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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1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서(序)-그 새로운 시작  (5)
2005/11/26   Death&Rebirth, The End Of Evangellion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서(序)-그 새로운 시작 [창고/애니, 쉼없는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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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그러니까 일본 애니메이션을 큰 화면에서 보기 위해서는 입소문으로 PC통신으로 알음알음 알아낸 각 대학교의 만화/애니동아리나 동호회에서 개최하는 상영회를 일일이 찾아다녀야만 했던 그때에도,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늘 애니 팬들의 인기와 관심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에바, AT 필드, 인류보완계획, 세컨드임팩트, 사도, 아담, 리리스….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 하나 ‘이것이다’라고 명확히 단정내릴 수 없는 [에바]의 구성요소들은 숱한 의문점들을 남겼고 그로 인해 팬들은 저마다의 가설과 분석을 토대로 새롭게 [에바]를 해석하고 받아들이곤 했다. 그렇게 10여년이 지나, 2007년 공개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서(序)]. 기존의 TV판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고 여전히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부분은 없지만 [에바]의 팬들이라면 아마 열의 여덟, 아홉은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열광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럼, 과연 나는 어떠한가? 적어도 두 번째 극장판인 [파(破)]를 보기 전까지는 [서(序)]의 자세한 감상을 잠시 미루어야 할 것만 같다. 물론 익숙한 장면들은 더없이 반가웠고, 훨씬 더 세련된 그래픽은 10년의 세월을 실감케 했으며, TV판과 달라진 부분에서는 조금 놀라기도 했고, 아스카가 끝까지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에 분노하기는 했으나 그 모든 감정들은 [파(破)]의 예고편을 본 다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히 가라앉아 기대감으로 마무리되었다.

TV판과 [데스&리버스], [엔드 오브 에바]까지 모두 보기는 했으나 정작 ‘에바’ 자체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한, 그러나 평범한 일반관객보다는 훨씬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어정쩡한 위치(즉, 본인)에서 본 [신극장판 서(序)]는 기존의 팬들과 새로운 팬들 모두를 아우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쏟아 부은 새로운 극장판이다(괜히 제목에 ‘신극장판’이 붙은 게 아니다). 일단 그 문제의 ‘인류보완계획’이나 아담과 리리스, 롱기누스의 창 등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해도 [신극장판 서(序)]를 즐기기에는 별 무리가 없다. 아니, 사실 몰라도 된다. [서(序)]로 시작되는 신극장판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기존의 TV판 및 극장판과는 꽤 다를 것이고, 또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무식하다면 용감하다 해야 할지) 이렇게까지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10년 전 처음 ‘에바’를 접하고 거의 충격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던 그때와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기 때문이고, 에바를 만들어 낸 총감독인 안노 히데아키 역시 10년 전의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10년의 차이가 [서(序)]를 좀 더 ‘친절한’ 작품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겐도는 여전히 괴팍하고, 리츠코는 여전히 시니컬하며, 레이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고, 신지는 여전히 찌질하지만― TV판의 주요장면들을 긴박하게 재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서(序)]는 한결 여유롭기까지 하다. 혹자는 그 여유로움을 아무 변화없음으로 받아들이고 언짢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序)]의 알 수 없는 여유가 바로 [파(破)]를 위한 긴 숨고르기이자 도약을 위한 도움닫기였다는 것이 [파(破)]의 예고편에서 비로소 명확해진다.

어쩌면 그 점이 바로 [서(序)]가 품을 수밖에 없는 한계점일지도 모른다. 기존의 팬들을 납득시키고 새로운 팬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10년이라는 세월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부딪히고 깨지며 한없이 내면의 늪에 빠져만 들어가던 신지에게 감정이입하며 함께 괴로워하던 10년 전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그때의 나보다 한 발짝, 아니 다만 반 발짝만이라도 더 나아간 내가 있고, 또 그렇게 함께 나아갈 신지를 기대한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이 가져다주는 선물. 신지에게도, 레이에게도, 아스카에게도, 카오루에게도, 그리고 안노 히데아키와 그때 다같이 열광했던 수많은 팬들에게도 모두 공평하게 나누어지는 축복. [서(序)]를 본 후의 이 안정된 느낌이 [파(破)]에서 어떻게 휘저어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서 더욱 두렵기도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만족과 기대감 속에 젖어들고 싶다.


꼬리>그런데 어찌 된 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글은 그다지 나아진 게 없고나. -_-


2008. 1. 31.



에바, 에반게리온

2008/01/31 14:58 | 관련글(트랙백) 3 | 댓글 5
Death&Rebirth, The End Of Evangellion [창고/애니, 쉼없는 동경]
감독: 안노 히데아키 (1997)
기획/원작: 가이낙스
캐릭터 디자인: 사다모토 요시유키
메카닉 디자인: 야마시타 이쿠토
제작: 가이낙스-타츠노코 프로덕션



이 글은 상당히 오래 전에 쓰여졌습니다. 쓴 날짜는 기억이 안나지만, 동아리 게시판에 올린 날짜가 1998년 4월 8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제가 지금까지 쓴 글 중 가장 감정에 북받쳐서, 그 감정을 고르지 않고 거의 토해내듯이 쓴 글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 글엔 상당히 애착이 있고,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올립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그저 느낌만을 나열한 것이니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는 마시길.

Death and Rebirth. and The End of Evangellion



나는 에바 TV 판을 다 보지 못했다. 1편부터 4편까지, 그리고 25, 26화만을 봤을 뿐이다. 그렇기에 극장판을 본 나의 느낌은 확실히 '이렇다'라고 정의 내리기엔 불가능하다. 나는 그저 극장판만을 봤을 뿐이고, 사람들은 너무나 많았고, 화질은 좋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극장판을 봤다. 그것도 과 공식 일정도 다 제쳐버리고..) 그리고 다 보고 난 후,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서 정신없이 토해 버렸다.


난 이때까지 신지의 성장과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단지 에바를 아주 간단히 요약하고 요약한 것 뿐이란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 말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었다. 한 소년이 마음을 열고 타인을 받아들이고 상처받고 다시 마음을 닫고...그리고 크게는 인류 전체에 대한 경고와 서로와의 관계. 지금도 이런 생각에 크게 변화는 없지만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가 부족하다. 에바는 인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인류가 멸망하는 것은 결국 인류 스스로에 의해서 멸망당하는 것. 아니, 인간이라는 말은 부적절하다. 바로 나 자신이다. 신지도 나고, 미사토도 나고, 아스카도 나다. 지금처럼 혼란스럽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시기에 에바를 본 건 잘못일지도 모른다. '나'는 끊임없이 사람에게 실망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얇은 '감정'이란 막으로 변장하고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배신당한다. (라고 나는 '생각'을 한다.) 리츠코는 딸보다도 사랑하는 남자를 택하는 어머니에 의해서 배신당하고, (그러나 이미 그럴 거란 암시는 있었던 것 같다. '나 바보같은 짓 하고 있어요. 로직이 아닌걸요. 남자와 여자는. 그렇죠, 엄마.'-그렇지, 이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남녀 관계라는 건. 하지만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런 게 아닌가?) 신지는 카오루에게 배신당한다(라고 생각을 한다. '내 감정을 배신했어??' 뭐 이런 말이었던 듯 하다.)

마음에 드는 그림은 아니지만..주인공들이 다 나오는 그림을 찾다보니..;;

'난 당신의 인형이 아닌걸. 이카리 군이 부르고 있어.'


레이는, 그리고 카오루는, '내'가 지칠 때 희망이 되어주는 그 '뭔가'다. 나는 지금 너무나 힘들다.(아니, 그렇지 않다. 아니 그렇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람.) 그러나 아침이면 나는 다시 밝아지고 명랑해지고 온 학교를 휘젓고 다닌다. 나에게는 마음 한구석에 '뭔가'가 있어서 아직까진 나를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삶, 혹은 죽음. 미사토 말대로 상처받는 게 두렵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상처를 안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남에게 상처주는 일 역시 그렇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모태에 상처를 입히고 태어났고 지금 이 순간까지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면 살아왔다. 그러나 정작 나는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 한다. 주고받고, 주고받고. 그러나 역시 미사토 말대로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간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나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양산형 에바에게 뜯어 먹히는 에바 2호기 안에서 아스카는 절규한다. 힘들어서 '그냥 팍 죽어버리고 싶어!!' 라고 생각한다 해도 한번씩 차에 치일 뻔하거나 계단에서 구른다거나 하면 '나'는 '큰일 날 뻔 했다' 라는 말을 내뱉는다. 본능. 그 상황에서도 살고 싶다는 아스카의 절규. 나는 오늘도 살기 위해 밥을 먹었고 내일 역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밥을 먹을 것이다. 지구에는 50억의 인구가 지구를 오염시키고 더욱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래서 '나' 하나라도 없어지는 것이 지구를 위해 더 나을 테지만 (왠지 [X]의 밀사라도 된 듯한 기분인걸.) 나는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이왕 사는 거라면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괴로움. 사람에 대한 배신감.

'타인의 존재를 원하면 다시 마음의 벽이 서로를 떼어놓아. 다시 타인에 대한 공포가 시작되는 거야.'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로 인해서 한없이 괴로워하다가도 다시 내 주위 사람들에게 위로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아직 '타인을 이해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에바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매 생활마다의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다. 나는 오늘 내가 피하고 싶었던 것들을 보았고 그리고 토했고 지금도 계속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고 있다. 에바를 보면서 내 안의 무언가가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그것이 내게 좋은 것이었든 나쁜 것이었든 나는 다시 '희망'의 도움으로 그것을 이어야 한다. 괴롭겠지만 그래도 그러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미사토, 아스카, 그리고 신지처럼. 나는 어쩌면 에바를 보지 말았어야 했다. 덕분에 머리 속은 더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전혀 모르는 타인과 타인과의 만남. 그리고 마음과 마음과의 교류. 그리고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눈물. 아픔. 그리고 시작. 나는 어쩌면 에바를 꼭 봤어야 했다.

여기까지. 읽으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2000.12.23.


에반게리온

2005/11/26 22:40 | 관련글(트랙백) 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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