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라걸스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감독: 이상일(2006) ![]() 참 뻔한 영화다. 영화의 시작이며, 줄거리며, 누구나가 예상할 수 있는 갈등과 그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 그리고 결말. 아, 저게 계기가 되어서 훌라댄스를 배우게 되고, 반대에 부딪치지만 결국은 해내는구나. 그렇지, 그렇게 되어야 하겠지. 예고편만 봐도 영화 전체를 훤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훌라걸스]는 무척이나 전형적인 플롯을 가진 영화이고, 적절한 타이밍에 관객의 눈가를 슬쩍 젖게 하는 흔한 기교를 부리는 영화다. 그러나 뻔한 얘기에 누구나 짐작하는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한순간 보는 이의 가슴을 때려대는 힘의 원천은 영화의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는 훌라댄스다. 처음엔 그저 시큰둥한 태도로 입을 삐죽 내민 채 건성으로 발을 옮기던 키미코가 이를 앙다물고 연습에 몰두하게 된 것도 마도카 선생의 훌라댄스를 보고나서였고, 하와이안 센터 건립을 그토록 반대하던 키미코의 엄마는 딸이 텅빈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는 야자수를 살리기 위해 집집마다 스토브를 모으러 다닌다. 마음을 담아 추는 동작 하나하나가 마음을 움직이는 바로 그 순간, 영화 속 사람들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영화 속 현실에 푹 빠져버리게 된다. 언뜻 보면 [빌리 엘리어트]와 많이 닮아 있는 듯 하지만 두 영화는 확실한 차이점이 있다.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는 타고난 재능과 노력, 스스로의 춤에 대한 열정으로 현실을 박차고 나갔지만 키미코를 비롯한 [훌라걸스]의 댄서들은 ‘춤을 추고 싶다’라는 개인적인 이유보다 부모님, 가족, 그리고 마을을 살려야만 한다는 공동체적인 의무감으로 춤을 춘다. 춤을 추지 않으면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만 한다는 막막함, 춤을 추는 것 말고는 마을을 구해낼 방법이 없다는 절박함. 그렇기에 연습실의 바 위에 한쪽 다리를 제대로 올려놓지도 못하던 그녀들이 화려한 조명 아래서 화려한 훌라댄스를 선보이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우습지만도 않은, 어떻게 보면 처절하기까지 하다. 비록 무대 위에서는 화사하게 미소짓고 있지만 그네들은 생존의 위기를 딛고 춤을 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키미코와 사나에, 요지로가 안고 있는 현실의 무게는 그저 영화의 배경만으로 넘기기엔 너무나 묵직하다. 그들이 지고 있는 현실은 그저 한바탕 웃고 넘겼을 지도 모르는 ‘훌라 걸’과 ‘하와이안 센터’의 탄생비화를 가벼운 이야깃거리가 아닌 감동어린 실화로 끌어올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를 두고 기적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그 안에서 춤을 추고 야자수를 옮겨심었던 사람들에게는 기적이 아니라 ‘그때 그렇게 했어야만 했던’ 지극히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의 화려한 무대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지 못하고 그렇게나 펑펑 눈물을 흘린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게다. 지금 우리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웃을 수 있지만, 그때 당신들은 피눈물을 삼키며 그 시기를 견뎠을 것이라고. 그래서 고맙고, 또 미안하다. 때로는 가혹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지독하게 차가운 현실이 어떤 이들에게는 또 다른 따스한 꿈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2007/03/1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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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토리(Love Story)-싱그러운 과일같은, 순수한 사랑 이야기 [창고/텔레비전을 틀고]각본: 기타카와 에리코北川悅吏子
주연: 나카야마 미호中山美穗 (스도 미사키須藤美嘯) 토요카와 에츠시豊川悅司 (나가세 코우永瀨康) 카토리 싱고香取愼吾 (나베토모 쿄지鍋友恭二) 유카優香 (고바야시 카노小林香乃) 가토 하루히코加藤晴彦 (이케타니 미츠구池谷貢) 하타노 히로코畑野浩子 (쿠라다 유미倉田ユミ) 고노 타케히코小野武彦 (카시와바라 슈조柏原修三) 유타니 켄야コタニキンヤ (나가세 켄지永瀨ケンジ) 미사키 치에코三崎千惠子 (나가세 요시永瀨ヨシ) 제작: TBSエンタテインメント 사실 나는 일본 드라마를 그렇게 많이 본 편―아니, 거의 본 작품이 없다. 기껏 본 드라마라고 해봐야 [춤추는 대수사선], [안티크], [롱 베케이션] 정도랄까. 사실 [러브 스토리]도 출연진에 나카야마 미호와 토요카와 에츠시라는 이름만을 확인하고 어떤 작품일까 호기심에 1편을 구해본 것이 그야말로 '화르륵'이 되어버렸으니. 화려한 것도 아니고, 떠들썩한 재미를 주는 것도 아닌 오히려 순박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러브 스토리]를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된 이유는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러브 스토리'는 드라마의 제목인 동시에 화두이며 드라마 속 인물들의 공통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감정의 완급을 조절하지 못하고 솔직하게 부딪쳐서 늘 상처만 입는 미사키, 죽은 약혼자에 대한 기억에 얽매인 채 단지 '테크닉'만으로 순수한 러브 스토리를 써내는 나가세 코우, 하룻밤의 만남과 사랑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나베토모와 그런 그에게 진정한 사랑을 알게 해주는 카노, 그리고 또 다른 자신만의 사랑에 고민하는 이케타니와 유미. 20대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과 30대 성숙한 성인의 잔잔한 교감이 함께 어우러지는 가운데 나가세 코우와 스도 미사키의 사랑이 시작된다. 때로는 담당 편집자와 작가가 나누는 설전을 통해, 때로는 실연한 지인을 위로하며 건네는 술잔을 통해, 때로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 위한 날카로운 말 한마디로…. 지금까지 좋아하는 감정을 적당히 숨기고 다가가는 방법을 모른 채 스트레이트로 돌진하는 미사키와, 상처입고 연약한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거친 말과 행동으로 일찌감치 벽을 쌓아버리는 나가세 코우의 모습은 낯설지 않은 우리 주변의 그 누군가의 모습들과 닮아있다. 지난 사랑의 상처에 7년이나 그 아픔을 떨치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는 나가세 코우나, 매번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그 사랑에 실패하면서도 '또 다른 사랑을 만나고 싶어'라고 소망하는 미사키의 모습은 언뜻 보면 정반대 같지만, 사실 그 둘은 닮은꼴이다. '사랑'이라는 그 감정의 호흡을 조절하며 조금씩 조금씩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에 둘 다 익숙하지 못한 것이다. 한 사람은 그 자리에 누군가 발을 디미는 것조차 두려워 마음의 창을 꽁꽁 걸어 잠그고, 다른 한 사람은 매번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가 차가운 비바람만 잔뜩 맞게 되는 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까다롭고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나가세 코우가 그토록 '순수한 러브 스토리'를 쓸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마음속으로 순수한 사랑을 늘 갈구하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사랑할 용기를 내는 대신, 사랑을 원고지 위에 풀어내어 독자들이 꿈꾸는 사랑을 대신 이루어주는 것에 만족한다. 다른 편집자들이 부수와 유명세만을 믿고 나가세 코우에게 찾아오는 데 반해, 미사키는 나가세의 글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그만의 '진실'을 읽어낸다. 차근차근 관계를 쌓아가라는 주의 사람들의 충고가 무색하게 '그가 좋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앞 뒤 재볼 생각도 않고 고백해버리는, 그만큼 자신에게 솔직하기 그지없는 미사키였기에 나가세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도 코우처럼 순수한 사람이었으니까, 코우처럼 상처를 입는 것을 두려워하는 대신 상처를 새로운 사랑으로 다시 감싸려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정작 미사키가 그의 마음속을 파고들기 시작할 때, 코우는 또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버리고 만다. 그때에 이르러서야, 코우는 2년 간의 슬럼프 끝에 진심을 가득 담은 새 러브 스토리를 쓸 수 있게 된다. 바로 자신과 미사키의 이야기를. 이제 남은 것은 그 자신이 '러브 스토리'의 결말을 실행에 옮기는 것뿐이다. 드라마 [러브 스토리]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오프닝이다. 주인공인 미사키와 나가세 코우 모두 순백의 옷차림을 하고 살짝 미소짓는 가운데 싱그러운 야채와 과일들이 교차된다. 특별한 양념을 하지 않아도 깨끗한 물에 씻기만 하면 그대로 먹을 수 있는,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금방 상처가 나버리는 야채와 과일들은 마치 미사키와 코우 두 사람을 나타내는 듯 하다. 순수함, 그러나 그 이면에 숨어있는 나약함, 하지만 날것으로 한 입 베어 먹어보지 않으면 그 진정한 맛을 결코 알 수 없는 것처럼. 노 메이크업의 얼굴이 환한 조명 아래 클로즈업 되었을 때 멋쩍은 듯 슬쩍 웃음을 띄우는 토요카와 에츠시의 주근깨 가득한 그 얼굴마저도 [러브 스토리]의 나가세 코우의 여린 속마음을 나타내는 듯 하다. 서로를 슬쩍 건너다 보다 쑥쓰러운 듯 웃음짓고 슬며시 손을 잡고…. 너무나 순수한 나머지 사랑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만 했던 그들이, 앞으로는 서로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바로 그들만의, 그들을 위한 '러브 스토리'를 만들어 가면서. 2003. 9. 17. 2005/11/26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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