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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 짤막하게.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 혹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아무 말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말이 필요없는 경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경우, 짤막한 음절 하나도 내뱉을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가라앉게 되는 경우. [로드]는 아마 그 모든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원작이 주는 느낌이 너무나 강력하기에 영화를 보고 실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는 것 같지만, 내가 느끼기에 영화는 원작을 최대한 존중하려 애썼고 원작의 내러티브에 비교적 충실한 편이다. 원작보다 앞서가는 부분도 없으며 원작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지레짐작으로 먼저 둘러가는 부분도 없다. 원작에서 끊임없이 묘사되는 잿빛으로 가득 찬 세상과 절망이, 영화 속에서는 날선 폭력과 끔찍한 사체로 적나라하게 치환되지는 않는다. 영화 속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시청각적으로 확연하게 드러내는 장면들은 철저히 원작의 묘사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쉽사리 그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다. 이것은 (영화 제작사 입장에서) 어찌 보면 모험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절제이기도 하다.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한 아버지의 맹목적인 부정에서 비롯된 액션 활극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을 이 영화는 덕분에 중도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온몸을 찢는 듯한 극심한 진통보다도 희망이 사그라진 세상에 아이를 내보내야만 한다는 사실에 여자는 더욱 고통스러워한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두고 남자는 한층 삶에 집착하고 여자는 언젠가 다가올 파괴와 죽음 앞에서 한발 먼저 등을 돌리고 싶어 한다. 어느 쪽이 옳은가. 어느 쪽이 그른가. 자신의 분신이 내 눈앞에서 찢겨나가는 것을 보느니 먼저 죽고 말겠다는 여자의 소망과 그럼에도 나보다 단 한순간이라도 더 살아주기를 바라는 남자의 소망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울까. 원작에서 마치 고해라도 하는 것처럼 매순간마다 삶과 죽음, 그 모두와 동등한 무게를 지녔던 대화들이 영화 속 배우들의 입에서 읊어지는 그 순간, 기뻐하면서도 그들처럼 똑같이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저 안타까울 뿐. 그만큼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를 원작이 이르는 경지 언저리까지 (순간이나마)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고통과 슬픔이 점철되어 피로가 덧씌워진, 언제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비고 모르텐센과 한없이 불안하고 연약해보이면서도 순간순간 세계에 대항하는 의지를 내보이는, 상상한 것 이상으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코디 스밋 맥피가 엮어내는 감정의 실타래는 부자지간을 넘어 그야말로 죽음의 장벽을 넘어 함께 진군하는 전우애와도 같은 감동을 전해준다.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할 것을 가르치고,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에게 총구를 겨눌 때 망설이지 말 것을 가르쳐야만 하는 세계에서 남자는 끊임없이 빛바랜 희망을 전하려 한다. 모든 것이 죽어 마땅한 현실 속에서 남자는 살아남기 위해, 그리하여 아들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운다. 추위와, 고통과, 살아남은 또 다른 사람들과, 과거의 아스라한 추억과, 그리고 때로는 절대선(善)을 주장하는 아들과도 싸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희노애락의 감정이 생존이라는 절대명제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 순간에도 남자는 코카콜라 한 캔을 찾아내어 소년에게 건넨다. 생동감 넘치는 선명한 붉은빛, 탄산음료 특유의 향취, 톡 쏘는 청량함과 달콤함…. 살아남는다면 아마 두고두고 되새기며 또 다른 코카콜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그 무엇이 어쩌면 남자가 소년에게 끊임없이 얘기하고팠던 희망인지도 모른다.

남자가 아들을 두고 먼저 눈을 감아야 하는 그 순간.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또 다른 남자의 등장. 혹자는 다소 생뚱맞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함께 영화를 본 smk군의 반응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 ‘생뚱맞음’ 덕분에 작가는, 남자와 소년은, 그리고 원작과 영화를 접한 이들은 구원을 얻는다. 지켜줄 이 하나없이, 나의 분신을 홀로 두고 먼저 세상을 떠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잠든 소년의 숨소리를 확인하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하던 남자에게도 드디어 구원의 손길이 미친 것이다. 맞다. 그것은 남자의 욕심이고, 작가의 욕심이다. 내 손을 떠난 아들의 삶에 비춰질 또 다른 한 줄기 빛. 원작/영화를 보는 내도록 숨죽여 기다리고 또 기다린 그 ‘희망’이 형태를 갖추어 나타난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가 과연 나 혼자만일까? 그것이 지나친 바람인가? 그것이 섣부른 결말인가? 모든 부모들이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이 바로 ‘그’ 희망이 아니던가. 신은 비록 한번 이 세계를 버리셨으나, 그럼에도 또 다시 손을 내밀어주시고 우리는 그 은총을 입기 위해 늘 기도한다. 부디 살아남아, 지금의 이 현실을 박차고 나갈 힘을 얻기를. 삶의 매 순간순간들이 그 힘의 바탕이 되어줄 수 있기를. 하늘도 땅도 공기도 잿빛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남자가 그토록 당부했던 불씨를 품고 발걸음을 내딛는 소년처럼. 신이여, 부디 이 아이를 보호하소서. 당신께서 전하시는 바를 오롯이 품고 있는 이 아이를, 부디.


2010. 8. 13.



2010/08/13 17:29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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