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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6   어른의 문제(大人の問題)-언젠가는 나도 이해할 날이 오겠지 
2005/11/26   백귀야행(百鬼夜行抄)-밝음과 어둠을 넘나들며  (1)
어른의 문제(大人の問題)-언젠가는 나도 이해할 날이 오겠지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
지은이: 이마 이치코(今市子)
출판사: 시공사
권수: 전1권


‘내가 5살 때 게이임을 자각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원만하게 합의이혼을 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작품 첫 장에서부터 말 그대로 ‘어른의 문제(유전적 요인에서부터 바이러스 감염에 이르기까지)’로 어릴 때부터 고민해와야 했던 순진한 청년의 좌충우돌 성장보고서이다. ‘게이가 뭐야? 가르쳐줘~’라고 식당 안에서 소리를 높이며 어머니를 졸라대던 아이는 아버지의 연인을 만나고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며 도와주려는 청년으로 성장한다. 아들을 위해,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꽃다운 2,30대를 희생해야만 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연인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어머니. 동생의 선의의 거짓말로 결혼에 골인하게 된 누나. 늦게나마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지금껏 자신이 쌓아온 것을 포기하는 형. 이렇게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단행본 한 권에 알차게 들어가 있는 이 만화, 『어른의 문제』.

…라고 물 흐르듯이 쓰고는 싶지만, 솔직히 말해야겠다. 『어른의 문제』에 나오는 가족들은 한마디로 ‘콩가루 가족’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세상의 어떤 아들과 어머니가 남편의 새 연인, 그것도 아들과 몇 살 차이나지도 않는 동성(同性)의 연인을 만나러 간다는 말인가? ‘우린 아마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모자지간일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나오토, 그가 2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원형탈모증까지 겪어가며 고민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어른의 문제』에 나오는 가족의 형태는 어쩌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성적 취향을 뒤늦게 깨닫고 그것을 가족에게 고백하는 용기, 그 고백을 받아들인 연후에도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아내, 아버지의 동성 연인과 대화하며 그간의 선입견을 스스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아들…. 혈연에 얽매여 아버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들, 아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편, 아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부모가 아니라 한 인격체가 한 인격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나 아닌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에서 우러나온 행동과 열린 마음은 고로, 나오토, 유지, 유미코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다시 풀어 신뢰로 매듭짓게 하는 원동력이며, 이는 다시 에비 가의 사람들을 자극하여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또 다른 힘이 된다.

『어른의 문제』가 지닌 미덕은 바로 이것이다. ―더없이 심각한 주제, ‘어른의 문제’를 재치있게, 코믹하게 풀어냈다는 것. 아직까지 동성애라는 것이 터부시되는 사회에서 나이 40을 훌쩍 넘은 남성의 커밍아웃이란 그의 지인들에게 있어서는 실로 리히터 8.0의 대강진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만약 내 주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름대로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애써 자위하는 나는 과연 지인의 커밍아웃 앞에서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의 나날을 격려하고 축복해줄 수 있을까? 그러나 갑작스런 남편의 커밍아웃을 접한 유미코는 말 그대로 쿨하게 합의이혼을 하지만 정작 남편이 동성애자라는 것에 대해 이렇다 할 반감은 나타내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 문제시되는 것은 ‘남편이었던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라는 것. 유미코가 유지에게 가지는 감정은 한때 가장 깊은 관계에 있었지만 이제는 타인이 된 사람을 향한 인간적인 집착일 뿐, 그의 성적 취향과 가치관까지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빠가 계속 내게 의지하는 게 기뻤어’라며 유지와 고로의 관계를 마뜩찮아 하지만 유지와 고로의 사랑을 점차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그녀가 ‘어른’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게이가 무슨 뜻인지 알려달라며 떼쓰던 어린 아들에게 ‘어른에게는 이런저런 사정이 있단다’라고 일러주던 어머니 덕분일까. 아들 나오토 역시 아버지 유지와 고로의 관계를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어느새 어머니 유미코처럼 어른인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들이 정체되지 않고 급류를 타는 것처럼 빠르게 전개되지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억지로 독자를 납득시키려 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심각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실상 『어른의 문제』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묵직한 소재를 솜씨좋게 포장한 이마 이치코의 발군의 유머 감각이며, 책장을 넘겨가며 한껏 웃음을 터뜨리고 나면 고로와 유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나오토의 그것과 닮아가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어릴 때는 쉬이 용납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꼭꼭 마음을 닫아두었던 어린 시절의 나.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앞에, 옆에, 뒤에 서 있는 이들의 이런저런 사정을 알게 되면서 그 빗장을 하나씩 열어가게 된다. 빗장이 풀릴수록 치기어린 옛날의 나를 내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관문과도 같은 것. 그러나 그 문을 하나씩 지나다 보면 어느새 어른이 되어 한층 여유롭게 ‘문제’들을 대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의 문제』의 나오토처럼 나 아닌 타인의 ‘문제’들까지 감싸안을 수 있는 진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면, 반드시.

꼬리> 그렇지. 모두에게는 각자의 ‘어른의 문제’가 있는 법. 너무 깊이 알려고 하면 목숨이 위험할지도;


2004. 8. 3.


이마 이치코

2005/11/26 22:39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백귀야행(百鬼夜行抄)-밝음과 어둠을 넘나들며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
지은이: 이마 이치코(今市子)
출판사: 아사히 소노라마(朝日 ソノラマ)/시공사
권수: 11권~(1995~)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 이유 모를 두려움과 공포에 고개부터 돌려버리고 냅다 환한 가로등 밑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 대신 어둠 속의 존재에게 손을 내밀고 말을 건넨다. 이이지마 가규의 피를 이어받은 리쓰와 즈카사, 아키라. 그리고 그들 곁에서 어둠과 밝음의 경계를 함께 넘나드는 아오아라시와 나타났다 사라지는 수많은 이세계(異世界)의 존재들. 그들이 살아 숨쉬는 세계―『백귀야행』.

일본에서 발행된 『백귀야행초』문고판 1권 표지. 이마 이치코의 컬러는 신비로운 내용만큼이나 신비롭다작가 이마 이치코는 단편집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지만 그의 진가가 드러나는 곳은 역시 『백귀야행』이나 『어른의 문제』 같은 옴니버스 연재이다. 복잡하게 얽힌 스토리를 억지로 가위로 잘라서 보여주는 대신 매듭의 끝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더듬어 가는, 마치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전개. 그렇기에 『백귀야행』은 짧은 시간에 책장을 휙휙 넘겨가며 보는 것보다 아예 작정하고 꼼꼼하게 한 컷 한 컷을 살필 때 그 재미가 배가되는 작품이다. 격월간지에 실리기 때문에 한 회 원고로는 다소 많은 분량을 소화해내기 위한 스피디한 전개는『백귀야행』이 가지는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매번 새로운 요괴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리쓰의 주변을 맴돌고 리쓰는 어느새 이세계의 그들과 가까워진다.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아, 도와주길 잘했다'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리쓰도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인간이었기에 두려워하고 외면하려 하고 부정하려 한다. 두 눈을 꼭 감고 등 돌려 달아나면 귀찮은 일들을 피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리쓰는 자신의 영력을 이미 자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어둠을 부정하고 그에 맞서는 대신 어둠을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한다. 새로운 사건들, 새로운 요괴들, 제각각의 사연들…. 괴로움과 시간의 무게도 다 다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리쓰의 시선은 어느덧 조부 가규의 눈빛과 닮아있다. 애정, 연민, 혹은…동경까지도.

시간이 흐르면서 정이 쌓이는 것은 비단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가규의 명령에 따라 리쓰를 지켜주는 아오아라시는 리쓰의 아버지 몸에 깃들어 산다. 안은 요괴라 해도 겉으로는 '이이지마 다카히로'이며 이이지마가의 데릴사위이며 리쓰의 어머니의 남편이며 이이지마 리쓰의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이 가규의 술법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리쓰는 화를 내지만 결국 그 분노를 속으로 삭이며 겉으로나마 자연스러운 '가족'이 유지되는 쪽을 바란다. 아오아라시가 인간 세계에 익숙해지면서 리쓰도 점점 그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아오아라시 역시 리쓰와 이이지마가의 사람들에게 애착을 느끼게 된다. 요괴라기엔 이미 인간에 가까운 아오아라시. 약방의 감초처럼 오지로·오구로 콤비와 함께 웃음을 자아내고 리쓰가 한껏 벌여놓은 사건들을 처리하는 '해결사'같은 존재지만, 언뜻 언뜻 보이는 주인 가규를 향한 그리움과 애정은 요괴 아오아라시의 또 다른 면모이기도 하다.

오오 정의로운 미중년 이이지마 카이의 등장!!(리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카이만큼만 늙어가 줘~)한편, 아버지의 영력을 같이 이어받았으면서도 리쓰의 어머니 키누는 다른 형제자매들과는 달리 '보이지 않는 것'을 구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사토루나 타마키처럼 구체적인 형태를 보고 느끼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다' 혹은 '부자연스럽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던한 성격이라 해야할지 무심한 성격이라 해야할지…. 그러나 키누가 이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머니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겠다'라는 리쓰의 중얼거림처럼 현실과 공상의 세계를 애써 구분 지으려 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 것. 리쓰가 요괴를 이해하기까지는 가규의 영향도 매우 컸지만 어머니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아오아라시·리쓰와 함께 어둠 속의 존재를 대하는 또 한 사람, 이이지마 즈카사. 오지로·오구로와 함께 3인조를 이루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즈카사는 십 수년을 요괴에 씌인 채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리쓰의 도움으로 그간 그녀를 얽매고 있던 굴레를 벗어버리게 된다. 상당한 영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각하지 못해 온갖 사건의 주범이 되기도 하지만 즈카사는 『백귀야행』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과 다양한 관계를 맺기를 꺼려하는 탓에 아직까지 외기러기인 리쓰의 잠정적인 파트너이며 다소 냉정한 면이 없지 않은 리쓰를 받쳐주는 즈카사는 어쩌면 리쓰와 세상에서 가장 닮은 한 쌍일지도 모른다. 자기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깨닫지 못하고 좌충우돌 마냥 불안하기만 한 즈카사를 바라보는 리쓰 역시 그녀를 걱정하면서도, 어느새 즈카사가 곁에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그녀를 지켜주려 한다. 리쓰를 걱정해서 아오아라시를 손자의 곁에 머물게 한 조부 가규처럼.

백귀야행(百鬼夜行). 온갖 잡귀가 횡행하는 밤. 그러나 그 사이에서도 사랑이 있고 꿈이 있고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다. 사람들이 못보고 지나치는 어둠의 편린들을 보고 들으며 받아들이는 리쓰와 즈카사, 그리고 현실과 이세계의 가교 역할을 하는 아오아라시와 오지로·오구로…. 적막한 그믐밤, 흥겨운 요괴들의 잔치 한 구석에서 술잔을 나눌지도 모르는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 그들과 함께라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볼 수 있을테니까.

2003. 6. 3.


이마 이치코

2005/11/26 22:03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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