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체온을 느끼며: 관계, 쉽지만 어려운 그 무엇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이 글은 부산대 만화동아리 A-HEART 회지
일상생활에서 '관계'라는 말을 참 많이 듣고 또 사용하곤 한다. 가족관계, 선후배관계, 남녀관계, 소위 므흣한 관계 등등.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필자와 원고를 청탁한 편집장과의 관계를 보자면 일단 동아리 선후배 관계이자, 쪼는 편집장과 마감일을 이미 넘겨 도망갈 구석없이 쪼일 수밖에 없는 필자의 가련한(…) 관계. 그리고 때로는 주전부리를 산처럼 쌓아두고 동인녀의 혼에 서로 불을 질러주는 아주 바람직한 관계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단 두 사람 사이를 설명할 수 있는 '관계'도 실로 여러 가지다. 관계(關係)라는 낱말의 여러 사전적 정의 중 위의 경우처럼 생활 속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뜻을 살펴보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등 둘 이상이 서로 걸리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과의 관계는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다소 맞지 않는 듯 하니 뒤로 미루어두고 사람과 사람이 얽히는 경우만을 생각해보자(잠시 회지를 덮고 생각해 볼 것. 필자도 지금 생각 중이다). 자, 어떤가? …어렵다. 나 혼자 머리 싸매고 사방팔방 노력해도 혼자 힘만으로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다는 점에서 더 어렵다. 하늘아래 세상만사 지성이면 감천이라는데 이것만큼은 노력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소위 기브 앤드 테이크. 안 그래도 갈수록 팍팍해지는 게 사람들인데 너무 냉정한 것 아니냐고?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동방에 올라갔는데 그간 도통 뵙지 못하던 선배님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다. 그런데 정작 선배라는 사람은 고개만 한번 끄덕일 뿐 별다른 인사말도 하지 않는다. 그럴 때 기분이 과연 어떠하던가? '원래 그런 성격이야.'라는 설명을 듣는다 해도 그 당시에는 섭섭한 것이 사람 마음이다. 이처럼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는 법. 그런데 모자라도 안 되고 차고 넘치면 그 또한 곤란하다. 이러니 더더욱 어렵다. 맨땅에 헤딩하듯 혼자 상대방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봤자 상대방이 이렇다할 반응을 보여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적정한 선을 지키며, 상대방의 영역과 나의 영역의 교집합을 조금씩 늘려가야만 하는 그 과정. 가식에는 가식으로, 진심에는 결국 진심으로 대하게 된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음에도 매번 진심으로만 부딪힌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기에, 우리는 '관계'의 어려움에 애꿎은 입술만 짓씹으며 머리를 쥐어뜯곤 한다. 한솥밥 긁어먹고 스스럼없이 생리현상을 배출하며 애증을 담아 서로를 갈구는 가족들끼리도 삐걱대기 일쑤인데, 가족을 제외한 타인과의 관계는 오죽하겠는가. 하물며 20년이 넘는 시간을 생판 남남으로 지내다 같은 학교, 같은 과, 같은 동아리라는 이유로 새로이 관계를 맺게 될 때의 그 어려움이란? 졸업하고 어렵게 취직해서 처음으로 간 회식자리에서 맞닥뜨리는 것은 무조건 분위기를 띄워야만 한다는 신참의 막중한 의무감―1년에 4번, 5년여에 걸쳐 도합 20번은 겪어야 마스터할 수 있다는 궁극의 관광버스 나이트댄스마저 단 한번에 바로 소화해내야만 하는 위기상황에 봉착할 때의 그 막막함과 난감함은 또 어떠한가? 이 모든 게 결국 관계다. 소위 '인간관계'라는 것. 태어난 이상 부모님과, 형제 자매와, 친구들과, 선생님과, 동료들과, 선후배들과…. 나 아닌 다른 모든 이들과의 관계로 인해 울고 웃고 고민하는 것이 사람이고, 그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어렵다고 모두들 요리조리 피해갈 수 있는 길이라면 우리나라 주류 회사와 담배인삼공사는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기지도 못할 술로 애꿎은 병나발만 불고 너구리만 잡아대며 집에 가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옆사람에게 민폐끼치기 전에, 작지만 소중한 간접경험을 통해 미리미리 정신무장을 하도록 하자.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이라면 역시 가족 관계일 것이다. 피를 나눈 친자매끼리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고 함께 아이스크림을 퍼먹다가도,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며 악다구니를 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을 보면(누구 얘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각자 가슴에 손을 얹고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자), 가족끼리 잘 지낸다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하물며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과 새로운 가족을 이루게 된다면? 히구치 아사의 『가족, 그 이후』(강담사/학산문화사, 1권 완)이 바로 그 작품이다. 갑자기 인플루엔자로 세상을 훌쩍 떠버린 엄마. 그녀가 가고 남겨진 사람들은 주위의 강경한 반대를 물리치고 결혼에 골인했건만 한달 만에 아내를 잃고서 관뚜껑을 부여잡고 펑펑 울어대는 26살의 새아빠 켄지와, 망연자실 서 있는 고교생 남매 토오루와 메구. 그전의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이제 그들은 '가족'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한 집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불과 10살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는 새아버지에게 선뜻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서로에게 익숙해질 새도 없이 남남이던 그들을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이들로 연결해줄 엄마는 그렇게 훌쩍 가버리고, 남은 이들은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엄마의 흔적에 눈물을 훔친다. 한창 예민한 시기의 사춘기 아이들을 대하는 켄지는 최선을 다해 아빠 노릇을 하려 하지만, 토오루와 메구는 켄지와 남남일 뿐이며 언젠가 그가 새로운 이를 만나 새 삶을 꾸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끊임없이 의식한다.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들을 한데 묶어주는 유일한 끈은 켄지를, 토오루를, 메구를 잘 부탁한다는 엄마의 말이다. 묶여있지만 절대 구속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그 끈이 언젠가는 끊어질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 때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세 사람. 엄마의 존재가 없이 외줄타기마냥 위태위태한 나날이지만 그들은 막상 미끄러질 때마다 서로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아마도, 그것이 가족일 것이다. 막다른 곳에 이를 때 결국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주기를 마지막까지 기대하고 또 기대할 수밖에 없는 존재…. 『가족, 그 이후』의 가족들이 바로 그러한 모습이 아닌가. 가족이되 가족이 아닌, 그럼에도 돌아갈 집과 그 집에서 기다리는 이가 있기에 켄지와 토오루, 메구는 또 다른 '가족'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남녀관계를 뛰어넘은 '주인님과 펫'이라는 색다르고 신선한 관계를 살짝 엿보고 싶다면 『너는 펫』(오가와 야요이, 강담사/학산문화사, 11권∼)이 적격이다. 주인공 이와야 스미레는 겉보기에는 천하무적 쿨뷰티 열혈 커리어우먼이다. 그 누구도 상대가 되지 못할, 지극히 평범한 남자라면 감히 말 한번 걸어보지도 못할 도도한 그녀. 고수입, 고학력, 고신장의 일명 '3고'가 아니면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서 연애할 수 없다고 외치는 스미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여리고 소심하기 짝이 없는 20대 여성이다. 타고난 재능과 그를 뒷받침하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똘똘 뭉친 그녀조차 넘을 수 없었던 벽. 그것이 스미레에게 있어서는 회사 동료들과 연인인 하스미와의 관계였다. 주위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완벽한 프로여기자'라는 이미지를 만들고는 그 안에 스미레를 우겨넣고, 스미레는 사람들의 기대아닌 기대와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다 점점 지쳐만 간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애써 강한 척 하지만 쩍쩍 갈라지는 마음의 틈새로 불어오는 황소바람에 그저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던 그녀가 발견한 것은 다름아닌 펫 모모. 인간형 수컷, 배변훈련 시킬 필요 없음. 일단 말이 통하니 적응훈련 시키기도 좋은데다 곱상한 외모에 무용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라는 옵션까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씻겨주기만 하면 지친 하루의 푸념과 짜증을 가마니째 쏟아부어도 생글생글 웃으며 따스하게 안겨오는데 이런 펫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어릴 적 키우던 개 모모를 제외하고는 이제껏 그 누구 앞에서도 솔직한 마음을 내보일 수 없었던 스미레와, 주위의 기대와 질투에 짓눌려 점점 건조해져만 가는 마음을 안고 가식이 진심인 양 행동해오던 모모.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바랐던 소박하지만 따사로운 애정과 관심을 서로에게 쏟아주며 보통의 이성관계를 넘어선 새로운 관계―자매지간이나 동성친구들보다도 더 긴밀한 유대관계부터 여자 대 남자라는 원초적이고도 미묘한 관계까지 다양한 관계들을 되짚어간다. 유일한 친구인 유리 앞에서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속내를 모모 앞에서 실꾸리를 풀어내듯 줄줄이 토해내는 스미레와, 지금까지 스미레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자신에게도 스미레가 더없이 소중한 존재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 모모. 자, 이제 주인님―펫 이상의 관계가 되어버린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떤 관계로 마주보게 될 것인가? 남녀관계의 재조명도 신선하지만, 20대 중반을 넘어선 여성 직장인들의 고민과 아픔까지 적재적소에서 다루고 있어 해가 가면 갈수록 저릿함을 더해가는 『너는 펫』. 10권을 넘어서면서 하스미와 시오리의 관계까지 한데 얽히는 가운데 앞으로의 진행이 더욱 궁금해지는 기대작이다. 사람 대 사람과의 관계를 넘어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경배'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역시 타마키 신의 『팜』(신서관/대원씨아이, 1∼26권, 케모노기 야세이獸木野生로 개명)*을 들 수 있겠다. 유능한 외과의의 길에서 사립탐정으로 급선회한 카터 오거스.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마피아의 양자였던 그의 조수 제임스 브라이언. 사자와, 그리고 자연과 교감을 나누고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세상에 녹아 들어가는 소년 앤드류 글래스고우. 정의와 진리의 길로 통하는 상식을 설파하며 앞의 세 남자들을 데리고 고군분투하는 씩씩한 여고생 안젤라 번스타인. 이들 네 사람이 함께 엮어나가는 수상한 사립탐정사무소의 가슴 따뜻하지만 역시 어딘가 수상한 이야기―『팜』!!…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야 오죽 좋겠냐마는, 누군가가 '그렇게 좋아? 대체 어떤 내용인데?'라고 물으면 말문이 탁 막히고야 만다. 때로는 호쾌한 하드보일드 액션에, 때로는 한탕주의 사기극에, 때로는 데굴데굴 구르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좌충우돌 코미디, 때로는 소외된 이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듬뿍 담긴 휴머니즘 드라마에서 이제는 지구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전하는 친환경적 내용까지. 타마키 신만의 위트와 사람에 대한, 자연에 대한, 영혼에 대한 따스한 관조적 시선은 『팜』의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색색의 형태로 구현화된다. 매 시리즈마다 완결된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각각의 시리즈는 필연적으로 그 전, 그 다음의 이야기들을 위한 복선과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따로 또 같이'의 완벽함을 보여준다. 『팜』의 실질적인 주인공 제임스 브라이언을 통해 나타나는 초현실적 현상들은 기존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전혀 얽매이지 않은 순수한 인간성의 또 다른 표현이다. 범죄자, 동성애자, 소외받고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사회가 낙인찍은 일련의 수식어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제임스와 그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팜』의 사람들. 단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그래서 이렇게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생애 최고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그들을 바라보노라면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기적들을 새로이 알게 된다. 세상 수많은 이들 중에서, 우연과 우연이 한데 얽히며 빚어낸 필연으로 인해 이렇게 마주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제임스가, 카터가, 『팜』이 전하는 작지만 소중한 기적이다. 사실 관계라는 건 아주 간단하다. 만난다. 인사를 나눈다. 대화를 나눈다. 상대방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공감하는 부분을 발견하면 기뻐하자.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면 좁히려고 노력해보자. 그게 힘들다면 그런 방식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나는 나일 뿐 절대 타인의 입장이 될 수 없다. 100%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것을 강요하지도 말자. 50%만이라도 접점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이렇게 만났다는 것이고 지금까지 우리가 만나온 시간들보다 앞으로 만나갈 시간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 먼길을 돌아가면 어떤가. 그러면 다시 만났을 때 하고픈 얘기도, 해야할 얘기도 더 많아질 것이다. 좀 기다리면 어떤가.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이 배로 커질 것이다. 기억하자, 한 사람만의 노력만으로는 힘들다. 누군가 손을 내밀면 그 손을 힘껏 맞잡아주자. 그리고 웃어주자. 진솔한 마음,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 멋쩍은 듯 머금은 수줍은 미소….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팜』: 작가 케모노기 야세이의 유일한 작품이자 생애 전부를 걸어 그리고 있는 『팜』은 오프닝 「콩 반쪽Half of Bean」으로 시작, 10화 「TASK」로 완결예정. 26권은 7화 「사랑이 아니라Not Love, but Affection」까지의 내용이며, 작년 7월에 8화 「오전의 빛Honeymoon with Life」이 이미지 출처: 리브로(http://www.libro.co.kr/comic/) 2005/11/26 23:23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
03/14 - 실은 친정엄마 걱정이 이만저..03/14 - misha 수고 많으셨어요! 짝짝짝!!!03/14 - 아트걸 세 돌까지는 엄마(혹은 주양육..03/13 - misha 딸램도 나중에 크고 나면 외할..03/13 - misha 이 얘기 알아? 한밤중에……...
다소공간多笑空間-2009 러버스 키스 - 후지이 토모아키Jini's home-2009 호텔 아프리카Jini's home-2009 20대 여성의 일상을 다룬 만화들일다의 블로그 소통-2009 심플한 40문답소루쟁이 풀밭-2008
궁금하면 물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