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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7   색, 계 (色, 戒: Lust, Caution, 2007)  (4)
색, 계 (色, 戒: Lust, Caution, 2007)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

감독 : 이 안(2007)
주연 : 양조위(이)
탕웨이(왕치아즈/막 부인)
조안 첸(이 부인)
왕리홍(광위민)


[색, 계(色, 戒: Lust, Caution)]라는 제목은 간단명료하면서도 영화의 내용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제목이다. 이와 왕치아즈는 서로를 유혹하고(혹은 무의식중에 유혹당하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경계한다. 매국노를 처단하겠다는 대학생들의 치기어린 애국심에서 비롯된 계략은 어느새 이와 왕치아즈의 삶을 도저히 풀 수 없는 하나의 실타래로 엮어버리고, 두 사람은 서로간에 얽힌 인연을 애써 끊으려 하지 않고 자진해서 그 그물 안에 몸을 누인다.

영화의 줄거리가 참으로 전형적이라는 사실은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젊은 혈기 하나만을 믿고 조국을 위해 이 한몸 바친다는 생각에 취해있는(실제로 바치는 건 치아즈 한 사람 뿐이지만-_-), 여주인공의 치졸한 친구들만큼 영화의 내용은 무척 얄팍하다. 매혹적인 여자스파이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 남자에게 접근하고 그의 마음을 얻어내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진짜 사랑에 빠지고, 그리고 끝내는 파국을 맞는다는, 어쩌면 그 시대 진짜로 있었을 것도 같은 그런 이야기. 1940년대, 그 암울한 시기가 과연 언제쯤 끝날 것인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던 그때에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이루리라 기대했던 관객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랑은 깨지고, 조국 해방은 요원하고, 치아즈와 그의 친구들은 결국 죽임당하고 홀로 남은 이는 연인의 침대에 앉아 눈물을 삼킨다. 밤낮없이 마작판을 벌이는 이부인과 그녀의 친구들도, 그리고 고문실에서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술술 불어대는 광위민과 그 무리들도, 이 장군과 왕치아즈도 누구 하나 땅 위에 발붙이지 못하고 1942년의 상해 거리 위를 부유(浮游)한다. 치아즈가 무엇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걸고 이에게 몸을 던지는지 그 동기(動機)도, 인과관계도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리듯 치밀한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개연성은 있을 법도 한데 이 영화는 그런 ‘친절’도 베풀어주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색色, 그리고 계戒뿐이다.



유혹하는 여자, 그리고 바라보는 남자


치아즈와 이 장군의 첫 정사에서 이는 다짜고짜 치아즈의 머리채를 휘어잡고는 어떻게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려는 그녀의 뺨을 후려갈기고 마치 짐승처럼 그녀를 때리고 강간한다. 유혹의 낌새를 알아챈 사냥개의 탐색전이자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었지만 결국 거부할 수 없었던 이끌림을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바로 이 장면이다. 사실 이 장면부터가 상당히 충격적이라 이후 꽤나 길게 이어지는 몇 번의 베드신을 보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참 씁쓸했지만 영화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에야 겨우 그들의 정사가 그토록 ‘적나라하게’ 그려져야만 했는지 조금은 짐작이 갔다. 두 사람이 ―몸도, 마음도― 솔직해질 수 있는 때라고는 (단 한 장면을 제외하고는) 오직 그 순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큼은 그와 그녀의 몸을 휘감고 있던 색(色)도, 계(戒)도 그 경계선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거침없이 치아즈를 몰아붙이면서도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던(혹은, 유지하려 애쓰던) 이의 얼굴이 어느 순간 일그러지면서 옅은 신음을 흘릴 때, 이를 자신의 온몸으로 휘어감으며 치아즈가 남모를 눈물 한 방울을 흘릴 때. 몸과 몸을 맞대는 바로 그 순간만이 그들의 진심이 서로 통하는 때이다.

분명 처음 치아즈는 막 부인을 ‘연기’했었다. 그러나 이의 앞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안절부절한다는 그녀가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막 부인으로 그의 앞에서 계(戒)를 펼치고 있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이의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그녀가 치아즈로서 그의 마음을 건드리려 하는지, 막 부인으로 다가가려 하는지 관객들은 확신하기 힘들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의 품에 안겨 있는 그녀는 막 부인이 아닌 치아즈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인과 그녀의 친구들 앞에서는 더없이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정작 음침한 지하감옥에서 그는 늘 누군가를 고문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거침없이 치아즈의 몸을 탐하면서도 과연 그녀의 육체만을 원하는 것인지, 진심으로 그녀의 마음까지 원하는 것인지 명쾌하게 결론내리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치아즈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어느새 달라져 있다.

엄격히 말하자면 그 모든 것이 아마도 계략의 일부이고 그에 따른 결과라고 해야겠지만 그렇게만은 단정지을 수 없는, 분명 그들 사이에는 교감이 이루어졌다고 확신케 하는 것은 바로 두 사람의 베드신에서 저도 모르게 드러나는 감정, 감정들이다. 상당히 긴 시간동안 흐르는 정사장면과 노출수위보다도 더욱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단발의 신음, 안타까운 몸짓, 흔들리는 시선, 서로의 품안에서 허물어지며 파르르 떨리는 어깨, 그 모두가.

베드신을 제외하고 두 사람의 마음이 완벽한 접점을 이루는 순간은 바로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앞에 둔 때이다. 늘 의심과 경계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이가 처음으로 커다란 보석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자 치아즈는 남자의 진심이 자신의 진심과 일치하는 것을 깨닫고 그만 흔들리고 만다. 어쩌면 지금까지 층층이 쌓아올린 그 모든 의혹과 가식이 그 때를 위해서였던 것은 아닌가 싶을 만큼. 다이아몬드의 화려한 광채보다 더욱 깊디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이의 대사와 치아즈의 나직한 중얼거림은 정말 그 찰라같은 순간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만드는 동시에 두 사람의 사랑을 산산조각내버린다.

그토록 격렬했던 베드신을 생각하면 김이 빠진다 싶을 정도로 마지막 장면은 허무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결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미래는 없었던 것이고, 서로의 마음을 진실로 알고 확신한 순간은 더없이 짧았으니. 죽은 여자는 말이 없고, 남은 남자는 남몰래 눈물을 삼키는 것도, 자신이 그녀를 사랑했었다는 사실도 그저 가슴속에 묻어둔 채 지금까지 그러했듯 또 다른 계戒를 펼치며 살아남아야만 할 것이다. 구겨진 침대 시트 위에 잠시 머물렀던 그의 그림자에 왠지 물기가 흠뻑 묻어있었던 것만 같았던 그 느낌은, 어디까지나 그 장면을 보는 한 관객의 바람이요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라는 사람은 그 물기마저도 다시 제 몸 안에 가둔 채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하는 사람이니까. 끊임없이 누군가를 잡아들이고, 고문하고, 자백을 받아내고, 자신에게 다가서는 모든 이들을 의심하고…. 그 수많은 계(戒) 중에서 치아즈 단 한 사람 앞에서만 자신의 색(色)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었음을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것인지, 아니면 마음과 마음이 맞닿은 그 순간이 덧없을 정도로 짧았다는 것에 안타까워해야 할 것인지 나는 물론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글쎄, 이제 와서 그걸 알아낸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무릇 계戒라는 것은 눈치챈 순간 그 의미를 잃어버리는 법이다. 나로서는 그저 그들의 색色과 계戒가 뒤엉키던 때를 잠시 엿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꼬리1>그래도 첫 정사(그러니까 강간-_-)장면이 어찌나 충격이었는지…정말 그 순간 내 심정은 이랬다. ‘나의 조위 님은 그렇지 않아!! OTL’
꼬리2>

보면서도 누구지, 눈에 참 익은데 누구지, 했는데 조안 첸 언니셨다! 이럴 수가, 내가 조안 첸 언니를 몰라보다니!!(그저 저를 자근자근 밟으시와….) 하지만 내게 있어서 조안 첸의 이미지는 [트윈픽스]의 조시 패커드와 거의 일체화되어 있어서;;
꼬리3>세상에 양조위 이 남자, [화양연화]에서는 뒷모습으로 연기를 하더니 [색, 계]에서는 이 남자 그림자까지 연기를 한다. 이 일을 어쩜 좋으냐! OTL
꼬리4>양조위의 연기야 두말할 것도 없지만 탕웨이의 연기 또한 참으로 놀랍다. 감정을 묶어두어야 하는 때와 있는 그대로 흘려보내는 때를 실로 절묘하게 조절하는 그 모습이라니. 이를 연기하는 양조위와 이안 감독의 연출이 그만큼 안정적으로 받쳐주긴 했겠지만 배우 본인의 노력과 실력이 없었다면 [색, 계]의 치아즈―막 부인이라는 인물은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영화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무척이나 기대되는 배우다.
꼬리5>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의 양조위는 유난히 안성기를 닮은 것 같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가?

2007.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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