배우. 복잡다단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은 인물들을 김윤석과 하정우는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추격자 역할의 김윤석은 관객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조금씩조금씩 좁혀가며 별다른 설명 없이도 관객들이 엄중호의 심리상태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미진의 딸 은지가 필요불가결하게 등장하고 사이사이에 약간의 빈틈들이 존재하지만 그런 단점이 이 영화의 장점과 매력을 상쇄시킬 정도는 못 된다.

관객들과의 거리라는 것 자체가 성립하기 힘들 정도기는 하지만 이 영화에서 살인범인 지영민의 캐릭터는 유난히 접근하기도, 설명하기도 힘들다. 성장과정도 그간의 행적도 분명하지 않고 살인동기도 딱히 이것이다, 라고 정의내리는 것도 쉽지 않다. 당최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는 의문은 지영민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이어지고, 텅빈 사무실에서 워드를 치고 있는 여형사 앞에서 ‘비린내가 난다’며 이죽거리는 장면에서는 생리적인 혐오감 역시 극에 달한다.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 역시 발견하게 되는데 지영민의 경우 그가 어떤 경위로 그런 인물이 되었는가에 대한 정보는 일체 제공되지 않는다. 지영민을 연기하는 하정우 역시 때로는 순박한 바보처럼, 때로는 닳고 닳은 사기꾼처럼, 때로는 격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혈기넘치는 젊은 남자처럼 그때그때 연기 톤을 바꾸며 영화 속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결국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끝까지 지영민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영화 [추격자]의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게 하는 또 다른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범행이 일어나는 장소는 평온해보이는 서울의 어느 주택가, 그것도 방범초소가 바로 코앞에 있는 집이다. 좁다란 골목길, 그 입구에서 바라보이는 수백개의 조그만 불빛들과 골목길의 전봇대들, 길가에 늘어서있는 자가용들은 영화 속 장면이 아니어도 지금 당장 슬리퍼를 꿰어신고 나가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광경들이다. 익숙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낯선 범행은 언젠가 나도 저 범행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해결되지 않는 범죄, 잡히지 않는 범인, 속수무책인 경찰, 미친 듯이 실낱같은 단서를 찾아헤매는 피해자의 가족, 친구들. [추격자]는 안정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관객들을 장악하고 그들의 공포를 자양분삼아 영화 속 사건들을 현실에 대입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난 다음에도 어딘가 꽉 막힌 듯한 답답함, 껄쩍지근하게 남아있는 그 무언가는 두고두고 이 영화를 기억하게 만든다. 그것은 과연 온전히 영화 자체의 힘일까, 아니면 언제 어느 때고 나 역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적어도 그런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것만은 [추격자]가 지닌 저력일 것이다.


꼬리>만약 장동건처럼 깎아놓은 듯한 미남배우가 지영민을 연기했더라면? 짐작조차 안 되는구나(깔깔).

2008.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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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2 20:46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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