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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9   두 번째 사랑(2007)  (8)
추격자(2008)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

감독 : 나홍진(2008)
주연 : 김윤석(엄중호)
         하정우(지영민)
         서영희(김미진)
         김유정(은지)
         정인기(이형사)
         박효주(오형사)


한 남자가 있다. 한때 경찰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여자들 등쳐먹으며 사는 악덕 보도방 업주에 불과한 남자, 엄중호.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가 데리고 있는 여자들이 한명 두명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는 잡으면 다리를 분질러놓겠다는 듯 이를 갈며 걸리기만 해봐라, 하고 벼르고 또 벼르게 된다. 하지만 실은 없어진 여자들이 도망가거나 팔려간 게 아니라 살해당한 것임을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게다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살해당했고 어디에 시체가 유기되었는지도 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살인범은 떡하니 경찰서에 잡혀와 있고 어떻게든 족쳐서 정보를 캐내야만 하는데 영화 속 경찰과 엄중호는 관객들이 알고 있는 정보의 십분의 일도 모르고 엉뚱한 곳만 헤매고 다니는 거다. 그야말로 속에선 천불이 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엄중호와 경찰들이 자꾸 헛다리를 짚고 헛물을 켤 때마다 관객들은 답답해하고, 죽은 줄만 알았던 미진이 꼼지락거리기 시작하면 그 긴장은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달아간다. 영화 [추격자]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스릴과 서스펜스를 위해 필히 드리워져야 할(혹은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다들 생각했던) 장막은 [추격자]에서 일찌감치 모두 걷어내버린지 오래다. 긴장을 유지하기 위한 몇 장의 카드를 관객들에게 모두 내보이고서도 영화 전체적인 흐름의 주도권은 여전히 감독과 배우들이 단단히 틀어쥐고 있다는 점에서 [추격자]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다. 이미 모든 정보를 까발려놓고 시작하다보니 자칫 잘못하면 영화 전체가 물먹은 솜 마냥 축 늘어질 위험이 다분했음에도 영화는 김윤석과 하정우라는 두 배우를 내세워 과감하게 정면돌파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 시도는 99% 성공했다. 마치 처음부터 살인범이었고 추격자인 양 너무나 자연스럽게 망원동의 그 어느 골목길 안에 서서 서로를 마주하는 두 배우. 복잡다단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은 인물들을 김윤석과 하정우는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추격자 역할의 김윤석은 관객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조금씩조금씩 좁혀가며 별다른 설명 없이도 관객들이 엄중호의 심리상태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미진의 딸 은지가 필요불가결하게 등장하고 사이사이에 약간의 빈틈들이 존재하지만 그런 단점이 이 영화의 장점과 매력을 상쇄시킬 정도는 못 된다.

관객들과의 거리라는 것 자체가 성립하기 힘들 정도기는 하지만 이 영화에서 살인범인 지영민의 캐릭터는 유난히 접근하기도, 설명하기도 힘들다. 성장과정도 그간의 행적도 분명하지 않고 살인동기도 딱히 이것이다, 라고 정의내리는 것도 쉽지 않다. 당최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는 의문은 지영민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이어지고, 텅빈 사무실에서 워드를 치고 있는 여형사 앞에서 ‘비린내가 난다’며 이죽거리는 장면에서는 생리적인 혐오감 역시 극에 달한다.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 역시 발견하게 되는데 지영민의 경우 그가 어떤 경위로 그런 인물이 되었는가에 대한 정보는 일체 제공되지 않는다. 지영민을 연기하는 하정우 역시 때로는 순박한 바보처럼, 때로는 닳고 닳은 사기꾼처럼, 때로는 격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혈기넘치는 젊은 남자처럼 그때그때 연기 톤을 바꾸며 영화 속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결국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끝까지 지영민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영화 [추격자]의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게 하는 또 다른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범행이 일어나는 장소는 평온해보이는 서울의 어느 주택가, 그것도 방범초소가 바로 코앞에 있는 집이다. 좁다란 골목길, 그 입구에서 바라보이는 수백개의 조그만 불빛들과 골목길의 전봇대들, 길가에 늘어서있는 자가용들은 영화 속 장면이 아니어도 지금 당장 슬리퍼를 꿰어신고 나가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광경들이다. 익숙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낯선 범행은 언젠가 나도 저 범행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해결되지 않는 범죄, 잡히지 않는 범인, 속수무책인 경찰, 미친 듯이 실낱같은 단서를 찾아헤매는 피해자의 가족, 친구들. [추격자]는 안정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관객들을 장악하고 그들의 공포를 자양분삼아 영화 속 사건들을 현실에 대입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난 다음에도 어딘가 꽉 막힌 듯한 답답함, 껄쩍지근하게 남아있는 그 무언가는 두고두고 이 영화를 기억하게 만든다. 그것은 과연 온전히 영화 자체의 힘일까, 아니면 언제 어느 때고 나 역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적어도 그런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것만은 [추격자]가 지닌 저력일 것이다.


꼬리>만약 장동건처럼 깎아놓은 듯한 미남배우가 지영민을 연기했더라면? 짐작조차 안 되는구나(깔깔).

2008. 3. 2.



김윤석, 하정우

2008/03/02 20:46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1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

감독: 임순례(2008)
주연: 문소리(미숙)
        김정은(혜경)
        김지영(정란)
        조은지(수희)
        민지(보람)
        남궁은숙(진주)
        이미도(현자)
        조영진(송감독)
        엄태웅(승필)





포스터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핸드볼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안 쓰다가 올림픽만 되면 메달 운운하는 대표적 종목 중 하나인) 여자핸드볼 선수들이 거듭되는 연장전과 승부던지기 끝에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을 따낸 그 순간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다. 소외된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 앞에서 이를 악물고 일구어낸 승리. 스포츠영화답게 땀과 눈물이 넘치고 끈끈한 동료애도 물씬 묻어난다. 폭소까지는 아니어도 순간 피식, 하고 입가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는 장면들도 있다. 누구나 짐작가능한 갈등과 감동과 약간의 눈물까지. 기대치가 상당히 높았던 탓에 약간 실망한 구석도 없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그럭저럭 흡족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올 수 있는 영화라고나 할까.

아니, 솔직히 말하자. 과연 흡족한가? 적어도 나는 이 영화가 그저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감동실화’에 집중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분명 이 영화는 감동적인 실화를 소재삼아 만든 작품이지만 (나 또한 당시 결승전을 보며 얼마나 눈물콧물을 흘렸던가;) 악전고투 끝에 거머쥔 은메달 그 이면에 숨어있는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남성들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고, 여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 인내하고 희생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나 둘씩 관객들 앞에 풀어놓는다. 사업실패 이후 자포자기하고 모든 책임과 생계를 떠넘겨버리는 남편 때문에 피를 토할 것만 나날을 보내고 있는 미숙. 이혼녀라는 이유 때문에 감독(대행이기는 했지만) 자리에서 떠밀려나야만 했던 혜경. 생리주기 조절 때문에 호르몬제 복용을 하다가 결국 불임이 되어버린 정란. 그들이 ‘핸드볼 선수’였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자 핸드볼 선수’였기 때문에 그러한 고통을 싸안고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다.


노장 3인방. 지금 그들의 고민 역시 어쩌면 후배들에게도
그대로 대물림될 지도 모를 일이다. 슬프게도.

텅빈 관객석. 썰렁하기 그지없는 경기장에서 묵묵히 경기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외로운 ‘핸드볼’ 선수이기에 그들은 팀이 해체되고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수난을 겪는다. 여자라면 누구나 당연히 하는 생리마저도 그들에게는 또 다시 넘어야만 하는 벽이 되어 생리통이 심해도 엔트리에서 제외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미숙의 “직원이면 정사원이겠죠?”라는 물음 뒤에 뒤따라오는 것은 바윗덩이같은 침묵이요, 호르몬제까지 먹어가며 어떻게든 운동하겠다고 이를 악물고 버텨낸 끝에 돌아오는 것은 “내 꼴 나지 마라.”라는 정란의 자조섞인 한탄뿐이다. 남자감독이었어도 이혼 경력이 문제가 되었겠냐는 혜경의 항변은 이제 너무나 흔한 상황, 흔한 대사라 더 이상 언급한다는 것도 멋쩍을 정도다. 문제는 미숙, 정란, 혜경…그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통이 비단 여자핸드볼 선수인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래서일까. 비록 생각했던 것만큼 펑펑 울지도 않았고 기대했던 만큼의 (소위 스펙따끄르한) 가슴벅찬 감동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의 행복한 순간]은 작지만 참으로 소중한 의미를 품고 있다. 소외당한 그들이 척박한 현실과 맞서 싸워가며 그토록 힘겹게 일구어낸 값진 열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딱히 달라질 바는 없을 것만 같은 현실. 그렇지만 영화는 꿋꿋하게 은메달이라는 표면 아래 숨어있는, 소외받는 이들의 상처들을 돌아보고 짚어보고 보듬는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비록 뻔한 갈등구조와 결말이라 해도 그 안에 담겨있는 사연들은 저마다의 진정성을 품고 있기에 더욱 가슴 한 구석을 아리게 만든다. 은메달이 주는 눈물겨운 감동만큼이나 작고 작은 아픔들을 외면하지 않고 되돌아보는 이 영화가 나는 무척이나 고맙고, 또 사랑스럽다.

우리의 왕언니 정란 언니님. 일터에서 이런 언니 한명씩은 있어야 일할 맛도 나는 법.



꼬리1>핸드볼 경기 장면을 소화해내기 위해 촬영 전부터 계속 체력훈련과 연습을 했다고 하던데, 그래서인가 배우들간의 호흡이 너나할 것 없이 참 좋다. 대사를 주고받는 박자도 그렇고,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언니 동생들간의 유대관계 또한 그렇고. 그런 분위기는 단지 대본연습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닐테지. 배우들간의 촬영 분위기 또한 참으로 훈훈했을 것 같다.
꼬리2>마지막 결승전 장면만큼, 아니 그 이상 울컥했던 장면이 바로 정란의 ‘내 꼴 나지 마라.’ 장면. 그 순간 숙연해지는 선수들과 착 가라앉는 공기라니. 이건 정말 여성관객들이라면 더더욱 감정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섣부른 짐작이기는 하지만 만약 감독이 남자였다면 과연 이런 에피소드에 이만큼의 비중을 주었을까 하는 생각도 아주 잠시 해보았다.
꼬리3>그래도 맞선남의 얼굴을 보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갈무리할 수가 없어서…;
꼬리4>문소리 연기야 말할 것 없고, 김정은의 연기도 상당히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란 역을 맡은 김지영의 연기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배우로서도, 그리고 극중 인물로서도 자기 자리를 제일 확실히 꿰어차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2008. 1. 14.



하정우

2008/01/14 19:40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두 번째 사랑(2007)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포일러 가득가득;

감독: 김진아(2007)
주연: 베라 파미가Vera Farmiga (소피Sophie)     
       하정우(지하)     
       데이빗 맥기니스David McInnis (앤드류Andrew)


한 여자가 있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마음 속 공허와 외로움을 메꿀 길이 없어 혼자 속앓이하는 여자. 그럼에도 남편을 위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아기를 가지려고 자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는 여자. 그리고 또 한 남자가 있다.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기회의 땅 미국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아 헤매는 남자. 그나마 남아있던 꿈도 희망도 갈기갈기 다 헤어져버릴 것만 같은 좁고 허름한 방 안에 여자친구의 사진을 놓아두고 당장 오늘, 내일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외롭다는 감정마저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남자.

영화는 의외로 간단하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지만 남편의 불임으로 힘겨워하던 소피는 남편과 닮은 한국인 불법체류자 지하에게 돈을 주고 관계를 맺는다. 철저한 기브 앤드 테이크. 막다른 곳에 몰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둘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마치 기계처럼 섹스를 한다. 채 풀리지 않은 몸으로 낯선 남자를 받아들이는 아픔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소피는 끝까지 지하를 외면하고 지하 역시 소피의 새파란 눈에 어색함을 감추지 못 한다. 그러던 두 사람이 어느덧 서로를 원하게 되지만 소피의 부정을 남편 앤드류가 알게 되고, 지하는 불법체류자 신분이 탄로나 강제 출국을 당한다.

맞다. 지극히 간단하고, 누구든지 예상할 수 있는 줄거리에 상투적인 결말이다. 게다가 상당히 불친절하기까지 한 영화다. 물론 아이를 가질 수 없어서 괴로워한다고는 하지만, 앤드류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그 어떤 설득력도 지니지 못하고 연유를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도 거의 제시하지 않는다. 지하의 삶 역시 고단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지만 무엇 때문에 미국에까지 와서 막노동판을 전전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마치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왜 그 자리에 그런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다.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처음에는 그저 공허하기만 하던 소피의 눈이 차츰차츰 욕망과 열망을 담게 된다는 것뿐.

소피는 분명 남편을 (그런 무모한 일도 저지를 정도로) 사랑했고 그 사랑은 순수했다. 다만 그 사랑이 성립하기 위해 그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인내해야 했다는 것이 문제다. 앤드류는 소피를 안으면서도 그녀와 눈을 마주하고 교감하는 대신 그저 자신의 슬픔을 막무가내로 쏟아낼 뿐이고 소피는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런 것도 사랑의 한 모습이고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대체 언제까지? 계속 외로웠다고 말하는 앤드류는 왜 소피 역시 외로워할지도 모른다는 건 전혀 생각지 못했을까. 앤드류는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소피의 모습에 반했다고 했지만 때로는 소피도 자기 자신만을 우선시하고 싶지는 않을까. 사랑이란 건 이타적이든 이기적이든 결국 그를 통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목적을 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는 거라면?

서로의 가슴속 무거운 돌덩이처럼 내려앉은 고독을 엿본 이들의 연대의식이라 하기에 서로를 원하는 그들의 욕망은 참으로 원색적이다. 사람의 체온, 36.5도. 조금이라도 차게 식거나 조금이라도 열이 높아지면 사람은 생사의 기로를 헤매게 된다. 등을 마주한 절박함과 외로움 속에서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듯 서로의 몸을 안았던 두 사람의 체온은 결국 그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하지 못하고 치솟고 만다. 순간의 육체적 욕망이라 할지언정 소피와 지하는 진실로 상대를 원했다. 마음속 굳은 앙금을 녹여내 줄 또 다른 36.5도의 사람, 또 그 사람을 온몸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는 미칠 것만 같은 갈망. 때로는 마음보다 앞선 몸이 진실을 알게 해줄 때도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라도 원하게 되는 가장 소박하면서도 강렬한 그 욕구를 감히 품어볼 엄두도 못 내고, 품었다 한들 제대로 해소해보지도 못했던 그들이 긴 망설임 끝에 나누는 애무가 이내 그토록 격렬해지고 마는 것은 타는 듯한 갈증을 달래줄 샘을 서로에게서 느꼈기 때문일 게다.

소피를 제외하고 지하나 앤드류, 그리고 그들이 속한 한인사회와 아메리칸 드림이 품고 있는 복잡다단한 배경은 이 영화에서는 거침없이 생략된다. 적어도 소피가 지하에게 그런 거래를 제안하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앤드류만이라도 조금만 더 부연설명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상당히 크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기게 해달라며 기도하는 목사와 함께 고개숙인 사람들을 바라보던, 불안하게 흔들리던 소피의 눈동자가 어느덧 자신의 날선 욕망과 소망을 인지하고 확신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빈약한 영화 구성에 비해서 넘칠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지고 그러한 소피의 변화는 마이클 나이만 특유의 단조로우면서도 반복되는 멜로디와 함께 더욱 강렬해진다. 남편을 위해, 남편의 가족을 위해, 이상적인 가정과 행복을 위해 그저 참고 견디기만 했던 소피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열렬히 원하게 되고, 앤드류의 폭력 앞에서 배를 감싸 안으며 소리소리지르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누군가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행복을 찾으려 했던 소피가 온전히 그녀 자신으로 살아가며 사랑하고 사랑받고 행복해지는, 어쩌면 그게 이 영화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꼬리1> 그런데 앤드류랑 지하랑 대체 어디가 어떻게 닮았단 거야? -_-a;
꼬리2> 솔직히 말해서, 예고편이 본 영화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꼬리3> 잘 만든 영화라고는 할 수 없는데, 또 보러 가고 싶은 영화였다. 하정우의 허름한 옷차림과 그야말로 일하다 온 것 같은 거친 몸이 그렇고. 베라 파미가의 연기도 그렇고. 연출의 밀도는 떨어지지만 순간순간 드러나는 감독의 세심함이 그렇고. 특히 소피가 속옷을 지퍼백 안에 넣고 지익 잠그던 그 장면, 아주 좋았음. +_+  
꼬리4> 마이클 나이만의 음악은 여전히, 취향 직격.

2007. 6. 29.



하정우

2007/06/29 22:38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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